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옥 나눔과 나눔 사무국장
박진옥 나눔과 나눔 사무국장

사회에서 죽음은 단지 육체적 죽음만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죽음의례인 장례를 거친 후 사망신고를 통해 비로소 한 명의 사망자라는 사회적인 정체성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망신고를 마치지 못한 경우 육체적으로는 사망했지만,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살아 있는 존재가 된다.

일반적인 경우, 사망신고 누락은 상상하기 어렵다. 사별자들에게 고인의 사망신고는 너무도 당연한 절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동안 '무연고 사망자'는 사망진단서(시체검안서) 발급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또는 행정 공무원이 사망신고를 해야 하는지 몰라 누락 되고 있었다.

'무연고 사망자' 사망신고 누락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무연고 사망자' 사망신고 누락은 이미 10년 전에도 제기되었던 사회문제다. 2012년 '무연사망자, 주민등록상엔 생존'이라는 언론 보도가 있을 정도였다. 당시 서울시 온라인 제안 창구에도 '구청장 직권으로 무연고 사망자의 사망신고를 할 수 있도록 개선'하자는 제안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러한 보도와 제안이 이어지면서 2014년 5월 국민권익위원회에서는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직권 사망처리 근거 규정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기에 이른다. 이후 국회에서는 같은 해 7월부터 법개정 논의를 시작, 12월 30일 무연고자의 직권 사망신고를 위해 법을 개정했다.

이로써 '무연고 사망자'의 시신을 화장한 지방자치단체장은 신설된 「가족관계 등록에 관한 법률」 제88조의2에 따라 직권으로 사망신고를 할 수 있게 됐다. 사망신고 누락으로 인해 발생했던 '무연고 사망자'의 개인정보 도용, 사회복지비 부당집행 등과 같은 각종 범죄 발생의 우려도 함께 해소될 것으로 예상했다. 

10년 전 제도는 마련되었지만, 사망신고 누락은 지속

하지만 예상과 달리 사망신고 누락은 여전했다. 개정된 법이 충분히 홍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망신고는 당연히 가족이 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행정 공무원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서울시 공영장례에 참여했던 지인들이 고인의 사망신고를 어떻게 하냐며 구청 공무원에게 물었는데, 제대로 답변을 듣지 못해 답답했다며 하소연하기도 했다. 또 다른 지인은 구청 공무원에게 "내가 가까운 친구인데 필요한 거 있으면 협조하겠으니 사망신고 좀 해줘라"라며 여러 차례 전화로 사망신고를 요청하고 나서야 "한 번 해보겠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공영장례에 참여했던 한 연고자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시신을 위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담당 공무원이 사망신고는 가족이 해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시체검안서 발급 비용 30만 원을 부담해 사망신고를 직접 진행했다고 한다.

공무원이 개정된 법을 알아도 사망신고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예산 문제다. 사망신고를 위해서는 반드시 사망진단서(시체검안서) 원본이 필요하다. 그런데 집이나 거리에서 사망한 때에는 30만 원 정도의 발급 비용이 든다. 지자체 예산에는 이 비용이 없다. 국회 김원이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이 보건복지부를 통해 확인한 사망신고 누락 건수가 전국적으로 302명이나 된다(2021년 1월부터 2022년 9월까지).

사진=나눔과 나눔
사진=나눔과 나눔

 

사망진단서(시체검안서) 없이도 '무연고 사망자'사망신고 가능

지난 1월 '무연고 사망자' 사망신고 누락에 대한 언론 보도 이후 지자체의 한 공무원이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이에 대한 질의서를 제출하여 해결 방법을 요청한 것이다. '무연고 사망자'의 경우 구청장이 관할 지방법원에 사망신고를 요청해서 사망신고 절차를 밟게 된다는 것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요청받은 서울남부지방법원은 다시 법원행정처에 진단서 또는 검안서가 '무연고 사망자'사망신고에 필수 사항인지를 질의했다. 공무원의 노력 결과에 지난 3월 3일 법원행정처는 '가족관계등록선례 제202303-1호'로 회신했다. 거기엔 "진단서 또는 검안서를 반드시 첨부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로써 '시체검안서'원본 제출 요구로 인해 죽어도 죽지 못했던 '무연고 사망자'의 사망신고가 가능해졌다. 민원이 없는, 그래서 쉽게 변하지 않았던 '무연고 사망자'행정업무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와 언론이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문제를 제기했고, 이를 통해 구청과 관계 기관 공무원이 관심을 가지게 된 덕분이다. [1코노미뉴스=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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