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미리캔버스/디자인=안지호 기자
사진=미리캔버스/디자인=안지호 기자

#. 1인 가구 김혜미(38, 가명)씨는 내년 1월 전세 계약을 앞두고 임대인으로부터 재계약 의사를 묻는 연락을 받았다. 임대인은 현재 전세 시세가 김씨가 계약한 보증금보다 낮아 계약을 해지할 경우 보증금을 돌려주기 힘들다며, 보증금 차액만큼 은행 이자로 계산해 매달 김씨에게 지급하는 역월세를 제안했다. 김씨가 거주하는 아파트는 매매 시세가 7억원대로 형성되어 있지만, 최근 거래가 전무하다. 김씨의 전세 보증금은 5억7000만원이다. 계약 당시에는 9억원에 달했던 집값이 올해 2억원 넘게 하락하면서 최근 전세 시세는 3억~4원에 형성됐다. 김씨는 “집주인이 역월세를 받지 않으면 돌려줄 방법이 없으니 '배 째'란 식으로 나오고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역월세를 받아도 될 것 같지만, 혹시라도 집값이 더 떨어지면서 집이 경매에 넘어가거나, 주기로 한 돈을 제대로 주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꺼려지는 게 사실이다. 보증금 걱정에 잠이 안 올 지경”이라고 호소했다. 

#. 1인 가구 성현수(41, 가명)씨도 전세 때문에 골치다. 성씨는 현재 전세보증금 3억8000만원에 살고 있다. 그런데 최근 전셋값이 빠르게 떨어지면서 인근 시세가 2억원대로 조정됐다. 계약 만료를 앞둔 성씨는 집주인에게 재계약 의사가 없음을 알렸다. 그러자 집주인은 계약을 연장해 줄 수 없냐며 역월세를 제안해 왔다. 성씨는 “뉴스로만 접했던 역월세 계약을 자신이 하게 될 줄 몰랐다. 집주인이 유동성이 심각해서 이대로라면 경매가 불가피하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역월세를 받아들였다”며 “이게 잘한 일인지 모르겠고, 안 좋은 생각이 들어서 혼란스럽다”고 토로했다. 

이른바 '갭투자'가 성행했던 수도권과 일부 지방을 중심으로 '역월세'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역월세는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월세를 주는 것으로 주택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이 급락을 거듭하면서 발생한 이례적인 현상이다. 

고금리, 대출 규제 등으로 유동성 위기에 놓인 임대인들이 선택한 고육지책이다. 하지만 역월세는 시한폭탄과 같다. 임대인은 세입자가 보증금 차액만큼 이자를 월세로 받으니 손해 볼 것은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금리가 얼마나, 언제까지 오를지 예측할 수 없어 현시점에서 임대인이 제시하는 월세가 적절한 금액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변동금리에 맞춰 월세를 올려준다고 해도, 지금도 유동성이 부족한 임대인이 이를 지켜줄 수 있을지 신뢰도 떨어진다. 

무엇보다 집값과 전셋값이 더 떨어져서 '깡통전세'가 될 경우, 집이 경매로 넘어가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문제가 등장할 위험이 있어 세입자의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처럼 임대차시장에 혼란이 가중되면서 1인 가구의 불안감 역시 커지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통계로 보는 1인 가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1인 가구(664만3000가구)의 17.5%(115만9000가구)는 전세로 거주하고 있다. 이 중 51.6%인 62만7000가구가 30대 이하 청년 1인 가구다. 상당수가 변동형 전세보증금 대출을 받아 전세에 거주 중일 것으로 추정된다. 

역월세·역전세 등으로 전세시장이 불안하면 세입자 비중이 높은 1인 가구부터 피해를 보게 된다. 이에 전세거래동향에 1인 가구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9일 KB부동산이 발표한 주간KB주택시장동향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 대비 0.66% 하락했다. 

지역별로 수도권은 -0.93%, 서울 -0.89%, 경기도는 -1.03%, 인천은 -0.60%를 기록했다. 5개 광역시도 광주 -0.38%, 울산 -0.54%, 대전 -0.58%, 부산 -0.60%, 대구 -0.70%로 일제히 하락했다. 기타 지방 전셋값은 강원 -0.07%, 충북 -0.16%, 전북 -0.2%, 충남 -0.23%, 경북 -0.24%, 경남 -0.37%, 전남 -0.45%, 세종 -0.74% 순으로 떨어졌다. 

계속되는 금리인상, 거래절벽 현상으로 부동산 시장이 출렁이면서 전셋값이 연일 하락세를 이어가는 추세다. 

여기에 전세대출 금리는 8%를 눈앞에 두고 있다. 금일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전세대출금리는 5.03~7.75%다. 수협은행 Sh전세금안심대출은 상단이 8.03%로 8%를 넘어섰다. 

임대인은 물론 임차인도 고민이 깊어지는 시기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최근 2~3년간 집값 급등기에 과도한 대출로 집을 산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줄 여력이 부족해지면서 역월세가 발생하고 있다"며 "역월세 현상은 당분간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서울 은평구의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시장 분위기는 한파보다 더 냉랭하다. 재계약을 앞두고 불안한 세입자들의 문의전화는 종종 온다"며 "갭투자한 물건은 역월세도 위험하다. 후순위에 융자가 끼어 있다면 집주인의 자금력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의미다. 이런 곳은 집값이 더 떨어질 경우 보증금을 지키기 힘들 수 있다. 임대인이 역월세를 제안했다면 계약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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