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화 청년 1인 가구 칼럼니스트 
한유화 청년 1인 가구 칼럼니스트 

조문객 수가 많지 않은 한적한 장례식에 다녀 온 어른들이 짐짓 씁쓸한 이야기들을 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특히나 살짝 윗 세대의 남성 어른들은 '장례식에 와 줄 진정한 친구의 유무'를 '이만하면 잘 산 인생'의 지표로 삼기도 했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들 중 하나는, 자신의 '사회적 고립'을 타인에게 들키는 일이었다. 사회적 고립을 기피하는 것은, 그것이 사회에서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친구가 없다는 것은 생존 능력이 부족하다는 의미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핵심에는 '정보적 고립'이라는 요소가 있다. 내 부모님 세대는 외딴 시골에 살았기에 주기적으로 읍내에서 소식을 얻어와야 했단다. 사돈의 팔촌이라도 서울에 사는 지인이 꼭 한 명 있어야 나라 돌아가는 소식도 알고, 그렇게 정보가 있어야 서울에 자식 대학도 보내고, 땅도 사고, 피난도 갔던 세대다. 택시 기사님도 갈빗집 사장님도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모르고 살면 안 되니까 뉴스를 항상 틀어뒀다. 자신의 경제적 이득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 때도 그렇다. 당시엔 어떤 문화권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 접하는 정보의 종류도 한쪽으로만 치우치기 쉬웠기에 지역 별로 서로 다른 '확증 편향'을 갖게 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다.

큰일이다. 결혼하지 않는 인생 계획을 갖고 살아가는 나는 어쩌란 말인가! 가족 단위의 정보 수집 활동에서 1인 가구는 별 수 없이 불리해진다.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하고 있는 지금은 그나마 낫겠지만, 나중에 은퇴라도 하고 나면(? )후배 세대, 자식 세대가 주로 소비하는 정보들이 나에게는 몇 퍼센트 정도 도달할까? 요즘에는 비교적 쉽게 유튜브나 틱톡 같은 다양한 채널에서 범세대, 다세대적인 '멀티 제너레이션 콘텐츠(multi-generation contents)'를 접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신조어와 점점 멀어지는 세대가 되면 그런 콘텐츠를 즐길 때조차 2차 통역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한자 투성이인 신문을 읽을 때와 비슷하게 어려우려나.

요즘 혼삶이 경계해야 할 '정서적 고립'

이제는 나랏소식을 알기 위해 호랑이가 사는 산고개를 넘어 한양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라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사회적, 정보적 고립 상태에 놓이지 않기 위해 일부러라도 더 다양한 문화를 접하러 나서고, 적극적으로 다른 세대에 호기심을 갖게 된다면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폭넓은 네트워크를 즐길 수 있는 시절이기도 하니까. 이제는 사회적 고립만큼이나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정서적 고립'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 네트워크가 촘촘한 E형(외향형) '인싸'라도 정서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 의외로 인싸들의 정서적 고립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잔뜩 신이 나서 대화를 주도하던 중에 상대의 반응이 묘하게 어긋나는 기분을 느끼거나, 시끌벅적한 모임이 끝나도 누군가와 연결된 적이 없는 듯한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사람들과의 교류에서 늘 비슷한 말투와 표정을 사용하며, 내 진정성을 다 꺼내놓지 않아도 유쾌한 만남을 가질 수 있다. 스스로의 본질에 가 닿을 만한 몰입의 순간은 종종 경험하지만 그것이 내 안에서만 이뤄지는 때가 더 많다.

삶에서 나 자신을 고립시키는 요소는 생각보다 아주 하찮은 것들일 수 있다. 약간의 피로함, 약간의 귀찮음, 약간의 쑥스러움, 약간의 망설임 이런 것들 말이다. 정서적 고립은 대체로 아주 서서히 은근하게 진행되지만 특정 요건이 더해지면 어느새 조금씩 속도가 붙는다. 그중 하나가 '에너지 부족'이다. 정서적 교류에 충분한 기운을 쏟기 어려울 만큼 체력적으로 지쳐 있거나, 일이나 일상에서의 의무와 같은 다른 생각들이 이미 정신을 점유하고 있어 남는 정서적 에너지가 적을 때이다. 대화를 듣고는 있으나 끄덕이지 않을 때, 혹은 반응은 해도 공감은 하지 않을 때이다. 이렇다 보니 정서적 고립이 반드시 고독감을 동반하지는 않을 때가 많다. 

가까운 사람과의 깊이 있는 정서 교류는 당연히 중요하지만, 이미 기존에 형성된 인간관계에만 갇혀있다면 그 또한 고립이 될 수 있다. 내 가족하고만 소통하는 삶, 더 이상 새로운 친구가 생기지 않는 삶도 어쩌면 범위가 넓은 고립이다. 직장에 다니는 경우라면 자연스럽게 동료들이 바뀌면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정서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치는 관계이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때도 많지 않은가. 조금씩 새로운 친구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과 노하우를 확보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런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사회적인 은퇴 시기를 지나면서 삶이 급속도로 피폐해지는 것을 종종 본다. 

고립을 이기는 '교감'

사람들은 정서적인 교류의 상당 부분을 '인적 네트워크를 보강'하는 방법으로 풀어낸다. 하지만 반드시 대화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아주 단순한 방식으로 정서적인 교감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반려동식물 같은 존재와의 교류가 좋은 예가 되어준다. 내 경우에는 자연과의 교감이 꽤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어린아이들은 대부분 자연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방법을 안다. 나 역시 자연에서 재미있게 노는 법을 알아서 찾아내곤 했었지만 특정 연령을 넘어오면서 오히려 그 방법을 잊어버렸다. 요즘에 와서야 조금씩 자연에서 또 다른 무언가를 보아내는 식견이 쌓이면서 살짝 다른 방식으로 자연을 대하게 되었다. 잔뜩 노랗게 어여쁜 햇빛 아래에 누우면 단순히 내 살갗이 따뜻한 행복감만 오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인 이치를 떠올리며 가슴이 벅차오르거나 감사를 기반으로 한 충만함이 생기는 것이다. '자연에 무슨 정서가 있다는 것인가'라는 냉소적인 의문은 더 이상 품지 않게 되었다.

결혼하지 않는 계획이 있는 1인 가구, 혼삶에게는 필연적으로 고독과 고립에 대한 두려움이 따라온다. 하지만 고립을 피하기 위한 준비와 대처 방법들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그 두려움을 건너갈 자신감이 된다. 삶의 소화력이 생긴다. 고독감을 소화해 내는 1인 가구는 비로소 오롯이 자신에게 몰입하는 혼삶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

[저자 소개] 네이버 블로그 <직장인 띄엄띄엄 세계여행> 운영, 34개국 250여 회 #혼행 전문 여행블로거 

'남의집' 소셜링 모임 <여행블로거의 혼삶가이드>의 호스트

혼삶이 두렵지 않은 합기도 4단, 23년 경력의 '무술인'

현) 비욘드바운더리 글로벌 커머스 본부장

전) 이랜드차이나 상해 주재원, 중국 리테일 런칭 전략기획 

후) 독립출판 레이블 리더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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