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세 집 건너 한 집이 1인 가구인 시대가 됐다. 2022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21년 서울시 1인 가구 비중은 전체 가구의 36.8%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1인 가구는 이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구 형태로 자리매김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해 24개 1인가구지원센터에서 교육, 여가, 상담, 사회적 관계망 개선 등 다양한 1인 가구 지원 사업을 펼쳤다. 총 3만2825명의 시민이 1인 가구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1640건의 1인 가구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1인 가구는 만족감을 느꼈을까. [1코노미뉴스]는 서울시와 함께 '1인 가구 지원사업 우수 수기 공모전'에 참가한 1인 가구의 체험담을 <1인 가구 스토리> 코너를 통해 장기 연재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서대문구 1인 가구 A씨 =서른 살, 허리가 고장 났다. 처음은 으레 그렇듯 급한 일이 밀려서 책상에 앉아 몇 날 며칠 컴퓨터를 붙잡고 있을 때 잠깐 허리가 찌뿌둥하고 마는 정도로 시작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어떻게 앉아 있어도 서 있어도 참을 수 없는 허리 통증이 시작됐다. 이러다간 큰일 나겠다 싶어 병원에 갔고 그전까진 남의 일로만 생각했던 허리 디스크 초기 진단을 받았다. 이 정도는 사무직에게 흔한 증상이라는 말에 다들 이 정도 고통은 달고 사는 건가 해서 다시 한번 놀랐다. 통증 감소를 위한 주사를 허리에 여러 군데 맞고 각종 치료를 받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잠깐 그 며칠만 덜할 뿐 금세 참기 어려운 통증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때, 그렇게 발등에 아주 뜨거운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나를 돌보는 일을 난생처음으로 시작했다. 바른 자세와 수면 습관, 내가 먹는 음식들에 관심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운동이다. 일에 매몰되어 있던 하루 일과 사이사이에 운동을 채워 넣고 운동시간만큼은 타협하지 않기 시작했다. 재활 트레이닝으로 허리와 코어를 집중적으로 단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매주 맞던 허리 통증 완화 주사를 끊었다. 그리고 반년 정도가 지난 뒤에는 나를 그렇게나 괴롭히던 허리 통증이 드디어 내 일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 이후로 온갖 운동을 전전하다 이건 내 삶과 오래오래 함께 할 운동이다 싶은 종목도 하나 발견해서 몇 년째 꾸준히 해오고 있다. 살기 위해, 아프지 않기 위해 시작한 운동이 지금은 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일과가 되었다. 동시에 지난 몇 년 새 여성들이 등장하는 각종 스포츠 예능들이 기다렸다는 듯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도 운동을 단순 건강 유지 목적을 넘어서 가장 즐겨하는 취미로 꼽는 친구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동아리 모임의 주제는 운동으로 해볼까?‘란 생각이 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 것 같다. 

1인 가구 여성에게 같은 1인 가구 여성 친구들만큼 소중한 네트워크도 없다. 그리고 우연히 지인들의 단체 메시지방을 통해 알게 된 서초구의 '서리풀 싱글싱글 동아리'는 내게 그 네트워크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키워나가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1인 가구의 사회적 관계망 형성을 위해 프로그램 참가자가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이를 토대로 1년간 약 10회에 걸쳐 정기적으로 모임원들과 함께 모임을 가지는 형식이다. 참가자들이 선정한 주제는 독서, 등산 등 각양각색이었는데 2021년 내가 처음으로 프로그램에 참가했을 때 신청했던 주제는 바로 공방 체험이었다. 주변 1인 가구 친구들을 끌어모아 한 해 동안 목공, 도자기, 은공예 등 다양한 주제로 매월 하나씩 공방 체험을 진행했다. 매번 내가 힘들여, 하지만 즐겁게 만든 공예품 하나를 집으로 가져오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나무를 깎거나 흙을 빚는 그 시간 동안 모임원들과 도란도란 수다를 떠는 게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2022년에도 동아리 모임을 진행하리라 마음먹고 있던 중에 올해 모임 주제는 운동으로 정하게 되었고, 이 모임계획에 신난 주변의 1인 가구 여성들을 열심히 끌어모았다. 그렇게 총 7인이 모인 이번 모임의 이름은 '우먼헬스101'로 확정됐다. 앞으로 10회기의 모임을 어떤 운동으로 채워볼까 아이디어를 주고 받는데 나오는 종목들이 열 개를 가뿐히 넘어 끝없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첫 모임의 주제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건 풋살. 관련한 한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기도 했고, 이런 영향들로 각지에서 여성 풋살 클럽이 생겨 접근성도 한결 좋아지면서 주변 사람들도 한 명 건너 한 명은 풋살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풋살이 처음인 모임원들도 있고 하여 풋살 원데이 체험 클래스를 찾다가 강사분을 섭외하고, 팀을 나누어 경기를 하려면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 하셔서 모임원들의 지인들도 수소문해서 다 끌어모으고, 구장도 대관하면서 일이 커졌다. 그렇게 따뜻한 봄날 엄청 신이 난 상태로 월드컵경기장 내 풋살구장에 모두가 모였다. 이날 누군가는 자신의 숨겨진 드리블 재능을 발견하고, 누군가는 스스로 모르고 있던 자신의 저돌적인 공격성을 깨달았으며,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공에 얼굴을 제대로 맞는 경험을 했다, 그것도 아주 세게. 여러모로 잊지 못할 하루였다. 

 

풋살만큼이나 기억에 남은 건 여름날에 한강 뚝섬유원지 서핑클럽에서 진행한 스탠드업패들보드(SUP)다. 여름은 시작되었고, 밖은 더우니 실내 스포츠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며 종목을 찾아보던 중에 서울 한복판에서, 그것도 한강에서 해양 스포츠를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호기심에 선택한 종목이었다. 

먼저 땅에서 보드를 타는 법, 방향을 바꾸는 법 등을 상세하게 강습 받고 드디어 한강으로 보드 위에 올라탄 채로 입수했다. 서울 시민에게 한강은 워낙 익숙하고, 틈만 나면 애용하는 산책 코스이지만 이렇게 한강 물에 직접 들어와 보는 건 모임원 모두에게 처음이었다. 보드에서 균형을 잘 잡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보드에서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강사님이 말씀하셨다. 다들 오늘 결코 물에 빠지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겠다는 다짐을 하고 비장하게 패들을 손에 쥐었다. 처음에는 모두 보드 위에 얌전히 앉아만 있었는데, 슬슬 익숙해지면서 하나둘 일어나서는 나중에는 모두가 멋지게 쓱쓱 노를 저으며 속도를 붙여 빠르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말 그대로 물 위를 걷다 보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강사님의 신호에 맞춰 다 같이 일렬로 서로의 손을 잡고 보드를 일렬로 정렬해서 저무는 해를 바라보는데 시간이 잠시 멈춘 것 같았다. 풋살에 이어, 이번 운동 모임을 하면서 가진 잊지 못할 두 번째 순간이었다. 

그렇게 2022년 한 해 동안 우리가 함께 한 종목들은 풋살, 스탠드업패들보드, 주짓수, 에어리얼 후프, 양궁, 실탄사격, 빈야사 요가 등이다. 이 중 몇 가지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것 또는 하고 싶었지만 혼자서는 막상 엄두를 못 내던 것들이었다. 나는 양궁에 제대로 재미를 붙여서 정기권을 끊고 이제는 틈만 나면 다녀온다. 점수를 올리는 것도 장기적인 목표지만, 시위에 화살을 걸고 집중하는 그 순간 머리가 비워지는 경험을 한 번 하고 나니 머리가 복잡할 때면 이제 활 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다른 모임원 한 명은 요가 체험 이후 그동안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요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럭비, 축구 같은 팀 스포츠가 아니면 관심이 안 갔는데, 그간 격한 운동 전후에 스트레칭을 전혀 하지 않은 여파가 요즘 몸 여기저기에 나타나던 참이었다고 했다. 요가 체험을 하면서 몸 구석구석 마치 꽁꽁 말려 있던 것 같던 근육들이 제대로 펴지는 것 같은 기분에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모임 주제가 주제다 보니 운동 전후로 나누는 수다의 대부분도 운동 이야기다. 각자 발견한, 또는 빠져버린 운동 이야기를 하고 먹는 것, 수면, 정신 건강 등 서로를 아끼고 응원하는 마음이 듬뿍 담긴 수다 시간을 가질 때마다 정말 건강히,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매번 하게 된다. 

많은 1인 가구들이 매일 똑같은 일상에 매몰되어 주변 사람을 돌아보거나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일을 후순위로 미루게 되는 걸 자주 보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이건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 가속화되어가는 거라 생각한다. 목적 없는 단순 친목 모임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지만 이렇게 함께 무엇이 되었든 같은 활동을 함께 하고 같은 경험과 추억을 공유하는 관계, 특히 그게 정기적으로 진행될 때 관계의 거리가 멀든 가깝든 서로 든든함을 느끼는 경험을 이번 동아리 활동을 통해 해볼 수 있었다. 올해 한 일들 중 즐겁고 보람 있었던 일 중 하나로 손꼽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제는 벌써 내년에는 무슨 주제로 모임을 만들지, 이번에는 또 어떤 추억을 함께 쌓게 될지 계획하고 구상하고 또 기대하는 중이다. 다들 또 운동을 하자고 하는데, 역시 혼자 하는 운동도 재밌지만 함께 하는 운동은 열 배로 재밌어서 그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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