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진의 리더십 읽기- 바보 천재 삼총사 ⑬

 

공융이 46세가 되던 199년, 조조 제거 시도가 발각되는 큰 사건이 일어났다.

10년 어린 나이에 동탁에 의해 황제가 된 헌제는 어느덧 혈기 왕성한 20대 중반의 청년이 되어 있었다. 그동안 동탁과 이각-곽사, 조조에게 줄줄이 시달리며 비렁뱅이가 되었었고 꼭두각시 취급받아왔으니 얼마나 속에서 불이 치밀어 올랐을지 짐작하고 남을 일이다. 그런 헌제가 조조를 제거하여 황실을 바로잡으라는 혈서 밀지를 옥대에 숨겨 동귀인의 아버지인 동승에게 내린다. 동승은 뜻을 같이하는 유비, 왕자복, 충집, 오석, 오자단 등을 모아 거사를 논의하려 했는데 그만 발각되고 말았다. 이 일로 피바람이 불고 동승의 일가 3족은 멸족된다.

이 일은 황제의 바람과는 반대로 조조의 세력이 더 커지고 드러내어 천하통일의 야망을 추진하는 계기가 되고 만다. 조회에서 벌어진 공융과 순욱의 원소 진영 장수들과 관련된 논쟁이 그것을 시사한다. 아마도 그때까지 주로 조조 진영 내에서 이루어졌을 원소와의 전쟁 논의가 이제는 한나라 조정 차원의 최우선 과제로 공식화되었을 것이다. 전쟁을 하려면 물자와 병력 준비만큼 적에 대한 평가와 분석도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공융과 순욱의 논쟁은 전쟁을 반대하는 한나라 황실의 생각을 대변하는 공융과 전쟁을 밀어붙이는 조조 진영의 생각을 대변하는 순욱이 대립하는상징적인 사건이다.

사실 공융의 눈에도 당시 천하의 흐름은 절망적이지 않았을까. 황실을 위협하는 불충한 조조의 세력은 갈수록 커지고 그를 따르는 사람은 점점 많아지는데 그나마 조조 제거 계획도 전에 발각되어 시도도 못 해봤다. 그리고 202년의 관도대전과 203년의 여양 전투 끝에 최대 라이벌인 원소도 죽어서 조조는 이제 무적의 존재가 되었다. 204년 업성 전투로 잔당도 소탕되어 이제 천하는 본격적으로 위-촉-오 삼국의 정립 단계로 접어들어 간다. 그런 흐름 속에서 점점 무력감이 커졌을까. 업성 전투가 있는 204년, 51세부터 조조 개인에 대한 공융의 비꼼과 비난이 많아지기 시작한 것 같다. 업성 전투에서 포로가 된 원소의 며느리 처리에 대한 고융의 촌평이 두드러진 분기점이다.

업성은 원소의 근거지였다. 204년 조조가 업성 전투에서 이겨서 성을 함락해 보니 성 안에는 원소의 가족이 있었다. 그중 원소의 장남 원희의 아내인 변 부인의 미모가 눈에 띄자 조조는 첩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자 곽가는 그리하면 원소의 아들뻘 항렬이 된다는 말로 간접적으로 만류를 한다. 조조는 조언을 받아들여서 아들 조비의 첩으로 삼게 했다. 공융은 이 일을 듣고 조조에게 편지를 써서 업성 전투의 승전을 축하하면서 변 부인에 대한 일에 대해서 “무왕은 주왕을 정벌한 후에 달기를 주공(무왕의 동생)에게 주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런 고사는 없다. 조조와 조 씨 일가를 조롱할 목적으로 공융이 고사를 비틀어서 이야기한 것이었다.

편지를 받은 조조는 처음에는 공융이 경전을 인용해서 자신을 두둔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고사가 없었다. 그래서 공융을 만났을 때 물어보았더니 공융은 “지금 일을 보니 옛날에도 당연히 그랬을 것 같다”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도의를 벗어난 행동을 한 사람이요 역사와 고전도 모르는 무식쟁이라고 비웃음 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과연 조조가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사람의 행동을 비난하는 것과 인격을 비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고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지금까지 조정 내 가장 큰 반대자이나 사대부 사회 내의 위상과 영향력을 고려해서 존중해서 공융과 가급적 직접적 충돌하지 않으려 했는데 이쯤 되면 생각이 바뀌지 않을 수 없다.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고 한다. 그런데,  과연 누가 나무였고 누가 바람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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