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이동은 감독 작품 「당신의 부탁」은 2018년 개봉한 영화다. 30대 초반 효진(임수정)이 16살 남자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설정으로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러나 이제 대중은 더 이상 여성의 ‘엄마다움’에 관심을 갖지 않는 모양이다. 임수정이 「처음으로 엄마 연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2~3만 명 정도가 극장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다. 

영화는 1인가구 여성의 전형적 삶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어떤 의미에서 전형적일까? 취업활동을 하든 하지 않든 돌봄은 주로 여자의 몫이라는 의미에서 전형적이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미혼(未婚) 남녀보다 ‘결혼을 하지 않기로 한’ 비혼(非婚) 남녀 수 증가는 최근 새로운 흐름이다. 남성도 점점 결혼할 기분을 잃어가는 상황이지만,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결혼할 의사가 없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남성 10명 중 7명은 결혼을 당연히 해야 하는 인생의 과제로 여겼지만, 이제 10명 중 5명 정도만 그러하다. 같은 기간 여성은 10명 중 6명에서 4명만 결혼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게 됐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남성과 여성 중 결혼을 해야 할 과제로 여기는 비율은 같은 기간 남성 10명 중 6명에서 4명으로, 여성은 10명 중 5명에서 2명으로 줄어들었다. 

통계청 개념으로 ‘결혼을 아직 하지 않은(미혼)’ 여성 10명 중 결혼을 해야 한다고 인식하는 여성이 2명이라는 결과를 뒤집어 말하면 미혼여성 10명 중 8명은 ‘비혼여성’이 될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결혼을 해야만 「아이를 떳떳하게」 낳을 수 있는 한국사회에서 비혼은 무자녀로 연결된다. 무자녀는 독박육아로부터 해방을 의미한다. 그러나 「독박육아」를 빗겨난 비혼여성들도 피해갈 수 없는 벽이 여전히 있다. 「독박돌봄」이다. 아들이 있다 하더라도, 늙어가는 부모 돌봄은 딸의 몫이다. 

출처: 정재훈(2020),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 정책적 대응과 출산 현상의 변화, KDI 학예연구 2020-01, 39쪽.
출처: 정재훈(2020),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 정책적 대응과 출산 현상의 변화, KDI 학예연구 2020-01, 39쪽.

이 말이 불편하게 들리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만큼 아들(남성)보다 딸(여성)이 부모를 더 많이 혹은 홀로 돌보는 모습이 우리에게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무남독녀라면 완전 독박이고, 다른 자매가 있다면 그나마 분산된 독박이다. ‘분산된 독박’이라는 표현 자체가 모순될 수 있다. 그러나 남자형제는 빠지는 여자형제 단위의 독박이라는 의미이다. 효진의 경우 당장 엄마를 요양보호 차원에서 돌보는 일은 없다. 하지만 엄마의 위염증세를 위암으로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1인가구 여성이 갖는 인생의 전형적 과제로서 「독박돌봄」의 전조를 볼 수 있다. 

「독박돌봄」의 암시에서 시작한 영화는 「착한 엄마」로 이어진다. 32세 젊은 여성이, 죽은 전남편의 16세 아들의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이 애잔하게 흐른다. 경찰 지구대에서 효진이 종욱을 「아들이에요.」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감동받은 관객도 꽤 많을 듯하다. 결혼도 해봤고 애까지 있는 효진은 정우와의 연애도 이어가지 못한다. 아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또 감동받을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런데 ‘착한 엄마’의 모습에 마냥 감동만 받을 수 있을까? 

영화 제목 「당신의 부탁」은 종욱의 모습에서 죽은 남편을 발견하고 남편에 대한 사랑과 16살 아들 종욱이 이어짐을 암시한다. 그런데 그 부탁이 미성년 조카를 책임지지 않으려는 혹은 책임질 수 없는 ‘시동생’이라고 볼 수는 없을까? 시동생의 부탁이라면 쉽게 거절할 수 있지만, (저 세상에 있는) 사랑하는 남편의 부탁이라면 상황이 다르다. 그 부탁을 들어주면 대중의 사랑을 받는 ‘착한 엄마’가 된다. 거부하면 ‘나쁜 여자’가 된다. 그렇게 이 땅의 시부모와 시동생들은 여성들에게 ‘착한 엄마’가 되기를 부탁한다. 그럼에두 불구하고 기꺼이 ‘나쁜 여자’의 길을 선택한 많은 여성들이 있다. 그 1인가구 여성들이 “당신의 부탁, 꼭 들어줘야 하나요?”라고 되물어 보면서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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