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진의 리더십 읽기 -삼국지편⑤

디자인=안지호 기자
세상이 복잡하다고 느낄 때 다시 꺼내어 보는 것이 역사다. 그것을 들여다보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보이고 앞으로 어찌 되어갈지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극이 인기를 끈다. 춘추전국시대와 삼국지 이야기는 그 중 으뜸이다. 삼국지는 망해가는 한나라가 배경이다. 난세에는 망하게 하는 인물과 세상을 구하는 스타가 함께 등장한다. 조조 유비 손권은 최후의 승자이고, 초기에 두각을 나타낸 대권주자들은 따로 있다. 그들은 모두 대권 경쟁에서 실패하고 사라졌다. 원소, 원술, 공손찬, 유표, 여포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배경이나 세력 능력 어느 것 하나 뒤지지 않고 도리어 더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왜 승자가 되지 못하고 무너졌을까? 역사의 패자들을 살펴보면 엄격한 경쟁 속에서 실패의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삼국지 속 원소는 실패한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준다. 앞서 여양전투에서 원소란 인물이 지닌 리더십의 한계와 조직의 상한선을 살펴봤다면, 대규모 전투가 벌어진 관도대전에서는 리더의 결정이 조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볼 수 있다. 

리더는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누구보다 더 많이 조사·분석하고 평가·반성해야 한다. 삼국지 속 원소는 어땠을까. 라이벌 조조에게 한 방 먹일 기회를 놓치고 여양전투에서 성과 없이 돌아온 원소는 분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자 조조에 대한 공격을 서두른다. 

그러나 원소의 부하들은 찬반 진영으로 갈렸다. 원소 진영의 모사 그룹은 당시 최고 인재들이었지만, 서로 질시하고 견제하면서 단합하지 못했다. 강력한 리더십의 부재가 원인이다. 

전쟁을 반대하던 세력의 핵심은 여양전투에서 허도 공격을 강력하게 건의한 전풍이었다. 전풍은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반대를 한다. 전쟁으로 국내 사정이 어려우니 내실을 위해서 최대한 전쟁을 미루면서 우위 상황을 유지해야 하며, 전쟁을 한다 해도 공세적인 단기전보다는 수비적인 장기전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허유는 지금은 원소 진영이 우세한 상태이나 조조의 세력이 빠르게 성장하니 지금 제압해야 하며, 이 기회를 놓치면 머잖아 승산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며 공격을 주장했다. 

아옹다옹 의견대립이 계속되도록 결단을 내리지 못하자 허유는 진영에 피해 와 있던 유비를 이용한다. 

결국 원소는 '출병하지 않으면 대의에 어긋나며,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는 유비의 조언에 결심을 굳히고 전쟁을 반대하던 전풍을 옥에 가둔다. 

원소군은 한번에 조조를 꺾을 자신감이 넘쳤다. 시작도 매우 좋았다. 선봉장 안량이 조조군을 완전히 제압하고 주도권을 잡아 흔들었다. 그런데 밀고 밀리는 와중에 외부상황에 변화가 생겼다. 원소의 후방이었던 강동의 손책이 죽고 손권이 뒤를 이은 것이다. 조조가 재빨리 접근해 동맹을 맺자 이제는 원소가 남북으로 협공받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원소는 직접 70만 대군을 이끌고 조조의 근거지인 허도를 공격하러 나선다. 7만 조조군이 이를 맞아 싸운 것이 삼국지 최대의 전투 중 하나이자 분수령인 관도대전이다. 

봄에 시작된 전쟁이 무더운 8, 9월을 지나면서 양쪽 모두 지치기 시작하고 군량도 떨어져 갔다. 조조군이 더 심각했고 며칠 분량밖에 남지 않았다. 조조가 군량 보급을 재촉하는 명령서를 보냈는데 전령이 원소의 모사 허유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허유는 그동안 조조와 동향이라는 이유로 푸대접을 받아왔는데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싶었다. 급히 원소에게 보고하고 조조의 근거지 허도를 급습하자고 건의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원소는 정보를 미더워하지 않았다. 조조의 속임수가 아닐까 의심하는 중인데 때마침 허유의 아들이 공금을 횡령했다는 비면 보고가 올라왔다. 그런 상황도 모르고 허유가 계속 공격을 건의하자 원소는 화가 났다. 그리고 '조조의 계략으로 나를 끌어들이려느냐'며 질책한다. 건의가 뭉개지고 조만간 처벌까지 받을 상황이었다. 리더가 전쟁 중에 스스로 조직 내 균열을 키운 셈이다.

허유는 원소에 대한 희망을 접고 조조에게 투항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원소의 결정적 급소에 대한 정보까지 제공해 버린다. 

치명적 손상을 입은 원소는 회복을 위한 역공의 방편으로 장합과 고람 두 장군을 보내 조조의 본진 습격을 시도하지만 이마저 계략에 빠져 크게 패하고 돌아온다. 

그러자 패배의 책임 추궁을 염려한 모사 곽도는 장합과 고람이 조조군과 내통해 일부러 져준 것이라고 거짓 보고를 하는 동시에 장합과 고람에게는 원소가 그들을 죽이려 한다고 정보를 흘린다. 

위협감과 배신감에 화가 난 장합과 고람까지 조조군에 투항함으로써 원소군은 결국 전멸에 가깝게 패배하고 고작 8백여 기의 패잔병만 이끌고 기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관도대전은 막을 내린다. 

관도대전에서 원소는 잃어버린 기회보다 상한 명예와 자존심, 주위 시선이 견디기 힘들었던 듯하다. 그러다 장고 끝에 패착을 뒀다. 정보를 걸러 듣고 왜곡하며 틀리게 판단하고 잘못 결정해서 더 큰 실패를 한 것이다. 원소측 70만 대 조조측 7만, 10배가 넘는 병력차에도 대패한 이유는 리더의 판단력과 조직 관리 실패가 원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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