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도 달라진 여성가족부, 가족의 범위

박진옥 나눔과나눔 사무국장
박진옥 나눔과나눔 사무국장

"내 아내는 무연고 사망자가 아닙니다"라며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에 참여했던 사실혼 관계 배우자는 화장로로 들어가는 아내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통곡했다. 늦은 나이에 함께 살면서 서로 좋으면 됐겠거니 하고 굳이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것뿐인데, 아내의 장례를 하지 못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지난해 여성가족부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의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대안적 가족에 대한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사실혼 관계 배우자와 같은 안타까운 일을 공영장례 현장에서 보지 않아도 될 거라 기대했었다. 

◆기존 태도를 번복한 여성가족부

발표된 제4차 기본계획의 정책 추진 방향은 "가족의 다양성 포용"이었다. 이를 위해 '가족의 개념 확대 등 법령 제·개정'과 '의료·장례 등 생활영역에서 혼인·혈연가족 위주의 관행·문화 등으로 인해 다양한 가족 구성원들이 겪는 불편 사례 발굴 및 개선'이 추진계획으로 제시되었다. 

무엇보다 법률혼·혈연 이외의 서로 돌보는 대안적 가족에 대해 가족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권리관계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대목은 더욱 시선을 끌었다. 그동안 애도할 권리가 박탈되었던 사실혼 관계 배우자와 친밀한 관계로 장례를 치르고 싶었지만, 법률과 제도의 한계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분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난 9월 22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국회에서 발의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정춘숙·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 주요 사항에 대해 '현행 유지' 의견을 제출했다. 

이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에 찬성했던 여성가족부의 기존 입장을 번복한 것이다. 또한 앞서 언급했던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에서 「건강가정기본법」의 '건강가정' 용어를 가치중립적인 용어로 변경하고 가족의 정의를 혼인·혈연·입양 이외의 다양한 가족을 포함할 수 있도록 확대하겠다던 기존 태도와도 상반된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점차 가족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1인 가구 증가와 아울러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이제는 '가족' 범위에 대한 변화는 더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요구이자 변화의 흐름으로 생각했다. 기존의 법률혼과 혈연중심의 사회가 더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영역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독사와 무연고 사망자 문제가 사회적으로 화두가 되면서 「민법」상 가족 범위보다 협소한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연고자 범위(배우자, 직계존비속, 형제·자매)'가 오히려 무연고 사망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이 바로 그런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기존 '연고자' 범위에 있는 사람들이 장례를 무리 없이 치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앞서 언급한 사실혼 관계 배우자와 같이 친밀한 관계의 사람이 협소한 '연고자' 범위로 인해 장례를 할 수 없는 상황들이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9월28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위한 국회 토론회' 가 열렸다./ 사진=나눔과 나눔 
지난 9월28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위한 국회 토론회' 가 열렸다./ 사진=나눔과 나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위한 국회 토론회 열려

지난달 28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위한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현실과 다른 가족 규정,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주제로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 한국여성민우회 등 11개 단체가 공동 주최했다.

첫 번째 발제자인 한국여성민우회 이민주 활동가는 인구·가족구조의 변동으로 인해 가시화되는 다양한 가족 실천 사례와 협소한 '법적 가족' 규정으로 인한 법·제도·문화적 차별 실태 사례에 관해 설명했다.

이어 발제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여성인권위원회 이근옥 변호사는 2004년 2월에 제정된 「건강가정기본법」에 대한 개정논의가 2005년 17대 국회부터 최근 21대 국회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내용과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위한 연구 등 그동안의 주요 쟁점에 관해 설명했다.

지난 2020년 발의된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과 정춘숙 의원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법률명을 「가족정책기본법」으로 변경하고, 혼인·혈연·입양의 협소한 가족 정의(제3조) 삭제, 가족해체 예방(제9조) 조항의 삭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6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실재하는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수용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예방하는 취지로 성소수자 인권보호를 위한 법률제정과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권고했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리고 2005년에도 국가인권위원회는 「건강가정기본법」이라는 법률명은 '건강가정'과 상반되는 '건강하지 않은 가정'이라는 개념을 도출시키므로, 다른 기본법과 같이 중립적인 법률명으로 수정할 것을 권고한 바를 설명했다. 

토론자로 나온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가족의 개념이 법률혼과 혈연관계에서 선택된 가족(chosen family)으로 확장되고 있는 미국 주정부별 '유급가족돌봄휴가'에서의 가족 범주를 소개했다. "선택된 가족" 개념은 베트남전쟁이 끝난 해인 1969년에 미국 연방정부가 전사자 장례에 참여하고자 하는 연방 공무원이 마치 가족처럼 친밀한 관계에 있는 자(equivalent of a family relationship)를 애도하기 위해 장례에 참여할 경우, 조사휴가(funeral leave)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등장하게 되었다고 했다. 

미국 이외의 영국, 캐나다, 스웨덴 등 다른 국가들에서도 돌봄 관련 사안에서는 가족의 범주를 확장하고 있다고 했다. 이때 가족은 '친밀한 관계에 있는 자(closely-related person)'로 혈연관계의 가족이나 친족을 의미하는 동시에, 말 그대로 돌봄을 받는 자와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즉 혈연이나 인척 관계가 없는 친구나 이웃도 포함되며 이들도 정부로부터 돌봄 수당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인구·가족 구조의 변동과 다양한 가족 실천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살아 있는 동안뿐 아니라 죽음과 이후 장례 등의 사후 사무에 이르기까지 어느 순간이든 혈연과 제도를 넘어 동행의 관계가 우선되어야 한다. 또한 '애도할 권리'와 '애도받을 권리'는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다. 하지만 현재의 법과 제도는 그 범위를 법률혼과 혈연중심으로 제한하고 있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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