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화 청년 1인 가구 칼럼니스트
한유화 청년 1인 가구 칼럼니스트

"그래도 넌 자식 하난 잘 키웠잖아."

'인생무상'이라는 말 자체는 낯설지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인이 되고도 한참을 지나서야 이 단어를 몸으로 느낀다. 인생의 덧없음에 마음이 헛헛할 때, 그 마음을 일시적인 정서로서 잘 어루만져서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흔히 쓰는 방법들이 있다. '그래도 내겐 00가 있잖아.'와 같은 말들이 그것이다. 이 빈칸에는 스스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을 함축한 단어가 들어가게 되고, 많은 경우에는 '가족'이 이 자리를 채운다. 자발적이며 장기적인 1인 가구의 경우, 특히 결혼과 출산 없이 살아가는 혼삶은 이 빈칸에 어떤 단어를 넣어야 할까?

매슬로가 주장한 5단계의 욕구 중, 자아실현을 넘어선 자기초월의 욕구 단계가 되면 자기 자신의 완성을 넘어서 타인, 세계에 기여하고자 하는 욕구를 갖게 된다고 한다. 이런 욕구가 왜곡된 형태로 발현되면 자칫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사회가 기대하는 출산율에 기여하고 자손을 통해 이후 세대에까지 기여하고자 하는 과도하고 강박적인 욕구를 갖게 되는 부작용. 이런 욕구들은 사회적인 언어로 잘 포장했을 때 꽤 공익적인 뉘앙스를 갖게 되고, 그와는 대조되는 가치를 추구하는 혼삶을 부정하는 무기가 된다. 의외로 자주 흔들리는 우리 어른들의 연약한 마음은 이런 날카로운 무기 앞에서 바들바들 나약해지기도 한다. 

"1인 가구의 허무주의"

즐겨보는 youtube 채널에서 이동진 영화 평론가가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 시리즈에서 스토리를 끌고 가는 중요한 핵심 중 하나는, 지은 죄가 있어서 벌을 받는 상황인 줄 알았던 사건들이 알고 보면 납득할 만한 인과가 없이 임의적으로 일어난 사고와 같은 일이었다는 점이다. 이동진 평론가는 여기서 흥미로운 관점을 언급했다. 갑작스럽게 사망 '고지'를 받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사망 피해 그 자체보다도 어쩌면 더 두려워 하는 것이 '무의미'라는 것이다. 의미가 없다는 것은 곧, 기준도 없고 계기도 없고 명분도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재난들이 의미 없이 임의적으로 벌어지는 사고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람들은 불안해서 몸부림치거나, 허무해서 무너져 버린다는 것이다.

저마다 자신만의 삶의 의미가 있지만, 살다보면 가끔 '이런 게 다 무슨 의미인가'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런 주변 사람들이 결혼, 출산을 통해 얻은 것들로 삶을 의미있게 생각하는 것을 볼 때, 그렇다면 내 혼삶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막막해질 때가 있었다. '이 고독한 세상에서 나는 변치 않는 내 편, 내 배우자가 있으니' 라는 따뜻한 위로에 기대기 힘든 것이 1인 가구의 혼삶이다. 

"1인 가구는 무엇으로 사는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Cal Tech 의 저명한 물리학자 캐롤 Carroll 의 표현대로 우리는 아무런 '이유 없는 우주 pointless universe'에서 살고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 <행복의 기원> (서은국 지음) 중에서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내가 왜 태어났는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는 찾아내야 하는 게 인간의 숙명 같은 것.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는' 것이라는 게 맹점이다. 존재의 이유조차 모르는 무지한 인간이거늘, 무슨 수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알아낼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우리는 인류 전체가 생존해야 하는 명분을 찾는 것은 조금 뒤로 하고, 우선 각 개인이 자기 한 사람 몫의 이유라도 찾아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찾아낸 후에 '바로 이거야!'하고 정하면 그게 '삶의 의미'가 된다. 의미를 찾아간다는 표현도 어색한가 싶다. 의미를 만들어간다는 것이 더 와닿는다. 

"당신의 삶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예전에는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자기 대답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이 멋있어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조금 더 멋져 보일 때가 많다. '의미가 없으면 뭐 어때?' 하는 사람들 말이다. 어떤 게 의미 있는 삶인지 모를 수도 있다. 오히려 '000한 삶은 무의미하다'라는 위험한 신념으로 쉽게 단정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예를 들면, '의미가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 같다. 무의미의 파괴력은 어마어마하다. 폭력적으로 일상을 부술 수도 있지만, 무릎에 탁 힘이 풀리게 해서 삶을 주저앉힐 수도 있다. 내 삶의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서 너무 슬퍼하지 말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 

인생이 정말 무의미한 것이라면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 

[저자 소개] 네이버 블로그 <직장인 띄엄띄엄 세계여행> 운영, 34개국 250여 회 #혼행 전문 여행블로거 

'남의집' 소셜링 모임 <여행블로거의 혼삶가이드>의 호스트

혼삶이 두렵지 않은 합기도 4단, 23년 경력의 '무술인'

현) 비욘드바운더리 글로벌 커머스 본부장

전) 이랜드차이나 상해 주재원, 중국 리테일 런칭 전략기획 

후) 독립출판 레이블 리더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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