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재 한국코치협회 코치
나성재 한국코치협회 코치

강동희는 코트 위의 마법사였다. 허재, 김유택과 함께 농구 트리오로 90년대 최고의 농구 전성기를 누렸다. 선수 생활을 마치고 감독으로도 팀을 시즌 우승까지 이끈 유능한 감독이었다. 사람 좋기로 알려진 그가 스포츠 도박 승부 조작에 연루되었다는 뉴스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고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도 잊혀졌다.

어느 쌀쌀한 밤에 덥수룩한 수염에 먼지투성이 옷차림을 한 사내가 음식점에 들어섰다. 하루 종일 굶었으니 따뜻한 음식 아무거나 달라고 했으나, 주인은 감옥에서 출감한 사람인 것을 확인하고 그를 쫓아낸다. 오갈 곳 없이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으로 가득 찬 그는 낙엽이 휘날리는 차가운 계단에 웅크리고 누웠다. 이 사나이가 빵 한 조각을 훔치고 19년간 감옥에서 보낸 장발장이다. 그는 추위를 피해 찾아간 성당에서 마음씨 착한 신부에게 뜻하지 않은 환대를 받는다. 가장 귀한 손님에게만 내놓는다는 은쟁반에 따뜻함 음식과 잠자리까지 제공받는다. 하지만 장발장은 그 은쟁반을 들고 야반도주를 했다.

이른 아침 성당으로 장발장을 끌고 온 경찰은 은쟁반을 내보이며 범행을 확인하려고 했다. 신부님은 은쟁반은 자기가 준 것이며 이렇게 와서 은촛대까지 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경찰이 떠나자 장발장은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신부님은 은쟁반과 은촛대까지 챙겨주며 떠나라고 하면서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되라는 말을 장발장에게 남긴다.

'설득의 심리학'으로 유명한 로버트 치알디니는 일관성의 심리를 이용해 설득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평소의 신념이나 태도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게 함으로써 그 비일관성에서 오는 심리적 부조화를 겪도록 해서 자발적인 태도 변화를 유도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도록 만들려면 우선 이 사람과 단둘이 좋은 시간을 보내도록 유혹을 한다. 좋아하지도 않는데, 상대와 좋은 시간을 보낸 그 사람은 심리적인 불편감과 압박감을 받는다. 이 심리적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그는 단둘이 보낸 시간이 별거 아니었다며 자기 합리화를 통해 원래 가지고 있던 신념을 지키거나, 아니면 자신이 그를 그동안 오해했다며 그동안의 믿음을 버리고 그와 친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획득하게 된다고 한다.

장발장은 세상에 대한 원망과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신부님이 그에게 보여준 것은 정반대였다. 장발장의 신념, 세상에 대한 태도와 신부님의 조건 없는 사랑, 이 사이에서 엄청난 심리적 부조화가 발생한 것이다. 이 부조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장발장은 자신의 신념을 바꾸었다. 그 상황을 합리화하지 않고 평생 은촛대를 보면서 조건 없는 순수한 사항을 실천하며 살아간다.

강동희는 어느 날 지인이 부른 술자리에서 술값 300만 원을 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온 그가 돈이 없다고 하자, 며칠 후 있는 게임에 비주전 선수를 출전시키주면 술값도 계산해 주고 700만 원도 주겠다는 제안을 했단다. 팀이 플레이오프 진출 결정된 후 경기였기 때문에 통상 비주전 선수를 출전시키는 경기였다. 얼마 후 경기가 끝난 후 지인이 찾아와 돈을 건넸다고 한다. 돈 때문에 비주전 선수를 출전시킨 게 아니었지만 그는 눈앞에 돈을 보고 흔들렸다고 했다.

치알디니의 설득 전략에 '침투작전: 큰 것을 원한다면 작은 데서부터 출발하라' 가 있다. 일종의 우리 편 만들기 전략으로 대수롭지 않은 첫 요구를 상대가 수락하게 하는 것이다.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약간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이를 수락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자기가 한 일에 대해 합리화를 하게 된다. 노골적인 조작요구를 강동희가 당연히 거절할 것을 알고 침투전략을 쓴 것이다.

우리는 평생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설득당하며 산다. 장발장과 신부님의 경우가 사람을 설득하는 최선의 방법을 보여주었다면, 반대로 강동희의 경우는 우리가 설득당해서는 안 되는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우리의 자신의 신념과 가치에 반하는 것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과감하고 결연히 거부해야 한다. 치알디니의 법칙처럼 유혹은 아주 작은 것으로 포장되어 오기 때문이다.

평생을 살아가며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적당히 타협하고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앞설 수도 있다. 하지만 적당한 타협과 좋은 게 좋은 것에 익숙해진다면 우리는 어는 순간 "최악의 나"가 되어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강동희처럼.

[필자 소개]
나성재 코치는 알리바바, 모토로라솔루션 등 다국적 IT기업에서 다년간 근무했고, 한국코치협회 코치이자, 현 CTP(Coaching To Purpose Company)의 대표이기도 하다. 또한 NLP 마스터로 로버트 딜츠와 스테판 길리건의 공동 저서인 영웅의 여정(Hero’s Journey) 번역서를 출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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