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세 집 건너 한 집이 1인 가구인 시대가 됐다. 2022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21년 서울시 1인 가구 비중은 전체 가구의 36.8%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1인 가구는 이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구 형태로 자리매김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해 24개 1인가구지원센터에서 교육, 여가, 상담, 사회적 관계망 개선 등 다양한 1인 가구 지원 사업을 펼쳤다. 총 3만2825명의 시민이 1인 가구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1640건의 1인 가구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1인 가구는 만족감을 느꼈을까. [1코노미뉴스]는 서울시와 함께 '1인 가구 지원사업 우수 수기 공모전'에 참가한 1인 가구의 체험담을 <1인 가구 스토리> 코너를 통해 장기 연재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동대문구 1인 가구 A씨 

◇흔들리는 '사십춘기'

나이 마흔, 13년차 회사원, 동대문구 1인 가구, 나를 설명하는 말들이다. 

그 어디에도 진짜 '나'는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언제 어디로 마흔이라는 나이를 먹은 건지 알 수 없고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듯한 회사로 10년 넘게 매일 똑같은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 생활은 날이 갈수록 지루하고 지쳐만 갔고, 1인분의 삶은 홀가분하면서도 때론 무거웠다.

 어지러운 몸과 마음을 나이와 월급이라는 현실로 억눌러가며 12년을 버틴 회사를 올해 초 결국 그만두고 나니 생전 처음 가보는 낯선 길, 낯선 사람들, 세상이 온통 낯설었다. 

 불혹(不惑)은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라는데 내 나이 사십은 왜 이리 갈팡질팡 불안하고 흔들리는 일 투성이인지, 불혹은 커녕 사십춘기가 아닌가 싶은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상담 멘토링 프로그램의 홍보 글을 접하고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드린 것이 시작이었고, 그렇게 스무 번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시작됐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동대문구의 상담 멘토링은 6개월동안 15회의 개인 상담과 5회의 그룹 활동으로 진행되었는데 우리 그룹의 이름은 '나를 찾는 여행'이었다. 이 6개월간의 여행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살면서 가장 깊게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된 시간'이라고 하겠다. 

 처음엔 6개월, 20번의 만남을 언제 다 하나, 멘토님께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 보는 사람들과 그룹 상담은 어색하지 않을까 등등 걱정도 많았는데 한 회, 한 회 상담이 진행될수록 남은 회차를 세며 아쉬워 할 정도로 시간이 빨리 갔고 나중에는 스무 번도 부족하다 느껴질 정도였다.   

 매주 멘토님과 함께 때론 스무살 나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때론 내 안의 5살 꼬마의 울음을 달래주며 딸, 친구, 팀장 등등 어떤 이름과 역할로만 존재하던 내가 아닌, 진짜 내 감정,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동안 나도 몰랐던 나를 처음으로 만나는 시간은 참 놀라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나를 모르고 살았는지, 나 스스로를 알아주고 아껴주고 사랑해준 적이 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고 나에게 미안해졌다.  그동안은 늘 나보다 남을 신경 쓰느라 정작 내가 뭘 원하는지 왜 힘든지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알아도 모른 척 덮어두고 살았다. 이 복잡한 세상에 고민하고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얼마나 많은데 '나'까지 생각해야 하나 싶어 미뤄두고 모르는 척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무 번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이야기들은 결국 모두 그런 '나'를 향해 있었다. 나는 이런 걸 좋아하고 이런 걸 싫어하는 사람이구나, 지금 내가 어떤 기분이구나, 나는 이런 말이 듣고 싶었구나,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 내가 소중한 사람이란 걸 잊고 살고 있었구나, 내 안에 이런 큰 용기와 힘이 있었구나... 모두 처음으로 느끼고 발견하고 찾아가는 여행길. 그 누구보다 내가 나를 위하고 지켜야 한다는 작지만 큰 깨달음의 길. 그 길을 걸으며 나는 나도 몰랐던, 내가 가진 힘을 조금 더 믿어보고 싶어졌다. 나에게 집중하고 오롯이 '나'로 과거나 미래가 아닌 '오늘'을 살아보고 싶어졌다.

스스로에게조차 들키고 싶지 않아 깊숙한 곳에 묻어두었던 솔직한 마음들을 자꾸 들여다봐주고 쓰다듬어준 시간. 그러다 결국 그것들을 하나씩 꺼내어 마주하고 인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시간이었고, 상담을 통해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올 한해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긴 여행의 시작

 20시간의 상담으로 40년 묵은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는 없을 테니 여전히 나는 조금씩 흔들리는 마흔이지만, 이전보다는 조금은 따뜻해진, 조금은 깊어진, 조금은 너그러워진 마음으로 내 안의 나에게 말을 걸 수 있게 된 것 같다. 

40년을 쉼 없이 달려와 인생 2막의 시작쯤에서 떠난 나를 찾는 여행길. 

실제로 여행을 좋아해 그동안 제법 많은 국내·외 여행을 떠났었지만 그 중 가장 가깝고도 가장 먼, 끝을 알 수 없는 이 여행길은 유독 느리고 막막할 때도 있었지만 나는 이제 어제보다는 조금은 더 가벼운 마음으로 그 길 위에 서 있다.

아직도 나의 여행은 끝나지 않았고 이 어렵고도 즐거운 여행은 아마 평생, 아주 오래도록 계속될 것이다. 그 긴 여행에서 만날 수많은 '나'와 안녕을 묻고 웃으며 인사를 나눌 수 있길, 그 하루하루에서 소중한 내가 따뜻하고 평온하길 바라며 오늘도 나는 나를 만나기 위한 여행을 떠나려 한다.

◇함께 한 여행 

'나'를 보게 된 여행이었지만 그만큼 혼자가 아닌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느끼게 된 여행이기도 했다. 이 긴 여행길에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나와 같이 걸어줄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걸 잊고 살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혼자가 편하다는 이유로,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없다는 핑계로 높은 방어벽을 쌓고 뭐든 혼자 해내려 했고 그러다보니 늘 마음이 무겁고 불안했는데 이제는 때론 혼자서 씩씩하게, 때론 내 사람들과 다정하게 그 길을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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