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옥 칼럼]애도의 순간마저도 차별이 존재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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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옥 칼럼]애도의 순간마저도 차별이 존재하나?
  • 박진옥
  • 승인 2021.09.0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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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장례에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

차별금지법은 특정 누군가만을 위한 법이 아니다. 바로 나와 우리 모두를 위한 법이다. 이러한 차별금지법의 제정 취지를 알리기 위해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지난 5월부터 “평등의 에코(echo)-100” 캠페인을 진행했다. 평범한 일상을 사는 시민 100명이 먼저 평등의 에코(echo)100인이 됐다. 이와 동시에 또 다른 시민들에게 차별 금지를 넘어 평등의 울림에 함께하기를 요청했다. 

평등의 에코 캠페인./ 사진=나눔과나눔
평등의 에코 캠페인./ 사진=나눔과나눔

서울시 공영장례를 지원하며 ‘나눔과나눔’에서 활동하고 있는 필자도 “평등의 에코(echo)-100”에 참여했다. 애도의 순간마저도 차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현장에서 장례를 지원하며 죽음과 장례에서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에 따른 차별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흔히 사람들은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고 하면서 죽음은 모두에게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죽음이라는 것 자체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죽음은 평등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죽음 이후에는 장례와 같은 사후사무가 반드시 수반된다. 차별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죽음 이후에 사망한 분의 장례를 할 권리는 오직 법적 연고자에게만 주어진다. 여기서 법적 연고자는 ①배우자, ②직계존비속-조부모·부모·자녀·손자녀, ③형제자매까지만 해당한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가족 및 가구의 형태가 다양화되고 있다. 게다가 결혼을 하지 않는(또는 못하는) 사람, 고아로 홀로 살아온 사람, 가족이 불의의 사고로 홀로 남은 사람, 가정 안에서 소외되거나 단절된 사람, 미혼모, 미혼부, 독거노인, 친인척이 이민 상태이거나 돌보지 않는 사람 등 숱한 개인사가 존재한다. 

만약 부모 두 분이 모두 돌아가신 어떤 사람이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외동이거나 또는 한두 명 있던 형제마저 사망한다면 법적으로 연고자가 없는 무연고자가 된다. 하지만 이 사람에게는 다양한 관계의 친밀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물론 법적 연고자는 아니다. 이처럼 법적 연고자가 아닌 친밀한 사람이 이 분의 장례를 준비하는 순간,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장례를 치를 수 없다. 상실과 비통함 가운데 고인을 애도할 권리에서 배제되고 만다. 

실제 법적 연고자가 아닌 이유로 장례와 애도조차 할 수 없었던 분들은 당시 심정을 이렇게 말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 절망적이었어요. 장례를 꼭 해 드려야 하는데, 못해서 죄스러웠어요.”라고 말이다. 그리고 사실혼 관계에 있던 배우자는 “힘들죠. 빨리빨리 처리해야 하는데, 그걸 안 하니까. 나라가 밉죠. 그리고 언제까지 저 상태가 계속될까? 괴롭고 답답하죠.”라고 심정을 토로했다.

사실혼 관계 배우자가 서울시 공영장례에 장례주관자로 지정받아 장례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나눔과 나눔
사실혼 관계 배우자가 서울시 공영장례에 장례주관자로 지정받아 장례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나눔과 나눔

 

이뿐 아니라 법적 연고자 기준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으로 작동한다. 한국의 전통사회에서는 죽음을 ‘정상적인 죽음’과 ‘비정상적인 죽음’으로 구분했다. 비교적 어린 나이의 죽음, 결혼하지 못한 상태의 죽음, 제사를 받을 자손이 없는 상태에서의 죽음, 그리고 객사 및 사고사, 자살 등은 비정상적인 죽음으로 이들에 대한 장례는 치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다. 

이러한 관례에서 정상적인 죽음만 장례라는 의례를 수행했고 이 의례를 통해 정상적인 죽음은 기념됐다. 한편 비정상적인 죽음은 의례조차 없이 망각될 뿐이었다. 여기서 죽음을 기념하거나 망각하는 데 장례라는 죽음의례는 핵심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 또한 공식적 의례에서 기념하는 죽음에는 정상적인 죽음의 의미가 부여됐다. 하지만, 비공식적 의례에서 기념하는 죽음에는 비정상적인 죽음의 의미가 부여됐다. 이와 같이 의례의 수행을 통해 죽음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따라 그 죽음에 대한 기억이 달라진다.

이에 대해 ‘상징폭력과 문화재생산’이라는 책에서 부르디외는 의례가 “의례를 거친 사람을 (...) 앞으로도 어떤 의미에서든 그러한 의례를 거치지 않게 될 사람과 분리시키는 효과를 은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보아야 한다고 하며, 그러한 효과는 “의례에 해당되는 사람과 의례와는 무관한 사람 간에 놓인 항구적인 차이를 제정하는 효과”라고 했다. 

실제로 죽음의례를 살펴보면, 장례의 대상이 되는 사람과 되지 못하는 사람,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정상적인 죽음과 치를 수 없는 비정상적인 죽음이 나누어진다. 장례를 통해 죽음에 대한 의미가 위계화 되고 그 속에서 의례 대상에 대한 포함과 배제가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죽음의례의 대상에서 배제되어 애도 받지 못하고 소외된 죽음들이 있을 수 있다. 바로 오늘날의 무연고사망자의 죽음이 이러한 죽음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히 지난해 보건복지부는 「장사업무안내」에 ‘가족대신장례’ 지침을 마련해서 무연고사망자로 확정된 이후 법적 연고자가 아닌 이들도 장례 할 수 있는 길을 허용했다. 하지만 여전히 법률적으로 한계가 명확하다. 즉, 제도적으로는 여전히 차별적이다.

애도 받을 권리와 애도할 권리를 이제는 ‘차별과 배제’의 관점으로, 개인과 가족만의 문제라는 인식에서 공동체적 입장으로, 그리고 사회보장적 차원에서 새롭게 해석해야 죽음과 장례에 대한 제대로 된 사회적 대안이 모색될 수 있다. 

지난 6월 14일,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 ‘국민 동의 청원’이 10만 명을 넘겼다. 이제는 21대 국회가 응답할 차례다. 돌아가신 고인에 대한 애도할 권리조차 차별하는 사회, 국회는 이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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