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존 이용하고, 내가 왜 힘든지 알았다"
1인 가구 외로움·고립감 해소 도움

[1코노미뉴스]는 30일 오전 화성시정신건강복지센터 T.T존을 찾았다. /사진 = 조가영 기자1
[1코노미뉴스]는 30일 오전 화성시정신건강복지센터 T.T존을 찾았다. /사진 = 조가영 기자1

#. 40대 여성 김은아(가명)씨는 요즘따라 기운이 없고 마음이 힘들어 T.T존을 찾았다. T.T존을 이용해보고 여러 감정을 느낀 김씨는 연계해서 심리상담을 받았다. 그리고 자신이 왜 힘든지 정확하게 깨닫게 됐다. 상담을 통해 아들이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은 김씨는 "그동안 왜 힘든 감정을 느꼈는지 이번 기회에 깨닫게 됐다"며 "T.T존 이용을 계기로 아들까지 정신건강전문요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 50대 여성 박은빈(가명)씨는 T.T존 상담 과정에서 자살 유가족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박씨는 자살로 떠나보낸 가족을 추억하는 '메모리존'을 연계 받았다. 자살 유가족들은 고인을 추억할 수 있는 물건을 각자 상자에 담아 메모리존에 두고 원할 때마다 방문하곤 한다. 박씨도 한 달에 한 번씩 메모리존을 찾는다. 보통은 집 근처 호수공원에 산책을 나왔다가 센터에 잠깐 들러 글 한 줄을 쓰거나 초 하나를 피우고 간다. 매주 금요일 4시에 열리는 자살 유가족 모임에도 나가고 있다.

경기도 화성 동탄신도시에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성인이 마음껏 울 수 있는 공간을 찾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에 화성시정신건강복지센터에 마련된 T.T존은 1인 가구 사이에서 호평이 자자하다.

1인 가구의 이목을 끈 T.T존, [1코노미뉴스]도 찾아가 봤다.

30일 오전 동탄역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화성시정신건강복지센터 시민정신건강체험관 'T.T ZONE(티티존)'에 도착했다. 이곳 T.T존은 2019년에 한 중년 남성이 '마음껏 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해서 만들어졌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이용자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센터 내부는 파스텔 톤으로 꾸며져 산뜻하면서 차분한 느낌이 들었다. 벽면에는 빼곡한 메모지와 사진들이 나무 모양으로 꾸며져 있었다.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프로그램실이 T.T존이다. T.T존은 두 공간이 있는데 현재는 하나만 운영하고 있다. 한번 T.T존을 직접 체험해보기로 했다.

화성시정신건강복지센터 시민정신건강체험관 내부./사진 = 조가영 기자
화성시정신건강복지센터 시민정신건강체험관 내부./사진 = 조가영 기자

먼저 상담실로 이동해 이용 방법 안내와 5문항 정도로 구성된 설문조사지를 받았다. 기자는 눈물과 관련한 설문 내용 중에서 '성인이 되어서 우는 것은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한다'에 동의 표시를 했다.

T.T존에 들어가서 형광등을 끄고 노란 조명을 켜니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방 안에는 인형, 시계, 공기청정기, 세면대, 거울, 휴지 등이 구비되어 있었다. 신발을 벗고 소파에 올라앉아 TV로 영상을 시청했다.

영상의 내용은 갑작스럽게 배우자의 상실을 경험한 한 청년에 대한 얘기였다. 10분간 조용히 영화를 시청해보니 오로지 순간의 감정에만 집중해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내부가 방음벽으로 되어있어 믿음직한 느낌도 났다.

기자는 결혼 후 아내가 암에 걸려 상실을 경험한 청년이 아내에게 쓴 편지를 읽는 대목에서 울컥하는 느낌을 받았다. T.T존을 이용해보니 공감과 위로를 받는 듯한 느낌과 함께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T.T.존 내부./사진 = 조가영 기자
T.T.존 내부./사진 = 조가영 기자

센터 이용자들은 T.T존에서 50분간 영상을 시청한다. 체험을 마친 후에는 10문항으로 된 간이우울조사를 진행하며 T.T존에 대한 소감을 나눈다. 보통은 혼자서 T.T존을 체험하는데 두 명이 같이 이용할 수도 있다. 이용자들은 연령이나 특이사항에 따라 10종류의 영상 중에서 추천을 받는다.

현장에서 만난 정신건강전문요원은 "웃음치료는 많은데 우울치료는 없다. 우울치료의 일환으로 눈물을 흘리는 게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상실이 꼭 자살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반려견 상실이나 자녀가 결혼해서 독립한 경우도 상실이 있을 수 있다"며 "다양한 경우에서 일어날 수 있는데 이때 충분히 상실감 느끼고 애도를 하지 못하면 감정이 쌓이는 문제가 발생한다. T.T존은 상실과 애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렸을 때 부모의 신체적·정신적 학대로 감정을 분출하지 못하는 경우는 커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해소되지 못한 감정이 쌓이다가 나중에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해서 그 전에 예방하자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T.T존 이용자는 중년 여성이 가장 많고 청년, 노인 등 다양하다. 이용자는 많으면 한 달에 20명까지도 T.T존을 찾는다. 중년 남성 이용자는 별로 없지만 전화로 직장에서 힘들었던 경험을 털어놓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T.T존을 찾는 분들은 보통 가족이나 친구에게 말을 해봤는데 뚜렷하게 나아진 부분이 없어서 오는 경우가 많다. 현대인들이 바쁘게 살다 보니 나를 돌아볼 시간 자체가 별로 없다. 제대로 된 공감을 받지 못하고 모두 다 힘들다는 식의 대화에 실망감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 본인이 뭐 때문에 우울한지 잘 모르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냥 직장에서 어떤 일이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T.T존을 찾았는데 상담을 해보니 어떤 부분 때문에 우울감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는지 그제서야 알게 되는 경우다"고 전했다.

또 "최근에는 사회적 고립이 문제가 되는데 노인 1인 가구 이용자들이 외로움이나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T.T존을 이용함으로써 우울감이나 고립감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T.T존이 있는 동탄7동행정복지센터 전경./사진 = 조가영 기자
T.T존이 있는 동탄7동행정복지센터 전경./사진 = 조가영 기자

화성시정신건강복지센터에는 T.T존을 중심으로 힐링존, 메모리존이 마련되어 있다. 모두 '상실과 애도의 공간'으로 불린다. 특별히 정신건강 상담 핫라인을 도입해 센터와 바로 내담자 연결이 가능하다.

힐링존에서는 월 2회 슬픈 영화를 상영하는데 현재는 운영하고 있지 않다. 대신 좀 더 직접적인 자살예방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다. 메모리존은 자살유가족을 위한 공간인데 꼭 유가족이 아니더라도 이용할 수 있다. [1코노미뉴스 = 조가영 기자]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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