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명의 사람들이 참석한 Remembrance Sunday 행진 및 헌화식./ 사진=신락균
수백명의 사람들이 참석한 Remembrance Sunday 행진 및 헌화식./ 사진=신락균
혼자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삶에 있어 많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 나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1인 가구 수는 급증하지만 아직까지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서비스는 부족하다. 그래서 1인 가구가 1인 가구에 관심을 갖고 공감과 연대감을 이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1코노미뉴스]는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맞춰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에 나가 있는 '1인 가구의 삶'을 날것 그대로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영국 1인 가구 신락균 = 유럽에서 매년 11월 11일은 중요한 날이다. 바로 1차 세계대전이 종전한 날이기 때문인데, 영국에서는 이날을 Remembrance Day라고 부른다. 영국 사람들은 매년 10월 말에서 11월 초 쯤 되면 왼쪽 가슴에 빨간 브로치 비슷한 것을 달고 다니는데 바로 포피(Poppy, 양귀비)라고 한다. 이날은 전쟁의 희생자 및 이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들 모두를 기억하는 날이다.

영국에서는 이날을 대비해 국가적으로 행사를 준비하고 영국 재향군인회(Royal British Legion)에서는 국가적으로 기금 모금행사를 진행한다. 그 방법은 바로 왼쪽 가슴에 다는 양귀비 브로치를 파는 것이다. 각 지역마다 풀뿌리처럼 있는 지부마다 포피를 팔아 기금을 마련한다. 영국 전역에 풀뿌리처럼 뻗어 있는 지부의 관계자들은 모두 마을 주민이고, 집과 가까운 지부에서 자원봉사로 일한다. 각 지부에 가면 본인이 속한 단체 이름을 말한 뒤 브로치가 가득 담긴 상자와 돈을 넣을 수 있는 저금통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포피 어필에 필요한 물건을 받아오고 10월 마지막 주부터 11월 둘째 주 정도까지 포피 어필을 진행한다.

재향군인회 몰든지부 방문, 포피 어필에 사용될 물건을 받았다./ 사진=신락균 
재향군인회 몰든지부 방문, 포피 어필에 사용될 물건을 받았다./ 사진=신락균 

 

포피를 파는 곳은 다양하다. 길거리에서도 포피를 파는 개인을 볼 수 있고, 학생들이라면 대부분 학교에서 기부하고 포피를 가져올 수 있다. 이외에도 카페나 식당 등에서도 간혹 볼 수 있다. 

판매하는 브로치 모형도 다양하다. 종이 브로치, 금속 브로치, 손목 밴드, 강아지 목에 달 수 있는 브로치, 자동차 그릴에 달 수 있는 커다란 플라스틱 모형도 있다. 브로치의 종류는 많은데 정해진 가격은 없다. 사람들은 단지 자신이 원하는 만큼 기부하면 된다. 영국의 포피 어필을 굳이 비교하자면 한국의 사랑의 열매 행사와 비슷하다. 기금이 향하는 곳은 다를 수 있지만 원하는 만큼 기부하고, 가슴에 달 수 있는 조그만 브로치도 있다. 11월 둘째 주까지 포피 어필에서 모인 기금의 전부는 각 지부로 모이고 집계를 마친 뒤 최종적으로는 영국 재향군인회로 향하게 된다. 이렇게 전국에서 모인 기부금은 대부분 1,2차대전 참전용사 및 가족들에게 사용된다고 한다. 

필자가 영국 생활을 시작하면서 1년 넘게 봉사해온 한글 학교가 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포피 어필을 진행했다. 재향군인회 몰든 지부에 방문해 학교 이름을 대고 상자와 저금통을 받아왔다. 비록 우리 학교는 토요일만 운영하는 주말 학교지만 2주 정도 포피 어필을 진행했고 꽤 많은 학생들이 동전을 넣고 원하는 포피를 가져갔다. Remembrance Day와 가장 가까운 일요일은 Remembrance Sunday라고 해서 국가적으로 기념비 행진 및 헌화를 진행한다.

왕실과 정부 요직 인사들은 런던 웨스트민스터 뒤편에 자리한 전쟁기념비(The Cenotaph)가 있는 거리에서 행진을 한다. 행진은 국가 차원에서만 진행하는 게 아니다. 각 지역에서도 사람들이 오전 일찍 나와서 행진한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참석한 Remembrance Sunday 행진 및 헌화식./ 사진=신락균 
수백명의 사람들이 참석한 Remembrance Sunday 행진 및 헌화식./ 사진=신락균 

 

각 지역의 중심가에 모여 10여 분 거리에 위치한 전쟁기념비까지 행진 한다. 이번 행사에는 필자와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의 교사 및 학생들도 참여했다. 동네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행진은 주로 지역 학교, 보이스카우트, 걸스카우트와 같은 단체에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오전 9시에 시작하는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동네 중심가에 수백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밴드의 연주에 맞춰 거리 행진이 시작되었고 기념비에 도착한 사람들은 다 같이 약 30분간 예배를 드렸다. 이후 각 단체에서 전쟁기념비에 헌화를 하는 것을 마지막으로Remembrance Sunday Parade 행사는 마무리됐다.

영국에서는 지역단위에서 작은 규모지만 자원봉사를 할 기회가 많다. 필자처럼 한글 학교에서 봉사할 수도 있고, 지난 기고에도 언급했던 옥스팜 채리티 숍같은 곳에서도 지역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일하고 있다.

또한 구청에서 하는 여러 지역 차원 행사에서도 자원봉사가 가능하다. 장기로 봉사하는 것이 부담이라면 일회성으로 자원봉사 활동을 할 수도 있다. 꼭 어떤 단체여야만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동네 교회 등에서도 원한다면 자원봉사할 수 있는 기회는 많다. 자원봉사는 비록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점, 함께 일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자아실현을 할 수 있고 외로움도 해소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필자 역시 바쁜 학교생활에서 짬을 내어 자원봉사를 시작했던 이유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소통하고 봉사를 통해 사회에 도움을 주고 보람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점점 더 개인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점점 우리 주변의 사람을 둘러보는 대신 스마트폰 속 사이버 공간 속에 몰두한다. 우리는 이제 원한다면 지구촌 반대편에 사는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무한한 공간이 생겼지만 정작 스마트폰을 만지는 자신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군중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가속화된다. 정작 본인이 발을 딛고 사는 동네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잘 모른다. 외로움의 순환은 반복되고 외로움의 정도는 더 심해진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고개를 들고 우리 주변을 돌아봐야 한다. 봉사활동은 면대면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같이 일을 하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협력하면서 연대감을 키울 수 있다.

비접촉 시대가 우리의 삶을 편하게는 만들어주었지만 행복하게 만들었는지는 의문이다. 비접촉 시대가 개개인의 효율은 증가시켰을지는 모르나 공동체의 유대는 약화시켰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공동체를 유지하고 외롭지 않은 사회를 만들려면 기술과 효율성보다는 효율적이지 않아도 기술이 없어도 서로가 면대면으로 만나는 접촉점을 높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원봉사는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를 파편화시키지 않고 인간적인 냄새가 빠지지 않게 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주말에 일어나서 평소라면 핸드폰을 하거나 자고 있을 시간에 씻고 봉사 장소로 가야 한다.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게 된다. 맡은 일이 있게 되니 어찌 되었든 해야 한다. 봉사하면서 서로 돕고 때로는 웃기도 한다. 하루 종일 혹은 반나절 일하고 퇴근하는데 보수는 주지 않는다. 대신 어쩌면 봉사 장소에서 만난 동료들과 동네 술집에서 맥주 한잔하면서 떠들고 있을지 모른다. 집에 오면서 나도 모르게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할지 모른다.

봉사를 통해 평소라면 만나지 않았을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어울리면서 산뜻한 기분을, 함께한다는 연대감을 느낀다. 지금 만약 혼자 집에만 있다면 혹시라도 외롭다고 느끼신다면 어디든 나가서 자원봉사를 한 번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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