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영화 「10개월의 미래」가 한국사회에 질문을 던졌다. ‘비혼출산’이라는 주제를 갖고서 말이다. 한국의 비혼출산율은 2018년 현재 2.2명이다. 부모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태어나는 아이가 그 해에 태어난 아이 100명 중 2명 정도 된다는 의미다. 동거 부모이거나 여성 혼자 출산하는 경우일 것이다. 비혼출산이 한국사회에서 금기(禁忌)임을 보여주는 자료다. 이제는 앞에서 대놓고 손가락질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비혼출산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곱지 않다.  

그런데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평균 비혼출산율은 40.7명이다. 10명의 아이가 태어나면 그 중 4명은 혼인신고 하지 않은 채 태어나는 아이인 셈이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면서 저출산ㆍ저출생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프랑스의 높은 출산율과 이를 가능케 하는 출산지원정책 사례를 본받자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그 나라의 비혼출산율은 60.4명이다. 태어나는 아이 10명 중 6명의 아이 부모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이다(그림 참고).  

프랑스 등 선진국의 높은 비혼출산율은 혼인신고라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사랑하는 두 사람이 우선 함께 살아보는 자연스러움에서 나온다. 사랑을 하면 늘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렇게 살면서 이것저것 함께 경험해 봐야 결혼을 결정할 수도 있게 된다. 그렇게 살다 괜찮다 싶으면 아이도 낳는다. 이런 과정이 높은 비혼출산율로 이어진다. 여기에 더하여, 남자와 함께 살기 싫거나 함께 살 여건이 되지 않지만 아이를 혼자 낳아서 키우길 결심한 여성들이 있다. 필자가 유학했던 독일의 대학교에서는 혼자 아이를 키우며 학교를 다니는 (여)학생들만 사는 그룹홈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하였다. 미ㆍ비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낙인이 사실상 사라진 상황도 높은 비혼출산을 설명하는 요인이다. 

이제 한국으로 다시 눈을 돌려보자. 영화 「10개월의 미래」는 혼자 아이를 낳는 미래(최성은)의 이야기다. 임신부터 출산까지 10개월 간 한국사회가 미래를 대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생은 조직이다. 공무원도 조직이고 대기업도 조직이다. 사람은 결국 조직 안에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무장한 아버지가 제대로 된 조직 안에도 못들고 어느덧 스물아홉이 된 미래에게 면박을 주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결혼도 하지 않은 미래가, 자신의 뱃속에서 자라는 건 카스와 하이트 밖에 없다고 확신하던 미래가 임신을 하였기 때문이다. 미래는 더 이상 대한민국이라는 조직이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미래에게 임신은 축복이 아니다. 한국사회가 보자면, 영화의 소제목대로 ‘멍청함(stupidity)’의 원인이자 결과일 뿐이다. 축복이 아닌 임신은 대개 낙태로 이어진다. 영화에서는 산부인과 의사 옹중(백현진)이 낙태시술을 불법이라고 했다. “제 인생이 뒤집어지게 생겼어요.”라는 미래의 외침이 허망할 뿐이다. 미래의 첫 번째 낙태 시도는 일단 불발로 끝난다. 

그런데 현실은 이렇다. 지금 낙태는 불법도 합법도 아니다. 2019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결에 따라 형법 269조 낙태 처벌 조항이 효력을 상실했다. 판결에 따르면 2020년 12월 31일까지 형법 269조를 개정해야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형법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낙태는 산부인과 의사 개인의 판단에 따라 이루어진다. 다만 예전처럼 처벌이 두려운 상황이 아니다 보니 시술 비용이 공개되는 등 변화가 있을 뿐이다.

실제 현실에서는 불법도 합법도 아닌 낙태를 뒤로 미룬 미래의 인생은 이제 임신 이전과 본질적으로 다르게 뒤집어졌다. “이 사태의 법적 책임의 주체가 누구에요?”라는 미래의 질문에 아무도 답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 

소프트웨어 개발 전문가로서 자신이 ‘영혼을 갈아 넣었던’ 회사는 크게 확장하면서 상하이로 옮기게 된다. 그러나 미래는 상하이로 갈 수가 없다. 자신이 쌓아 올린 모든 성과가 하루아침에 날아갔다. 미래의 임신 사실을 아는 순간 회사 대표에게 미래는 업무 공백의 원인 제공자일 뿐이다. “자, 잠깐. 너 결혼 안했잖아.”라고 반응하면서 짓는 대표의 표정은 매우 상징적이다. 미래의 임신은 업무 공백을 가져올 뿐이다. 오히려 미래가 대표에게 그 업무 공백을 가져온 임신 때문에 사과를 해야 할 판이다. 다른 회사 입사를 시도하지만 미래의 임신은 어디를 가도 ‘문제’일 뿐이다.

남자 친구 윤호는 미래를 따라서 상하이로 갈 수 없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자신의 형편상 ‘애나 봐야 하기’ 때문이다. 남자의 직장을 따라 여자는 직장도 그만두고 따라가는데 자연스러운 게 한국 사회다. 그러나 그 반대는 안된다. 남자의 체면을 구기는 창피한 일이다. 게다가 윤호의 아버지는 ‘집안의 아이’를 갖게 된 미래를 이용하여 채식주의자 아들 윤호를 아예 돼지농장에 붙잡아 두려고 한다. 

임신이 미래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지만 미래의 입장에서 그 상황을 이해하는 사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길에서 마주친 어린아이조차 미래의 나온 배를 보면서 돼지라고 조롱거린다. 아이를 왜 낳아야 하는지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는 미래에게 뱃속의 아이는 혼돈 그 자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미래는 아이를 낳는다. 미래가 왜 낙태를 안했는지, 왜 아이를 낳았는지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미래는 비혼출산, 1인출산의 길을 선택했다. 「10개월의 미래」 중 한국사회에서 ‘10개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영화는 잘 보여줬다. 문제와 혼돈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는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완벽하게 대한민국이라는 조직이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나 이렇게 했다. 그래도 네가 나를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지난 10개월 동안 했던 것처럼 나를 대할 거야? 어디 한번 해보자!” 이제 미래가 던지는 「미래」에 대한 질문에 한국사회가 답을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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