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복지학과 교수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복지학과 교수

서부전선 이상 없다(Im Westen Nichts Neues)는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Erich Maria Remarque)가 1928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한국에서는 ‘빼빼로데이’로 널리 알려져 있는 11월 11일에 끝났던 제1차세계대전(1914~1918년)을 배경으로 하였다. 11월 11일에 우리는 대개 요란하게 과자를 씹으며 하루를 보낸다. 그런데 이번에는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2022년)」이 전쟁이 끝난 11월 11일을 계기로 나오면서 참혹한 전쟁의 모습을 상기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원작 소설책만 출판 당시 45만부가 팔렸고 1930년에는 미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이후 세계 각국에서 팔린 책이 2천만 부가 넘는다고 한다. 1979년 다시 미국에서 TV용 영화로 제작되었지만, 독일어 원어로 나온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어 번역이 「서부전선 이상 없다」이지만 영화의 흐름을 보면 「서부전선, 변한 게 없다; 서부전선, 새로운 게 없다」가 더 적절할 것도 같다. 

독일ㆍ오스트리아와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이 상대가 되어 싸운 인류 최초의 대규모 전쟁은 군인 전사자만 940만 명, 민간인 사망자 800만 명 등 모두 1,700여만 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영화는 전쟁 말기 김나지움(Gymnasium. 한국식으로 인문계 고등학교) 교장이 학생들의 애국심을 자극하는 열변을 토하면서 파울 버이머(Paul Bäumer; 펠릭스 캄머러. Felix Kammerer)를 비롯한 학생 전체를 전장(戰場)으로 보내는 장면을 중심으로 시작한다. 교장의 연설이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라. 위대한 시간이다. 훗날 여러분은 지금의 결행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독일의 강인한 청년들(eiserne Jugend)이여! 이 위대한 순간을 우리가 함께 할 수 있음은 행운이다. 여러분의 행동은 고귀하면서도 튼튼한 뿌리를 만드는 자양물(Grundwasser)과 같다. 황제 폐하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병사(Soldat)를 필요로 하신다. 여러분 거의 모두 다시 고향에 돌아와 재회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명예로운 칼(das Schwert mit Ehren)을 비단에 감싸고 자부심으로 가득 찬 훈장을 가슴에 단 채 고향으로 돌아올 것이다. 막상 전장에 가면 적군의 공격 앞에서 의심도 들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약한 영혼을 위한 시간이 아니다.

한 순간의 흔들림, 한 순간의 망설임은 모두 조국에 대한 배신일 뿐이다. 현대전은 체스 같은 것이다. 한 개인이 중요하지 않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 명예로운 군복을 입고 전선을 돌파하여 여러분의 명예를 증명하라. 그렇게 되면 드디어 몇 주 내로 파리(Paris)로 진격할 것이다. 우리의 미래, 독일의 미래가 가장 위대한 세대의 손에 달려 있다. 그게 바로 여러분이다! 싸워라! 황제 폐하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독일을 위해!”

국가는 애국심을 자극한다. 당신이 아니면 영예로운 이 나라를 지킬 수 없다고 치켜세운다. 지금의 고난을 이겨내면 영광의 미래가 올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준다. 희망을 갖고 약해지지 말라고 격려한다. 혼자만의 이익에 연연하지 말고 모두를 위해 헌신하라고 알려준다. 교장의 연설에 젊은이들이 열광한다. 전장에 간다. 그리고 모두 돌아오지 못한다. 

버이머와 같은 반 친구들이 열광적으로 자원입대하는 과정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새로운(?) 군복을 지급받는다. 그런데 이 군복은 이미 죽은 병사의 것이었다. 영화가 시작하는 장면이다. 너무 많은 군인이 죽어나가고 물자가 부족하다 보니, 죽은 군인의 옷과 신발에서 핏물을 빼고 다시 세탁하여 새로 전장에 나가는 신병에게 지급한다. 버이머가 지급받은 군복에는 하인리히(Heinrich)라는 이름표가 새겨져 있었다. 죽은 군인의 이름표를 세탁 과정에서 실수로 떼지 않은 채 지급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군복을 잘못 지급받은 것으로 알고 파울이 옷을 교환하러 간다. 그러자 담당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인리히의 이름표를 떼버린 채 파울에게 군복을 다시 준다.

불과 1~2km를 사이에 두고 한 치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채 벌어지는 지루한 참호전에서 그저 명령에 따라 돌격하고 후퇴하면서 젊은이들이 죽어간다. 참호 속에 갇혀서, 참호 주변에서 사람이 죽고 죽은 사람의 군복을 물려받고 온 새로운 사람이 죽는 양상이 반복된다. 이런 의미에서 「서부전선, 새로운 게 없다」. 독일이 프랑스에 항복하는 문서에 서명하고 전쟁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휴전까지의 시간을 이용하여 프리트리히 장군(General Friedrich; 데비트 슈트리소프. Devid Striesow)은 최후의 공격 명령을 내린다. 근근이 살아남았던 젊은이들이 이 무의미한 돌격 과정에서 마저 죽어나간다. 

100여 년 전에 이미 지나간 이야기일까? 11월 11일은 계속 과자만 씹으면서 ‘기념’하면 될까? 아직 한국말도 제대로 모르는 아이들을 영어 학원으로 보내면서 굳이 영어 ‘유치원’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태어나서 자라는 과정이 전쟁터 같은 경쟁 사회다. MZ세대라는 근사한(?)말로 포장해서 너희들은 뭔가 변했다는 메시지를 준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개인이 갖는 의미가 진짜 그렇게 변했을까? 국가 앞에서 개인은 어떠한 모습으로 살고 있나? 파울과 그 친구들을 열광케 만들고 전장으로 보낸 교장의 열변을 상기하면서 영화를 한번 보시면 어떨까 한다. 그리고 한국사회의 모습도 함께 살펴 보시면 더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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