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세 집 건너 한 집이 1인 가구인 시대가 됐다. 2022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21년 서울시 1인 가구 비중은 전체 가구의 36.8%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1인 가구는 이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구 형태로 자리매김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해 24개 1인가구지원센터에서 교육, 여가, 상담, 사회적 관계망 개선 등 다양한 1인 가구 지원 사업을 펼쳤다. 총 3만2825명의 시민이 1인 가구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1640건의 1인 가구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1인 가구는 만족감을 느꼈을까. [1코노미뉴스]는 서울시와 함께 '1인 가구 지원사업 우수 수기 공모전'에 참가한 1인 가구의 체험담을 <1인 가구 스토리> 코너를 통해 장기 연재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서대문구 1인 가구 A씨= 회전목마 앞에 선 젊은 부부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부부 사이에 서 있는 꼬마는 솜사탕을 손에 들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유치원 앞을 지나다가 우연히 마주친 한 장의 그림은 한동안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내게도 크레파스를 꾹꾹 눌러가며 도화지 가득히 그림을 그리던 시절이 있었다. 학기 초가 되면 선생님은 어김없이 가족사진을 가져오거나, 그림을 그려오라는 숙제를 내주시곤 했다. 나는 투덜거리면서도 연필로 밑그림을 그렸다. 아빠, 엄마, 동생, 그리고 내 모습을 공들여서 크레파스로 완성하곤 했다. 

만약 어린 시절의 내게 가족이란 무엇이냐고 누군가 물었다면, 아마도 3 또는 4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유치원에서 만난 짝꿍은 아빠, 엄마, 외동딸로 구성된 3명의 가족이었고, 옆 동네에 사는 이모네 가족도 우리 가족처럼 4명이었다. 어린 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은 너무나 거대하고 복잡했다. 나는 그저 내가 보고 경험한 것들을 적당히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하루를 살아가는 어린이에 불과했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 어느덧 나는 '시간을 죽이며 지낸다'라는 문장에 걸맞은 삶을 살아가는 어른이 됐다. 막연하게 동경하던 어른의 삶은, 세상이 신비롭고 다채롭게 느껴졌던 어린이의 삶에 비해서 지루했다. 가끔씩은 무리 중의 한 사람이었고, 때때로 혼자였으며, 많은 날이 외로웠고 쓸쓸했다.  

3월의 어느 날, 공고문 한 장이 지속된 권태에 빠져있던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서대문구 가족센터의 1인 가구 사회적 관계망 지원사업 안내문이었다. 언젠가 유치원 앞에 걸린 가족사진을 한참 바라봤던 것처럼, '1인 가구의 더 특별한 행복찾기' 라는 부제를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그래, 내게 필요했던 것은 내 삶에 결여된 것은 어쩌면 특별함과 행복 두 가지 모두였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특별함과 행복을 찾겠다고 결심하고 나면 지원서 작성은 순탄하게 이뤄질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제 더 이상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이가 아닌 탓일까? 나는 걱정 인형이 된 것처럼 걱정을 이어갔다. 성별도, 나이도, 이름도 모르는, 일면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과 모임을 할 수 있을까? 어색하지 않을까? 과연 모임이 9개월 이상 지속될 수 있을까?

걱정과 고민을 가득 안고 사회적 관계망 지원 사업 중에서 공예 자조 모임에 지원한 후 약 9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걱정했던 시간이 무색하게도 나는 기대보다 더 멋지고 훌륭하게 프로그램을 즐겼다. 9개월이라는 시간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의 취향과 성격을 이해하고, 새로운 관계를 쌓아 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모임에 지원하기 전에 겁을 먹고 잔뜩 늘어놓았던 걱정들은 그야말로 기우였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모임이 처음부터 완벽했다거나 순조롭기만 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서대문구 가족센터에서 공지한 모임의 주제는 소셜 다이닝, 독서, 달리기, 환경, 만들기였다. 그중에서 운명처럼 '만들기'를 고른 모임원 3명은 온라인 회의에서 생전 처음 만났다. 

첫 모임은 온라인으로 진행된 만큼 유난히 어색하고 어렵게 느껴졌다. 작은 휴대폰 화면 너머로 비치는 사람들의 얼굴과 표정 속에서, 그리고 자기소개와 첫인사에서 나는 계속 뭔가를 찾아내려고 애썼다.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과연 우리는 어떤 활동을 같이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이어졌다. 멋진 사람으로, 꽤 괜찮은 사람으로 보여지고 싶다는 욕심에 애를 쓰다 보니 괜스레 진이 다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첫 모임 3월 이후로 어느덧 올해의 마지막 달을 맞았다. 9개월의 시간은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를 여실히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기억 구석구석에 하나의 작은 파편이 되어 각자의 삶에 다양한 모습으로 녹아들었다. 

온라인에서의 어색한 첫 만남 이후 우리는 한 번 더 온라인에서 만나 플라워 리스를 함께 만들었다. 플라워 리스를 어디에 전시하면 좋을지, 친구에게 선물하면 얼마나 좋아할지 대화를 나누었다. 한 달 후 썬 캐쳐 공방에서 다시 만난 우리는 처음처럼 어색한 분위기에서 썬 캐쳐를 함께 만들었다. 다소 얼어있던 분위기는 햇빛에 반사되어 영롱하게 빛나는 썬 캐쳐를 보며 무장해제 됐다. 카페로 자리를 옮겨 커피를 마시며 수다 시간이 이어졌다. 회사에 영혼이 묶인 직장인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했고, 여느 직장인이 그러하듯 직장에 대한 적당한 불만을 쏟아냈다. 일을 떠넘기는 상사에게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을 공유했고, 티 나지 않게 회식 자리에 빠지는 법을 배웠다. 이야기의 말미에는 그래도 엄청 나쁜 회사는 아니라며 적당한 칭찬으로 양심의 가책을 덜었다.

 

우리가 지난 9개월간 함께 하면서 경험한 것은 단순한 만들기 모임 그 자체만은 아니었다. 친환경 생활용품 만들기, 반려 식물 가꾸기, 가죽공예 등을 함께 하면서 한없이 편협했던 나의 시야는 어느덧 넓어졌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 역시 한결 다채로워졌다. 모임원들과 함께 샴푸 바를 직접 만든 이후부터 더 이상 플라스틱 병에 든 샴푸를 구매하지 않게 됐다. 거품이 덜 나지만 친환경적인 샴푸 바에 익숙해졌고 친구를 꼬드겨 린스 바를 만들 재료를 잔뜩 구입하기도 했다. 집 베란다를 화분으로 가득 채운 할머니를 둔 모임원으로부터 식물에게는 적당한 무관심과 영양제가 보약이라는 점도 배웠다. 그리고 어느덧 5개월 차 반려식물의 늠름한 동거인이 되었다. 

스스로를 해리포터에 비유하는 것이 어쩌면 지나친 비약이거나 자의식 과잉으로 비춰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비유의 식상함에도 불구하고, 분명 오늘의 나는 과거의 나와 달라졌다. 어떤 만9와 4분의 3 승강장을 거쳐 마법 세계에 입문한 해리포터는 무궁무진한 모험을 이어나간다. 내게도 더 많은 모험의 기회가 남아있다고 생각하면 기대가 한껏 부풀어 오른다. 해리포터에게 든든한 친구 헤르미온느와 론이 있었던 것처럼, 내 곁에도 함께 하는 모임원이 있기에 앞으로 이어질 모험이 무섭거나 두렵지는 않다. 혼자여서 한없이 외로웠고 쓸쓸했던 나는 이제 누군가와 함께 걷는 것이 유쾌한 일이 될 수 있음을, 지루하고 막막하게만 느껴지던 길이 즐거운 여정이 될 수 있음을 여실히 깨닫는다.

공예 자조 모임을 위하여 처음 만났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팀 이름을 정하는 일이었다. 한 모임원이 아이디어를 냈다. 영화 라라랜드를 정말 인상적으로 봤는데 우리도 라라랜드의 주인공처럼 멋지게 살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나는 라라랜드 영화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 내용을 전혀 몰라서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마땅히 팀 이름에 대한 아이디어가 없었기 때문에, 그저 팀 이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뒤늦게 라라랜드 영화를 보고 나니 팀원의 의견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진솔하게 이해하게 됐다. 우리 팀의 이름이 라라랜드라는 사실도 새삼 감격스러웠다. 사실 라라랜드는 몽상, 꿈의 나라 등으로 현실감각이 없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누군가는 라라랜드는 존재하지 않으니, 허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살아가라고 충고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함께 꿈꾸며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간다면 그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라라랜드 모임 활동은 나에게 그런 확신을 심어주었다. 함께 꿈꾸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별들의 도시 라라랜드, 우리의 모임은 그렇게 꿈에서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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