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영화 「킹스 스피치(King's Speech)(2010)」는 말을 더듬었던 영국의 왕 조지 6세의 이야기다. 조지 6세는 금년에 즉위 70주년을 맞는 영국의 퀸 엘리자베스 2세의 아버지다. 어렸을 때부터 말을 더듬었던 조지 6세가 독일 나찌와 전쟁을 시작하게 된 영국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설을 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영화다. ‘말더듬이왕’이 어떻게 그 어려운 시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위기에 처한 영국을 구하는 시작을 만들 수 있었을까?

조지 6세의 왕자 시절 이름은 알버트(Albert)이다. 말도 유창하게 하면서 사교성이 뛰어난 형 에드워드(Edward)의 그늘에 가린 시간을 보냈다. 부인의 도움으로 라이오넬 로그(Lionel Logue)라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언어치료사를 만나 말더듬을 극복하려는 노력도 하였다. 어차피 왕이 될 것도 아닌 상황이라서 가능한 대중 연설을 피하면서 대중의 눈에 띄지 않는 생활을 즐겼다. 아버지 조지 5세가 1936년 죽고 형이 왕위를 물려받으면서 에드워드 8세가 되었다. 

하지만 형 에드웨드 8세의, 당시로서는. 유별한 행동 때문에 알버트는 조지 6세가 되는 운명의 변화를 맞이한다. 두 번 이혼 경력이 있는 미국여자 월리스 심슨(Wallis Simpson)과 결혼을 하면서 에드워드 8세가 퇴위하였기 때문이다. 영국 왕실 전통으로 볼 때 남자관계가 폭넓을(?) 뿐 아니라 이혼 경력도 두 번 있는, 더군다나 미국여자가 왕비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왕좌가 아니라 사랑을 택한 형 때문에 알버트는 갑자기 조지 6세로서 왕이 된다. 형을 위해 준비한 대관식에서 동생이 왕이 된 것이다. 

조지 6세로 나온 콜린 퍼스(Colin Andrew Firth)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알버트의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 역을 맡은 제프리 러시(Geoffrey Roy Rush)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으로 학위나 자격증 하나 없었지만 1차세계대전 참전 후유증으로 말을 더듬게 된 경험을 바탕으로 알버트 왕자에게 인간으로서 자신감을 넣어주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로그의 도움으로 알버트 왕자는 대관식을 무사히 치렀을 뿐 아니라 조지 6세로서 이차세계대전 승리의 첫 출발이 되는 명연설을 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명연설이었을까? 처음 시작 부분을 보자.

“In this grave hour, perhaps the most fateful in our history, I send to every household of my peoples, both at home and overseas, this message, spoken with the same depth of feeling for each one of you as if I were able to cross your threshold and speak to you myself. For the second time in the lives of most of us we are at war.

(https://www.americanrhetoric.com/speeches/kinggeorgevifirstradioaddress.htm)

“아마도 우리 역사에서 가장 운명적이면서 암울한 이 시간에 모든 국내외 사람들에게 마치 내가 여러분 옆에 있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이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우리들 대부분이 인생에서 두 번째로 전쟁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 문장을 읽는데 거의 1분이 걸렸다. ‘말더듬이왕’이 아니었다면 30초가 걸리지 않을 분량이다. 위에 표기한 출처에 찾아가서 실제 조지 6세의 당시 라디오 연설을 들어보면 콜린 퍼스의 연기에서 받은 감동이 배가되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영문학자가 아닌 입장에서 조지 6세의 당시 라디오 연설문이 얼마나 수려한 문장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희망을 잃고 낙담하며 분열해 있는 국민들에게 용기를 주면서 동시에 모두가 함께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희망을 안겨준 ‘말더듬이왕’의 진심을 느낄 수 있다. 조지 6세의 실제 연설이 그랬고 콜린 퍼스는 이를 감동적으로 재연했다. 소리의 우렁참이나 강약은 없다. 말더듬을 아슬아슬하게 극복하면서 단어 하나하나에 진심을 담는 조지 6세의 모습은 있다. 말더듬이 알버트 왕자가 갈 길 잃은 국민의 희망 조지 6세로서 탄생하는 순간이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내용이다.

말로만 국민에게 다가간 것이 아니다. 실제 행동을 통해 연설에서 말한 내용을 실천하였다. 조지 6세 일가는 독일 공군이 버킹엄 궁을 공습하는 와중에도 런던을 떠나지 않았다. 방공호에 대피해 있다가 무너진 버킹엄 궁 정원에 나와 사람들의 복구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런던을 떠나라는 주변의 권고를 뿌리치고 끝까지 런던 시민들과 함께 독일군의 공습을 견뎌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독일군의 공습에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상황을 함께 하였다. 부서진 버킹엄 궁을 배경으로 서 있는 조지 6세 가족의 모습을 본 영국국민들은 자신들의 지도자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 영화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연설 후 이야기다.

이제 우리에게 눈을 돌려 보자. 계층 간 격차는 심화되고 사회 곳곳에서 갈등이 폭발한다.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미래에 대한 희망을 빼앗아갔다. 이런 시기에 대통령 선거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말이 없다. 홍보업체가 만들어내는 각 후보들의 근사한 사진이나 짧은 구호 등 이미지 경쟁은 치열하다. 1인가구는 급증하면서 전통적 가족관계가 변화하면서 새로운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국민에게 향후 우리의 삶이 어떻게 나아질 수 있을지 희망과 용기를 주는 연설이 없다. 기계적이다 못해 숨 막히는 틀로 짜여진 토론회 같지도 않은 토론회만 있을 뿐이다. 

입만 열면 “저 사람 말 사실이야?”라는 비아냥을 받는 후보가 있다. 입 열 때마다 말실수라고 수습해야만 하는 후보도 있다. 말은 근사하게 하는 것 같은데 도무지 그 말에 신뢰가 가지 않는 후보가 있는가 하면, 이 후보 저 후보 흠은 잡으면서 자신은 도대체 뭘한건지 본인도 모르는 듯한 후보도 있다. 옆에서 만들어주는 이미지가 아니라 자신의 철학과 비전을 갖고 진심을 담은 연설을 통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고 어떻게 하면 어떤 변화를 이룰 수 있고 그래서 앞으로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는지, 그러니까 “나를 믿어 달라. 내가 앞장 서 보겠다.”고 진심을 보여주는 리더는 어디에 있을까? 지도자는 말로써 자신을 보여주어야 한다. 말더듬에도 불구하고 진심을 담은 연설과 실천하는 행동으로써 조지 6세는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킹스 스피치」를 지금이라도 대선 후보들이 보았으면 한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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