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절 잔치를 위해 참석한 지역 노인들./사진=신락균
줄을 서서 음식을 퍼 가는 사람들./사진=신락균
혼자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삶에 있어 많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 나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1인 가구 수는 급증하지만 아직까지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서비스는 부족하다. 그래서 1인 가구가 1인 가구에 관심을 갖고 공감과 연대감을 이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1코노미뉴스]는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맞춰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에 나가 있는 '1인 가구의 삶'을 날것 그대로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며칠 전 유튜브로 한국 뉴스를 봤는데 서울의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 노인들을 위한 무료 치과진료소가 문을 열었다는 소식이었다. 치과진료는 서울시가 실시한 쪽방 주민 실태조사에서 쪽방 주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서비스였다. 주 3회 자원봉사자 의료진이 센터에 와서 치과 진료를 실시한다. 서울시는 월 100명의 주민이 진료를 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뉴스를 통해 본 쪽방촌 주민들은 이가 아예 없거나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치아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래도 무료진료소가 생겨 주민들은 돈에 대한 부담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으니 주민들에게는 참 반가운 소식이다. 쪽방촌 무료 치과 소식 끝자락에 치과 전문의의 인터뷰가 나왔다. 똑같은 노인인데도 어떤 이는 이가 다 빠져있고 어떤 이는 젊은 사람처럼 이를 다 갖고 있다면서 입안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치아 건강이 온전히 사람의 능력과 노력의 차이일까 의문을 던지며 인터뷰는 마무리된다.

치아에서도 엿볼 수 있듯 쪽방촌 독거노인들은 그들이 살아온 굴곡진 인생만큼 제대로 존중받지 못한다. 쪽방촌 독거노인만 그럴까. 노인이 되면 사회적으로 대접을 받는다기보다는 사회적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이 현실이다. 노약자를 노약자라고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극소수의 노인을 제외하고는 대다수는 노인이 되면 약자가 된다. 어떻게 보면 이는 자연의 순리다. 저 멀리 세렝게티 초원의 한때는 우두머리였던 수사자도 늙으면 왕좌에서 밀려나 무리에서 버림받는다.

노인이 되면 항상 외롭다. 자녀들도 이미 다 커서 제 갈 길 찾아 떠난 지 오래다. 명절에 간간이 찾아오기나 할까 싶다. 자녀들은 귀찮다. 제 몸 하나, 제 가족 챙기는 것도 벅찬데 어머니 아버지까지 챙긴다는 것은 늘 희망 사항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현대 사회의 노인들은 바쁘디 바쁜 자식들을 위해, 손주를 보기 위해 역귀성도 서슴지 않는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한겨울에 버스나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어찌 보면 커다란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그렇게라도 그들은 가족과의 끝, 사회와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설명절 잔치를 위해 참석한 지역 노인들./사진=신락균
설명절 잔치를 위해 참석한 지역 노인들./사진=신락균

 

영국 1인 가구 신락균=지구 반대편 영국에도 한인 노인들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인 1970, 1980년대 영국에 처음 이주해서 1세대로 이름을 날리셨던 분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이국땅에서 한인타운도 만드시고, 자식들도 잘 키워내시고 이제는 은퇴해 노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살고 계신다. 젊은 시절 이민자로서 영국에서 많은 것을 일궈냈으나 50년 세월, 자연의 섭리는 거부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세렝게티 사자와는 다르다. 무리에서 빠져나가는 대신 그들끼리 모여 하나의 사회를 조직한다. 영국에 거주하는 노인들은 재영노인회를 만들어 오래 운영하고 계시고 기금을 모아 노인회관도 마련해 정기적으로 만나서 수다도 떨고, 노인들을 위한 강좌를 수강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하고 계신다. 그렇다면 재영 노인들이 보내는 설날은 어떤 모습일까?

영국의 설날은 한국처럼 공휴일이 아니어서 연휴 기간에 가족들끼리 며칠 동안 보낼 수는 없다. 대신 설날 주간 주말을 이용해 노인들끼리 노인회관에 모여서 놀거나 떡국 등 한국 음식을 먹으며 잔치를 하는데, 올해는 뉴몰든 중심가에 있는 한국문예원에서 설날맞이 저녁 식사 대접이 있어서 필자도 참석했다. 떡국과 김치는 빠질 수 없다. 이외에도 보쌈, 치킨, 두부김치 등 다양한 음식이 마련되어 있었다. 6시에 시작한 이벤트에 하나둘씩 어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노인들뿐만 아니라 뉴몰든 거주 한인, 필자가 진행하는 한국어 강좌 수강생 등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다. 여러 사람이 한 곳에 모이니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필자는 한국어반 수강생들과 같은 자리에 앉아서 떡국을 같이 먹으며 설 명절에 먹는 음식을 하나둘씩 소개하고 각국에서 명절을 보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은 대부분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 있어서다. 

옆 테이블에서 앉아 계신 할머니들께서는 흥이 나셨는지 아리랑과 고향의 봄을 화음을 넣어 불렀다. 잔치가 막을 내릴 때 즈음에 할머니 한 분께서 자리를 뜨시면서 오늘 같이 좋은 잔치를 마련해 줘서 고맙다고 마음을 내비쳤다. 

해외에서 맞는 명절은 한국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명절 분위기를 느낄 수는 없다. 그렇지만 과거와 달리 이제는 해외에서도 충분히 한국 음식을 어려움 없이 구해 먹을 수 있고 장소와 시간, 사람들만 있으면 다 같이 모여서 오늘처럼 명절 분위기도 낼 수 있다. 오늘 행사 참석자들은 대부분 노인분이었지만 외로움은 젊은이와 노인 할 것 없이 인간이라면 모두 느끼는 감정임에 틀림없다. 떡국 먹고 막걸리 한잔하면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막상 환경이 달라지니 떡국 한 그릇과 막걸리 한 잔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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