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앤파이터 '천계' 시네마틱 영상. / 사진 = 던전앤파이터 공식 홈페이지

게임업계가 '페미' 논쟁에 휘말렸다. 외주를 맡긴 한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작업물에서 '남성 혐오'를 상징하는 손모양이 다수 발견되자 각 게임사들은 진상조사에 착수하는 등 긴급 대응에 나서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 이같은 조치를 두고 게임사들의 과한 '페미니즘 검열'이라 반박하고 나서면서 게임업계 전반에 '젠더 갈등' 불씨가 번지는 양상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넥슨·스마일게이트·카카오게임즈 등 국내 게임사들은 주말 사이 제기된 '남성 비하' 논란과 관련해 일제히 사과문을 발표하고 진상조사에 돌입했다.

논란은 넥슨의 각종 게임 트레일러에 일명 '그 손가락'으로 불리는 '집게 손 모양'이 다수 발견되면서 촉발됐다.

집게 손 모양은 앞서 2021년 GS25 홍보물에서도 발견되며 사회적인 논란이 됐다. 당시 GS리테일은 관련 임직원을 징계 조치했고, 해당 사태로 인해 업계 전반의 젠더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한 바 있다. 

해당 손 모양이 넥슨의 대표작인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던전앤파이터(던파) 모바일 ▲블루 아카이브 등의 애니메이션 및 일러스트에서 다수 발견되면서, 넥슨은 곧장 사과문을 게시하고 대응에 나설 것임을 공지했다.

메이플스토리 엔젤릭버스터 리마스터 버전의 홍보 애니메이션(왼쪽)과 김창섭 메이플스토리 디렉터. / 사진 = 메이플스토리 유튜브 채널

우선 김창섭 메이플스토리 디렉터는 지난 26일 오후 긴급 라이브 방송을 통해 "우선 말씀 드리기에 앞서 불편한 감정을 느끼셨을 모든 용사님들께 디렉터로써 진심으로 사과 말씀을 드린다"며 "오늘 방송에서는 어제 발생한 이슈에 대해 조치한, 조치할 내용과 계획들에 대해 말씀 드리겠다"라고 밝혔다.

김 디렉터는 "사실 그 내용보다 더 중요한 내용은 저희가 맹목적으로 타인을 혐오하고 그것을 드러냄에 있어서 일련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그런 문화, 그리고 그런 것들을 몰래 드러내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에 대해서 저희가 얼마나 단호하게 반대하고 있는지 입장을 말씀드리는 것이 오늘 방송에서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던파와 블루 아카이브 개발진은 각각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만원 던파 총괄 디렉터는 "외주업체에서 제작된 작업물에 대해 검수를 진행하고 있고, 조치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다만 전체 검수 완료까지 조치를 늦출 수 없어서 현재까지 파악한 리소스에 대한 조치를 우선적으로 진행하려고 한다. 모험가님께서 제보 주신 것 외에도 부적절한 표현으로 보여질 수 있는 리소스를 확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던전앤파이터 개발진 일동은 부적절한 표현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추가로 확인되는 사항에 대해서는 별도 공지 드릴 것을 약속 드린다"며 "또한 애니메이션 외주 제작사 '뿌리'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회사 차원에서 필요한 조치를 검토할 예정인 점을 말씀드린다"고 설명했다.

던파 측이 조사 중이라 밝힌 영상은 ▲선계 시네마틱 ▲마계 회합 ▲마계 업데이트 ▲여프리스트 애니메이션 등 약 20여개에 달한다. 

블루 아카이브는 ▲1주년 기념 애니메이션 PV ▲프레나파테스 결전 애니메이션 PV ▲아트라하시스의 방주 점령전 애니메이션 PV등 5개 영상에서 부적절한 표현을 확인, 비공개 처리와 더불어 이 외 영상에 대한 전수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김용하 블루 아카이브 총괄 PD는 "해당 업체와 협업을 진행한 특정 영상들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문제 사항이 없을지 검토를 진행 중에 있으며, 이 외 외주 영상 작업물, 외주 아트워크 작업물에 대해서도 상세한 전수 조사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라며 "모쪼록 스튜디오 뿌리의 외주 작업물과 관련한 사실 관계에 대해서는 꼼꼼히 확인해 회사 차원에서 필요한 조치에 대해 검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터널리턴의 관련 공지 내용. / 사진 = 이터널리턴 공식 홈페이지

이밖에도 이슈에 휘말린 카카오게임즈의 '이터널리턴'은 관련 13개 스킨에 대한 판매를 중단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섰다.

이터널리턴 측은 "표현의 자유는 창작의 과정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 중 하나 이지만, 타인에 대한 혐오는 자유의 이름으로 용인 될 수 없다"며 "타인에 대해 혐오 표현의 논란이 있는 작업물에 대해서는 게임에서 일괄 제외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에픽세븐'을 제작한 김윤하 스마일게이트 PD도 "PV 영상의 일부 부적절한 표현에 대해 조사 중"이라며 "관련 리소스 조사 및 비공개 조치를 진행 중이며,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다시 안내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해당 영상 제작을 담당, 여러 게임사를 곤란하게 만들며 논란에 중심에 선 스튜디오 '뿌리'는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스튜디오 뿌리는 엑스(트위터) 공식 계정을 통해 "게임의 방향성과는 전혀 관계 없는 발언들로 해당 영상들이 연관되게 해드린 점 정말 죄송하다"며 "해당 스태프가 작업했던 컷은 리스트업해 각 게임사에 전달드렸고, 후속 조치를 위해 대기 중"이라 전했다.

다만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손동작이 저희가 작업한 영상 곳곳에 들어갔다는 의혹이 있다. 이는 동작과 동작 사이에 이어지는 것으로 들어간 것이지 의도하고 넣은 동작은 절대 아니다"라며 "해당 스태프는 키 프레임을 작업하는 원화 애니메이터로 저희가 하는 모든 작업에 참여하는 것이나 이러한 동작 하나하나를 컨트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원청사에서 괜찮으시다면 의혹이 있는 모든 장면들은 저희쪽에서 책임지고 수정하고, 해당 스태프는 앞으로의 수정 작업과 더불어 저희가 작업하는 모든 PV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또한 현재 작업하고 있던 것도 회수해 폐기하고 재작업 하겠다. 또 이는 개인뿐만이 아닌 관리자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저희의 잘못이 크다"고 재차 사과했다.

스튜디오 뿌리 공식 입장문 전문. / 사진 = 스튜디오 뿌리 엑스(트위터)

그러나 현재 스튜디오 뿌리의 공식 홈페이지는 마비된 상태로, 정상적인 운영이 재개되기까진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관련 게임업계 관계자는 "스튜디오 뿌리 측에서 수정 작업 등 의사를 밝힌 것은 맞다"면서도 "다만 구체적인 대응 방안 등은 아직 논의가 되지 않은 상태다. 당장은 전수조사를 통해 논란이 된 사항을 파악하고 들여다보고 있는 단계"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게임사들의 이러한 조치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게임사들이 일부 남성 이용자들의 '페미니즘 검열'에 굴복했다는 것으로, 이번 사태는 '반페미니즘 남성 집단의 페미니스트 색출 놀이 문화가 굳어진 결과'라는 주장이다.

김민성 한국게임소비자협회 협회장은 한 언론을 통해 "한 게임 이용자가 근거도 없이 '제작자가 페미'라는 주장을 올리면 펨코, 디시인사이드 등에서 확대 재생산된다. 이후 새로운 희생자의 SNS 행적을 찾아내는 스포츠 경기가 시작된다"며 "게임사는 극단주의적이고 과대표된 소수 이용자의 의견만을 듣고 성급하게 결정을 내리는 일을 반복하고, 특히 약자인 하청업체 등 외주 노동자들이 손쉬운 '손절'의 타깃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같은 비판에 업계에서는 "억울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사 입장에선 고객 불만에 대한 당연하고도 즉각적인 대처에 나선 것. 특정 성별에 대한 편을 들어 주는 것이 결코 아니다"라며 "이번 사태를 두고 남성이니 여성이니 젠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개인적으로 옳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1코노미뉴스 = 신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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