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천재 삼총사⑰ 

공융은 삼국지 이야기의 앞부분에서 공자의 후손으로 유가적 가치관에 충실하게 황제에게 충성하는 삶을 살려고 한 청류파 지식인의 한 사람이나 영웅 이야기에 가려져 눈에 잘 띄지 않는 캐릭터다. 그는 십상시-하진-동탁-이각과 곽사-조조로 이어지는 권력자들과 이어진 관직 생활을 했는데 그들에겐 제법 성가신 존재였다. 그가 비판자가 된 것은 황제 보위가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 힘없는 문신으로서는 다른 대안이 없는 선택일 수 있다고 생각된다. 

후한서를 지은 범엽은 공융이 죽임을 당한 이유로 조비가 원소의 며느리를 첩으로 맞은 것에 대해 무왕과 달기의 고사를 왜곡하면서 비웃은 것과 오환 정벌 도중의 곡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금주령에 반발하고 비꼰 일로 조조의 감정적 원한이 쌓인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공융의 인생을 통해 더 많은 이유가 누적된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몇 가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나서는 성격이다. 그는 남의 일, 특히 조조와 관계된 일에 많이 나섰다. 조정 대신으로써 한 나라의 권위와 체제를 위협하는 존재인 조조에 대해 어쩔 수 없었을 것이고, 또한 당시 대세가 기울어 나설 사람이 없기도 했을 터이니 그의 운명으로 보이기도 한다.

둘째, 사람에 대한 편향된 안목이다. 예형을 천자와 조조에게 추천한 일, 북해상 시절에 유능하다는 좌승조 우의손은 중용하지 않고 왕자법과 유공자를 가까이한 것을 보면 그의 안목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편향되었던 것 같다. 교제도 활동도 편향되었을 것이다. 시야가 편향되고 생각이 경직되면 변화나 변동에 경직된다. 국가의 일은 뛰어난 실행만큼 유연한 대처도 필요한데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효과적이기가 쉽지 않다.

셋째, 권력자 특히 조조의 인격과 도덕적 면을 공격했다. 사람은 인격과 태도, 도덕성을 공격받으면 고 그름에 관계없이 개인적인 원한 수준에서 분노하고 반발하게 된다. 자 잘못을 아는 사람도 설득되기를 거부하고 반격 또는 보복하려는 마음을 갖게 만든다. 하물며 황제를 능가하는 권력자인 조조에게 그렇게 하는 것은 속된 말로 죽으려고 환장한 것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넷째, 그의 반대에는 대안이나 다른 각도의 성찰이나 접근이 없어 보인다. 설득에 필요한 현실 분석이나 자료 등 객관적 근거들도 잘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높은 학문과 안목을 가졌다 해도 이런 식으로 반대한다면 그냥 방해일 뿐이다. 당면한 문제 해결이 시급한 조조와 같은 정치가들에게는 이른바 '썩은 선비의 칼 같은 혀'라고 느껴지는 쓸데없는 잔소리에 불과하다.

사실 비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떤 중요한 일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을 맞으면 생각 외로 무능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말이 앞서고 자신을 지식인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비판자가 여기에 해당될지도 모른다. 공융은 당대의 권력자들을 비난하고 비판하며 조롱하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쟁쟁하고 무도하기까지 한 군벌들을 제압하고 물리쳐서 한 왕실을 지키고 부흥하려면 매우 구체적이고 분명하며 실현 가능한 전략이나 방책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이해야 하느니라 하는 식은 어림없다. 그저 세 치 혀로 비난하는 목소리만 높인 결과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공융의 삶은 후대의 사람들, 자신이 지식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질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역사는 항상 진보하지 않으며 때로는 퇴행도 한다. 일부의 욕망이나 불의한 목적으로 정상적이었던 사회가 무너지고 정의가 손상된다. 그럴 때 시대의 방향타 역할을 해야 하는 지식인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공융은 그의 삶 전체를 들어 우리에게 하고 있는 듯하다.

덧붙여서 그가 자신을 굴러오는 수레바퀴를 멈출 힘이 없는 한 마리 사마귀에 불과하다고 느꼈을 때, 그의 조상 공자가 그랬던 것처럼 물러나 학문 정진과 후학 양성으로 길을 전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만일 그랬다면 그의 두 아이가 남긴 복소지란(覆巢之卵)의 안타까운 이야기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복소지란(覆巢之卵)은 공융이 조조에 의해 잡혀가던 당시 그의 자식들의 대화에서 나온 말이다. 당시 공융은 7세의 딸과 9세의 아들이 있었다. 공융이 잡혀가던 날 아이들은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잡혀가는데도 꼼짝하지 않고 바둑을 두었다. 사람들이 빨리 피신하라고 하자 그들은 고개를 저으며 "새 둥지가 뒤집히는데 알이 어찌 깨지지 않겠습니까?(覆巢之下 安有完卵)"라고 대답했다. 공융 일가는 삼족이 멸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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