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코노미뉴스=정윤선 기자]「파리평화협정」 체결 후 배트남 티우 대통령에게 기자들이 “평화협정이후 월맹이 공격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답변이다.

“공산 월맹은 전쟁할 능력이 없다. 지금 너무 가난해서 하루 두 끼도 못 먹는다. 그것도 소금반찬으로 연명하고 있다. 미국이 평화협정이후 40억 달러를 원조하기로 했는데 어떻게 협정을 깰 수 있겠는가! 10년 동안은 감히 처 들어오지 못한다. 그 기간 동안 석유개발 등을 통해 월맹과 격차를 벌여놓으면, 월맹은 끝내 적이 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베트남에서는 대통령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민들도「파리평화협정」을 완전히 믿고, 협정을 통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고 착각하였던 것이다.

이 같은 믿음은 베트남 지도부와 국민들이 월맹을 과소평가하고 총체적 안보불감증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신부, 승려, 언론인, 학생 등 좌익 인사들은 이 같은 분위기를 이용해 티우 정권 타도를 외치며 반정부 시위를 통해 적극적으로 민중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또한 베트남 정부와 베트남군 총사령부에서 이루어지는 극비 회의 내용이 단 하루 후면 반정부 게릴라 단체인 베트남 임시혁명정부 청사에 보고될 정도로 티우 정권의 핵심부까지 많은 공산 간첩이 침투해 있었다. 1967년 대선에서 차점으로 낙선한 야당 지도자 ‘쭝딘쥬’를 비롯해, 당시 모범적인 도지사로 평판이 자자했던 ‘녹따오’와 대통령 비서실장, 월남 패망 당시 사이공 경찰장관이었던 ‘창반만’, 대통령궁을 폭격한 월남 공군대위 ‘구엔타인충’ 등 많은 정치인과 관료, 군인, 언론인, 종교인들이 ‘공산 간첩’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월맹의 치밀한 정보수집과는 대조적으로 월남의 대공 정보력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베트남에서는 잦은 쿠데타가 일어나서 정권이 바뀌면 정보기관들이 또 바뀌고 이러다보니 정보기관들이 완전히 무력화 되어 이북 월맹의 정보가 많은데도 하나도 알아내지 못했다. 베트남 총인구 2000만 명 중 공산당 당원이 9500명, 인민혁명단원은 4만 명 등, 0.25%의 좌익 공산세력이 자유 베트남의 패망을 유도한 사실에 어처구니없다.

좌익공산세력들은 자신들이 장악한 수십 개의 언론사를 통해, 베트남 정부에 대한 원색적 비난과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우익 인사들을 ‘무식한 전쟁광’으로 매도하는 한편, 무자비하게 암살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인, 중산층, 언론인 등 다수의 우익들은 침묵을 선택함으로써 결국 소수의 조직화된 좌익들의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1975년 3월 10일 월맹은 「파리평화협정」을 파기하고 월남에 이미 오래전부터 침입해 있던 간첩들을 이용해서 주민들을 선동하는 동시에, 18개 사단이 총공세를 감행했다. 그러나 즉각 전쟁을 중지하고 일치단결하여 침략군을 무찌르고 자유 베트남을 지키자는 티우 대통령의 호소를 외면하고, ‘짠후탄’ 신부와 야당 지도자들은 정부를 비난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분열과 총체적 부패 그리고 의욕상실에 빠져있던 베트남에게는 이미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의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군사, 경제력 및 인구 등 모든 면에서 월맹을 압도했던 자유 베트남은 결국 월맹의 총공세 이후 50여일 만인 4월 30일 지도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사이공 함락 후 베트남의 군인과 경찰은 수용소로 보내졌고, 공무원과 지도층 인사, 언론인, 정치인은 물론, 반정부 반체제 운동을 벌이며 월남 패망에 앞장섰던 ‘짠후탄’ 신부 등 종교인, 교수, 학생 및 통일 운동가들까지 체포되어 수용소로 보내어졌고, 대부분 처형되는 등 수백만 명이 처형 학살되었다.

‘리 라닝’(「베트콩과 월맹의 내막」 저자)의 증언에서 “베트콩으로 활동한 베트남인들은 모두 숙청되었고 일부는 재교육 수용소에 월남인 적들과 함께 수용해 제거해 버렸습니다.”이렇게 베트남 패망에 앞장섰던 인사들까지 처형된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정부 활동을 하던 인간들은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똑같은 반역 짓을 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것이 공산주의자들이 행하는 잔인무도한 혁명전술전략이다!

우리나라도 만약 공산화되면 이와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공산혁명 역사상 모든 공산주의 국가들이 다 그랬었다. 공산주의 종주국인 구소련의 스탈린, 중국공산당 모택동, 북한 김일성 등이 모두다 주류 공산당원외의 파생 공산주의자들을 혁명 성공 후 대대적인 피의숙청을 단행하였다. 공산주의는 이상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가짜 민주주의이고, 진보가 아니라 퇴보이며, 나라를 망하게 하는 망국 사상, 거짓 사상 체계이다!

동양의 흑진주, 제2의 파리로 불렸던 아름다운 항구도시 사이공, 하지만 함락 이후 사이공은 피와 파편이 즐비한 죽음의 도시가 되었다. 총구 앞에서 목숨을 구하는 자들의 절규, 스스로를 지킬 줄 몰랐던 국민들은, 너무도 처절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렇게 자유 베트남이 공산 월맹에 의해 유린될 때, 「파리평화협정」 서명국들은 베트남국민들의 절규에 침묵으로 대답했다. 결국 스스로 지킬 의지가 없는 베트남국민들에게 평화협정과 방위조약은 단순한 휴지조각일 뿐 이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대내외적인 상황에서 중국과 북한이 주장하는 북미평화협정에 매달리는 것의 실체가 남한의 적화통일이라는 것을 직시하고 튼튼한 안보태세와 국민들의 반공으로 단결된 역량을 보여 줘야할 것으로 사료된다.

*칼럼제공 : 최상권 정치학 박사
*정리 : 사회부 정윤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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