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화 청년 1인 가구 칼럼니스트 
한유화 청년 1인 가구 칼럼니스트 

진학이나 취업을 계기로 혼자 살기 시작한 1인 가구라면 많은 경우 원룸 형태의 주거 경험을 갖게 된다.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가 들어갈 자리가 명확히 정해져있는 편이고 공간 제약 상 자리 이동의 선택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이런 초기 자취생활의 경우, 옷가지 같은 짐이 얼마나 많은지와 얼마나 자주 직접 요리를 해 먹는지의 두 가지가 주거 공간의 모습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가 되곤 한다. 1인 가구의 경력(?)이 쌓여갈수록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이 반영되면서 주거 공간도 다양한 분류로 갈래를 뻗어가게 된다. 1인 가구는 삶의 요소를 취사 선택하는 것이 용이한 편이기에 그 모습도 참으로 다양하다.

"내 집은 삼다(三多)와 삼무(三無)의 집이다."

내 집에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대체로 '이게 여기 왜 있지?'싶은 것과 '이게 없다고?' 하는 요소들에 대해 궁금해한다. 지난 칼럼에서 언급한 것처럼 책이 많고, 술이 많고, 조명이 많다. 

대신, TV가 없고 소파가 없다. TV가 없으면 사실 소파의 의미도 약해진다. 드러눕고 싶은 욕망이 생기면 바로 침대로 가버리는 나에게는 소파라는 중간 정류장의 필요성도 별로 없다. 비스듬하게 눕고 기대는 자세는 24년 경력의 무술인인 나에겐 쥐약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TV와 소파가 없는 내 집 거실에는 여러 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널찍한 테이블이 있고, 그 옆을 책과 술이 차지하고 있다. 책과 술을 치우고 TV를 들일 날이 올까 싶다. 벽면의 흰 스크린에 빔 프로젝터를 틀어서 가끔 좋은 영화를 즐기기도 하고 심지어 스포츠 경기를 시청하기도 한다. 

집에 놀러 온 손님들과 라면을 끓여 먹을 때면 살짝 당황스러운 순간들이 있다. 자연스럽게 김치를 찾는 그들에게 실망을 안겨줘야만 하는 순간. 내 집에는 김치가 없다. 김치뿐 아니라 '냉장 반찬'이 전혀 없는 집. 방금 요리한 걸 바로 먹는 걸 좋아하는 내 냉장고는 공간이 꽉 찰 일이 별로 없다. 내 몸 맞는 식재료와 내 맘에 맞는 메뉴들로만 내 일상을 채워온 건 꽤 오래됐다. 

"뭐든 내 맘에 꽉 차지 않는 것은 집에서 함께 살 수가 없다."

디자인이 맘에 안 드는 빗자루도, 잘 쓰지도 않을 것 같은 운동기구도. 어떠한 물건을 집에 들인다는 것은 그 생애주기를 전부 책임진다는 의미다. 구입하는 비용부터, 놓아둘 공간, 먼지가 쌓이면 닦아주고 주기적으로 충전하거나 건전지를 갈아주는 것 같은 관리도 포함되고, 낑낑거리며 들고나가서 폐기하는 과정까지도. 이렇다 보니 비싸서 안 사는 물건만큼이나 버리기 힘들어서 안 사는 게 많아진다.

일을 대할 때도, 사람을 대할 때도 이런 생애주기를 기반으로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물건처럼 소유하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쉽게 시작할 수 있는지, 적은 노력으로 유지할 수 있는지, 수월하게 끝낼 수 있는지까지.

그렇기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큰맘 먹고 무언가를 사는 것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순간의 욕망이든 일생의 로망이든, 예상되는 어려움을 포용할 만큼의 강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가 바로 그런 것들이다. 내 삶에 꼭 필요하다는 확신이 들거나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것들이다. 혼삶을, 1인 가구를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사람들에겐 이런 감정적 기반이 있는 경우가 있다. 반려자를, 동거인을, 가족을 들이고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모든 것이 나에게 맞춰진 공간 만들기"

방 크기를 비롯한 제약들이 있더라도 그 안에서 조금씩 창의력을 발휘하여 공간을 장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자신의 일상과 맞지 않는 공간을 하루이틀 그대로 놔두고 지내다 보면 어느새 집은 세대주의 삶과 멀어져 버리고 만다. 1년도 넘게 눈길도 주지 않는 물건이 집 어딘가에 숨어있거나, 쓰지도 않는 가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내 몸이나 동선에 맞지 않는 공간에선 종종 몸을 수그리고 집안일을 하거나 눈높이에 맞지 않아서 소외되는 부분들이 생긴다. 

옮길 수 있는 것은 다양하게 옮겨보고, 없어도 되는 것은 과감히 비워내자. 집에 있는 동안 자신의 움직임을 잘 들여다보고 그에 맞는 동선을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상상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런 과정들을 거듭하다 보면 나의 다음 공간에 대해 꿈꿀 때도 막연히 더 큰 평수, 새로 지은 건물 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조금 더 세심하게 자신이 원하는 공간의 조건을 찾고 명확한 우선순위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공간에 대한 주도권을 비교적 쉽게 잡을 수 있다는 것이 1인 가구의 장점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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