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화 칼럼니스트
한유화 칼럼니스트

"돈 잘 벌면 혼자 살아도 괜찮지"

결혼을 하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더 탄탄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이 저변에는 두 가지의 조금 낡은 생각이 깔려 있는 것 같다. 첫째,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돈까지 없으면 더 서럽다는 생각(혹은 본인은 정작 서럽지 않더라도 남들 보기에 딱하다는 생각). 두번째는 조금 더 안타까운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결혼한 커플은 재무적으로 더 탄탄한 계획을 세울 수 있고 더 알뜰하게 돈도 모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 (결혼이 재무적 계획이나 의사결정의 계기가 되는 것은 맞지만, 그런 계기는 혼삶에서도 존재하지 않겠는가?) 혼삶을 흥청망청 욜로(yolo)족처럼 어리게 취급하거나, 더 심하게는 결혼과 같은 중대한 일을 '포기'한 것으로 미뤄보아 '진정한 어른'이 안 되었으니 재무적인 계획도 불안할 것 같은 전제. 

간혹 이보다 훨씬 더 무서운 세번째 전제도 있다. 결혼 안 한 지금의 나는 딱히 재무적으로 내세울 게 없지만, 결혼하면서 상대 쪽의 재무능력이 내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어차피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지킬 수 있는 경제능력을 갖추는 것은 대부분의 개인에게 필수적이다. 

"나이 들어 아프면 누가 돌봐줘?"라는 뜨악한 질문은 길게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가족이 노동력으로 대치되는 건 슬픈 일이지만, 아직도 종종 볼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이런 옛 대사에 섬뜩해져서 내 인생계획을 의심하지 말자. 가족들이 정서적, 경제적으로 힘이 되었기에 감사하는 것과 vs 가족들의 정서적, 경제적 부양을 기대하고 그를 전제로 노후를 설계하는 것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그에 의존한 노후계획은 얼마나 위태롭고(risky) 이기적인 것인가. 사람은 원래 스스로 자신의 생존을 책임져야 하는 존재윤리 같은 것을 기반으로 살아간다. 

"안정적인 혼삶을 위해 대체 얼마가 필요한가요"

혼삶의 노후준비가 결혼한 사람들과 같기는 어렵다. 부부가 두 명의 자산을 함께 운용할 때는(때로는 양 집안 자산까지 고려해서 운용하기도 하죠)은 1인 가정에 비해 유리한 측면이 많을 수밖에 없을 터. 같은 리그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노후준비를 하고 싶다면, 단순계산으로 한 사람이 두 배를 다 준비해야 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기에, 그것을 원동력으로 삼아 경제적 성공을 거두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리그를 갈아타고 방법을 달리할 필요가 있겠다.

혼삶은 대신에 출산, 육아에 드는 돈이 적지 않냐고? 상대적으로 미니멀하게 살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많은 혼삶의 모습 중의 하나일 뿐. 출산, 육아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정확하게 그에 해당하는 크기만큼의 여유가 생기는 것은 아닐 터. (인생이 애플파이 한 조각을 떠 내듯 그렇게 흘러가지는 않는 법이다.) 그 자리에는 또다른 삶이 채워지기에 의외로 모든 혼삶이 다 경제적으로 가벼운 삶을 살지는 않는다. 

오히려 혼삶은, 1인 가정에게 필요한 각종 서비스나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더 큰 비용을 대비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재무 상의 준비로만 해결하기 어려운 것들이 혼삶의 노후준비에서는 오히려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해결하기 위한 비용이 드는 것이다. 결혼한 커플이 가족계획을 세우면서 장기적인 삶을 준비하듯, 1인 가정에서도 유사 수준의 준비가 필요할 수 있다.

혼삶의 노후준비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혼자 삶을 꾸려가야 한다는 부담감에 휩싸여 정서적인 불안감을 메우기 위한 수단으로서 강박적이거나 지나치게 에너지를 쏟게 되는 상황이다. 누구나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그러고 싶어할 거라는 것은 생각보다 큰 착각일 수 있다. 실은 개개인이 각자 선호하고 의도하는 수준이 의외로 다르다. 내가 벌고 싶은 돈, 내가 이루고 싶은 자산, 내가 쓰고 싶은 돈의 규모에 대한 가치관은 시간이 지나면서 견고한 취향처럼 발현된다. 

부유해질수록 돈으로 행복을 사는 것은 점점 어려워진다는 '이스털린의 역설 Easterlin's Paradox 'by이 있다.  미국 남가주 대학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 Richard Easterlin에 고개가 끄덕여진다면 재무적인 노후준비의 부담감이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을 것이다. 노후를 걱정하고 준비하는 에너지를 조금만 덜어다가 혼삶의 방향과 가치관을 다듬어 나가는 것에 더 할애하자. 혼자니까 맘 편히 히피로 살든 오히려 더 촘촘하게 준비하든 그 모든 결정은 깊이 있는 고민을 거친 1인 가족계획 하에 선택한 것이어야 하니까. 

[저자 소개] 네이버 블로그 <직장인 띄엄띄엄 세계여행> 운영, 34개국 250여 회 #혼행 전문 여행블로거 

'남의집' 소셜링 모임 <여행블로거의 혼삶가이드>의 호스트

혼삶이 두렵지 않은 합기도 4단, 23년 경력의 '무술인'

현) 비욘드바운더리 글로벌 커머스 본부장

전) 이랜드차이나 상해 주재원, 중국 리테일 런칭 전략기획 

후) 독립출판 레이블 리더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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