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가 아닌 삶으로 기억해야 할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박진옥 나눔과 나눔 사무국장
박진옥 나눔과 나눔 사무국장

'무연고 사망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아무런 연고(緣故)도 없이 산 사람. 그래서 가족도 친밀한 관계도 없이 무연생(無緣生)을 살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들의 인생에도 '화양연화(花樣年華)'와 같이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삶의 순간이 있었을 테고, 누군가에게 사랑받았고 누군가를 사랑했고, 또 누군가에게 감사받았을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2022년 서울시에서 사망한 1,072명의 '무연고 사망자'는 법률에 정한 바에 따라 '무연고 사망자'라고 불리고 그에 따른 행정절차로 삶이 정리되었지만, 여기에는 1,072개의 개별적 삶이 있었다.

◇존경과 감사를 받았던 '무연고 사망자'

서울시립승화원에 있는 서울시 공영장례 전용 빈소 뒤편에는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추모 메시지가 게시되어 있다. 

추모 메시지 중에는 "존경하옵는 〇〇〇교수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옵니다. 좋은 곳에서 편안히 휴식 취하시고 좋은 곳으로 극락왕생하시길 기도드립니다"라는 추모글이 있다. 지난해 6월 '무연고 사망자'로 공영장례를 치른 한 교수를 위해 동료 교수가 올린 글이다. 고인은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퇴직하고 대학에서 교수로 학생을 가르치다 지난해 5월 돌아가셨다.

지난해 10월에는 해양구조대원이었던 분의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가 있었다. 동료 대원은 "상황 발생 시 가장 먼저 '출동합니다'라고 답해주신 당신"이라며 동료 대원의 이름을 기억하겠다는 추모글을 올렸다. 고인은 생전에 민간해양구조대 드론수색대원으로 인명구조 봉사를 해왔다.

이렇듯 '무연고 사망자' 모두가 무연생(無緣生)의 삶을 살지 않았다. 모두가 '외롭고', '쓸쓸한' 삶을 살지도 않았다. 오히려 존경과 감사를 받았던 우리 이웃들도 '무연고 사망자'가 되기도 한다. 이들은 단지 법적으로 장례를 치를 사람이 없었을 뿐이고, 동료들이 장례를 치르고 싶어도 가족이 아닌 사람이 어떻게 장례를 치를 수 있는지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아 제대로 몰랐을 뿐이다.

 

고인의 삶과 죽음을 모두 대변하지 못하는 '무연고 사망자'라는 단어

서울시에서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나눔과나눔은 무연고 사망자를 적을 때 작은따옴표를 사용하고 있다. '무연고 사망자'는 단어가 고인의 삶과 죽음을 모두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이로만 살펴봐도 지난해 서울시 1,072명의 무연고 사망자의 삶은 참으로 다양하다. 2022년에 태어나 첫돌 생일을 맞지 못한 아기들이 있다. 그리고 어린이 병원에서 18개월의 짧은 삶을 살았던 아기도 있다. 비록 짧은 생애지만, 아기는 어린이 병원 간호사분들과 의사 선생님들의 따뜻한 사랑을 받았고 마지막 길에도 간호사분들이 함께 눈물로 배웅했다.

청년 중에는 행려환자로 요양병원에서 사망한 만 25세 청년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태국에 있는 가족이 가난하고 어려워 한국으로 일하러 왔다가 무연고 사망자가 된 만 29세 청년도 있다. 그리고 1922년에 태어나 한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100년을 살았던 어르신까지 '무연고 사망자'의 삶은 사실 '무연고 사망자'라는 단어로 대상화되어 버렸지만, 이분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누군가에게 있을 고유한 삶이 있었고 역사가 있었다. 

무연고 사망자 온라인 애도 공간 화면./ 사진=박진옥
무연고 사망자 온라인 애도 공간 화면./ 사진=박진옥

 

◇2023년에도 계속되어야 할 애도와 기억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사망한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위한 온라인 애도 공간이 있다. 2018년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영장례가 시작된 해부터 매년 돌아가신 '무연고 사망자'들의 이름과 함께 한 분 한 분의 삶의 조각을 통해 이들을 애도하고 기억하며 추모 메시지를 남길 수 있다. 

2023년 바쁜 일상이지만, 잠시 이 온라인 애도 공간에 방문해 우리 이웃이었던 '무연고 사망자'를 만나보는 것도 좋겠다.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온라인 애도 공간은 연령별, 구청별, 거주지와 사망월 별로 구분해서 국화꽃이 된 고인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추모 공간 하단에 이들을 위한 추모와 기억의 메시지를 남겨보자. 추모 메시지 한 줄만으로도 이들의 존엄함을 인정하는 작은 몸짓이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이름으로 불렸던, 우리의 가족이었고 이웃이었던, 무엇보다 우리와 동시대를 함께 살았던 2022년 사망한 1,072명의 '무연고 사망자'의 이름을 우리 사회가 2023년에도 함께 애도하고 기억했으면 좋겠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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