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턴 병원 및 응급실 전경./ 사진=신락균
킹스턴 병원 및 응급실 전경./ 사진=신락균

 


혼자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삶에 있어 많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 나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1인 가구 수는 급증하지만 아직까지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서비스는 부족하다. 그래서 1인 가구가 1인 가구에 관심을 갖고 공감과 연대감을 이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1코노미뉴스]는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맞춰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에 나가 있는 '1인 가구의 삶'을 날것 그대로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영국 1인 가구 신락균= 지난 2일 친구들과 한식당에서 저녁을 같이 먹었다. 오징어덮밥과 돼지 두루치기, 두부김치를 안주 삼아 소주도 한 잔 곁들였다. 몇 시간 전에 결정된 월드컵 16강 진출이 우리의 흥을 돋우었다. 그렇게 신나게 수다를 떨면서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2차로는 근처 카페에 가서 조각 케이크와 페퍼민트 차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서 씻고 잠에 들었다. 평소에는 새벽에 잘 깨지 않는데 다음 날 새벽 4시경에 잠에서 깼다. 더듬더듬 화장실에 다녀온 뒤 다시 자리에 누웠는데 갑자기 오른쪽 허리에 통증이 몰려왔다. 참고 다시 자려고 했으나 일반적인 근육통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다. 통증의 강도가 갑작스레 높아졌다. 마치 칼에 찔리면 이런 느낌이 들겠구나 싶었고 병원에 가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어두운 방에서 책상을 더듬어 핸드폰을 잡았다. 허리 뒤쪽 통증을 키워드로 넣어 검색해 보니 신장 결석이라는 단어가 눈에 보이면서 옛날에 대학 동기가 결석이 생겨 고생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동시에 집주인에게 도움을 청하러 3층 방에서 2층으로 내려가서 문을 두드려 도움을 요청했다. 통증이 너무 심해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옷을 대충 껴입고 집주인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 가장 가까운 킹스턴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영국의 의료시스템이 전반적으로 느리기에, 응급실 역시 한국과 다르고 대기를 많이 해야 한다는 사실은 주변에서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 몰랐다. 아마 긴급 상황에 통증이 동반되어 기다림이 더 오래 느껴졌을 수도 있다. 한국이라면 드라마나 다큐멘터리에서 보듯이 응급실 당직 의사와 간호사가 후다닥 달려 나와 환자의 상태를 봐주고 바로바로 적절한 조치나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했을 텐데 영국에서는 먼저 접수를 하고 난 뒤 당직 간호사가 있는 공간에 가서 한 번 더 증상을 설명해야 했다. 영국의 응급실에서는 접수된 부상자의 상태에 따라 일차적으로 부상자 분류(Triage)를 먼저 한다. 환자의 상태가 생사를 오갈 정도로 매우 심각하면 가장 우선적으로 치료를 하고 그 외 환자들은 비록 먼저 응급실에 들어왔더라도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된다. 응급실에 오면 기약 없이 기다리는 근본적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허리가 펴지지도 않고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간신히 증상을 설명했다.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를 타고 응급실 안쪽 공간의 침대로 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곳에서 무려 8시간이나 누워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의사를 보는 데 일단 한두 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겨우 만난 의사는 필자의 증상을 보아하니 신장 결석인 것 같다며 일단 '마법같은' 진통제를 먹으라고 했다. 그러고는 무엇을 어떻게 할 거라는 말도 없이 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마법 같이' 사라졌다. 나와 같이 갔던 집주인 역시 오전에 잠시 일이 있어 자리를 2시간가량 비웠고 그사이에 간호사가 중간중간에 들어와 혈압 체크 및 피검사를 위한 채혈을 해갔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마법 같다던 진통제도 소용이 없었다. 너무 아파서 아무나 와줬으면 싶었지만 간호사들은 와서 자기 할 일만 했다. 혈압만 재고 아무 말 없이 사라지는 무심한 사람들이다. 침대 위에서 고통에 시달리던 그사이에 당직 간호사도 바뀐 것 같았다. 다행히도 집주인이 다시 응급실로 와 주셨고 물을 떠다 주시는 등의 도움을 줬다. 새로운 아침 당직 의사를 만났을 때는 이미 시계가 9시 정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응급실 간호사와 의사들은 일을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를 정도로 환자를 찾지 않았다. 아마 필자가 우선순위에서 밀려서 그런 것도 있고 아침에 응급 환자가 많이 들어와서 그런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새로 온 의사는 내게 앞으로 CT 검사가 예정되어 있고 그 결과에 따라 추후 조치를 할 것이며 아프면 진통제도 놓아주겠다고도 했다. 소변 검사를 해야 하는데 소변이 나오지 않는 경우를 대비해 신장 활동을 높이기 위한 수액을 놓아주겠다고도 했다. 비록 의사가 말한 그 CT를 찍는 데까지 1시간이 넘게 진통제를 맞으며 고통을 버텨야 했다는 것이 아쉬웠을 뿐이다.

킹스턴 병원 및 응급실 전경./사진=신락균
킹스턴 병원 및 응급실 전경./사진=신락균

 

CT 촬영을 기다리면서 집주인이 본인의 아들이 다쳤을 때 응급실에 왔었던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영국의 응급실은 비록 오래 기다리지만 그래도 할 때는 확실해 해준다면서 위로를 건넸다. 실제로 그들의 조치는 한국에 비하면 상당히 느렸고 중간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기다리면서 육체적 고통을 감수해야 했지만 해야 할 조치는 빠짐없이 해준 것 같았다. 혈압과 열 체크도 정기적으로 하고, 필요할 때 진통제 투약도 해주고, 수액도 놓아줬다. CT도 오랜 기다림 끝에 찍을 수 있었다. 다만 각 조치마다 붕 뜨는 시간의 여백이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을 뿐이다. CT 촬영 후 약 1시간 지나 결과가 나왔고 의사가 들어와서 결과를 상세히 설명해 줬다. 결과는 신장에 결석이 생긴 것이 맞았고 평소에 물을 하루에 2L 정도는 마셔야 한다고 했다. 관련된 약 처방도 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몇 주 후에 클리닉 예약을 해 줄 테니 그때 다시 와서 결석이 잘 빠져나갔고 회복이 잘 되었는지 검진을 받으라고 했다. 모든 일을 마친 의사는 작별 인사를 남기고 쿨하게 사라졌다. 처방받은 약을 들고 퇴원할 때 시계는 오후 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

 

새벽부터 거의 10시간을 응급실에서 보냈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수준의 고통이었고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비록 홀로 남의 집에 얹혀사는 신세이지만 집주인이라는 존재가 때마침 아래층에 있었고, 때마침 주말 새벽이라 응급실에 내원하는 사람들도 많이 없었다. 보통 CT 스캔의 경우 상황에 따라 다음 날에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아마 응급으로 판단했는지 상대적으로 빨리 진행된 것 같았다. 만약 그 공간에 나 혼자 있었다면, 주위에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면, 조치가 늦어졌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전 세계적으로 1인 가구의 증가는 이미 멈출 수 없는 사회 현상이 되어버렸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1인 가구가 많이 증가하고 있지만 중장년층, 노년층의 1인 가구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에서 1인 가구 307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혼자 사는 것의 장점으로는 '자유로운 생활 및 의사결정', '혼자만의 여가시간 활용' 등이 있었다. 하지만 단점으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이 '응급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다'였고 이어서 '식사 해결', '여가 생활'등 뒤를 이었다. 필자가 이번에 겪은 상황은 1인 가구의 단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집주인은 해결책으로 좋은 배우자를 찾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배우자를 찾는 것이 요즘 시대에 무조건 정답은 아니겠지만 홀로살이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을 수만 있다면 1인 가구로부터 비롯되는 많은 사회 문제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의외로 단순하게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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