영국 시민과 한인들이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듣고 조의를 표했다./사진=신락균
영국 시민과 한인들이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듣고 조의를 표했다./사진=신락균

 

혼자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삶에 있어 많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 나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1인 가구 수는 급증하지만 아직까지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서비스는 부족하다. 그래서 1인 가구가 1인 가구에 관심을 갖고 공감과 연대감을 이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1코노미뉴스]는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맞춰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에 나가 있는 '1인 가구의 삶'을 날것 그대로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영국 1인 가구 신락균= 지난 10월 29일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참사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우리나라 국민들 역시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든 아니든, 정도가 크든 적은 국민적 트라우마에 빠졌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사태를 해외에서 뉴스를 통해 바라본 필자 역시 실시간 뉴스를 보는 내내 가슴이 조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20대의 경우 8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 10대였다. 비슷한 나이대의 친구들이 희생당한 일을 거의 10년 주기로 겪은 그들의 새까매진 마음속은 감히 상상할 수도 섣불리 위로를 건넬 수도 없다.

이 사건은 필자로 하여금 영국에서 있었던, 이번 참사와 아주 비슷한 참사 하나를 떠올리게 한다. 영국 프리미어리그를 즐겨 보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한 번쯤은 들어 봤을 힐스버러 참사(Hillsborough Disaster)이다.  

1989년 4월 15일 오후 3시, 영국 셰필드 힐스버러에 위치한 중립구장에서 리버풀과 노팅엄 포레스트의 FA컵 준결승이 펼쳐졌다. 경기 시작 1시간 전부터 이미 경기장 밖은 수많은 인파가 몰려있었다. 당시 경기장의 안전을 책임지던 셰필드 경찰서의 데이빗 던킨필드(David Dunkinfield) 총경은 경기장 밖에 있었던 인파를 해소하고자 경기장 입구 옆에 있던 C 번 게이트를 개방하는 지시를 내렸고, 이로 인해 수천 명의 관중이 한꺼번에 경기장으로, 그것도 한 관중석으로 급격히 몰려들었다. 일찌감치 관중석 앞쪽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관중들은 몰려드는 인파를 이기지 못했고, 결국 96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진행된 수사에서 던킨필드 총경은 게이트 개방 조치에 대한 책임을 회피했으며, 경찰 내부에서도 현장 증거와 일선 경찰들의 증언을 조작함으로써 진실을 가렸다. 이후 경찰은 관중들이 '술에 잔뜩 취해 있었으며 경기 티켓도 없이 무단으로 경기장에 난입해서 참사를 일으켰다'는 프레임을 뒤집어씌웠다. 1991년, 2년간 이어진 재판 끝에 힐스버러 참사 희생자 96명은 우연한 사고로 죽었다(Accidental death)는 판결이 내려졌다.

유가족들은 법원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기나긴 싸움을 이어 나갔다. 참사 20년이 지난 2009년이 되어서야 사건은 전면적인 재조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를 위해 설립된 독립 기구에서는 약 45,000건에 달하는 문서들을 약 3년간 처음부터 다시 검토했다. 2012년 발간된 힐스버러 독립패널보고서(The Report of the Hillsborough Independent Panel)에서는 수많은 증거를 검토한 결과 당시 리버풀 관중들이 취해있었다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보였다고 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또한 당시 초기 구조활동이 보다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더라면 살릴 수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보고서가 발표된 후 당시 총리였던 데이빗 캐머런은 영국 정부를 대표해 오랫동안 진실을 바로잡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영국 고등법원(High court)역시 기존의 판결을 뒤엎고, 사건을 다시 수사하라고 돌려보냈다.  2014년 재수사가 시작되었고, 2015년 당시 책임자였던 던킨필드 총경은 89년 이후 처음으로 참사의 원인에 대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유가족에게 사과했다.  참사 27년이 지난 2016년 4월 26일, 희생자 96명은 우연히 죽은 것이 아니라 부당하게 살해당했으며(unlawfully killed) 당시 있었던 관중들은 참사의 원인이 아니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힐스버러 참사의 유가족, 생존자, 현장 경찰 및 구급대원들은 이후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고있다. 유가족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고, 생존자는 옆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현장 구급대원들과 관중들은 희생자를 살리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고, 현장 경찰들은 본인의 증언이 은폐 당했을 때 느끼는 배신감에 화가 났을 것이다. 이번 이태원 참사는 33년 전 힐스버러 참사가 겪었던 길을 그대로 따라갈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미 그 길에 들어섰다고 볼 수도 있겠다. 2014년에 BBC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힐스버러: 어떻게 그들은 진실을 묻었나 (Hillsborough: How they buried the truth)'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Hillsborough was an avoidable disaster. What happened here was obvious. But some of our most important institutions – the police, the judiciary, and government – allowed it to be covered up. That’s the truth about Hillsborough, the dark truth buried for a generation. 

(힐스버러는 피할 수 있는 참사였다. 이곳에서 일어난 일은 명백했다. 하지만 경찰, 사법 그리고 정부와 같은  가장 중요한 기관들은 진실이 은폐되도록 용인했다. 그것이 힐스버러의 진실이며 한 세대동안 감춰져 왔던 어두운 진실이다.)

영국 시민과 한인들이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듣고 조의를 표했다./ 사진=신락균
영국 시민과 한인들이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듣고 조의를 표했다./ 사진=신락균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진실을 묻고 있는 일이 벌써 진행되는 듯 하다. 책임을 떠넘기고 꼬리를 자르고 진실을 은폐하려고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 참사를 지켜본 시민들은 뭉치고 있다. 이태원 역에 수많은 애도를 표하고, 현장 경찰과 구급대원에 위로를 보내고, 부상자를 돕기 위해 서슴없이 헌혈도 한다. 참사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 그리고 이를 지켜보고 무엇이든 돕기 위해 나선 시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리가 참사를 지켜본 시민으로서 힐스버러 참사를 통해 주목해야할 단 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케니 달글리시(Kenny Dalglish)'라는 인물을 꼽고 싶다. 리버풀의 감독이었던 그는 참사 당시 현장에 있었다. 그는 참사 이후 아내와 함께 혹은 선수들과 함께 유가족들을 방문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부상자들이 있던 병원과 장례식에도 일일이 방문했다. 그는 선수로도, 감독으로도 그리고 참사 이후 보인 행보로 리버풀의 전설 중의 전설이 되었지만 참사를 겪으면서 그 역시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은 상처를 입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참사 약 2년 뒤인 1991년 2월 그는 돌연 리버풀 감독직을 내려놓았다.

2014년 영국 ITV와 진행된 인터뷰에서 진행자가 그 당시 유가족들을 방문 했던 일에 관해 묻자 그냥 생각이 나는 대로 본능이 이끄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그 당시 그곳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행동은 다양하지만 개개인의 마음속에 새겨져 버린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달글리시가 유가족을 찾아가서 나누었던 '대화'다. 대화의 규모가 크든 작든 상관없다. 우리 모두가 모여서 우리 주변에 참사의 상처를 겪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상처를 조금씩 서서히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시민들은 더 강하고 끈끈하게 뭉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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