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세 집 건너 한 집이 1인 가구인 시대가 됐다. 2022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21년 서울시 1인 가구 비중은 전체 가구의 36.8%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1인 가구는 이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구 형태로 자리매김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해 24개 1인가구지원센터에서 교육, 여가, 상담, 사회적 관계망 개선 등 다양한 1인 가구 지원 사업을 펼쳤다. 총 3만2825명의 시민이 1인 가구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1640건의 1인 가구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1인 가구는 만족감을 느꼈을까. [1코노미뉴스]는 서울시와 함께 '1인 가구 지원사업 우수 수기 공모전'에 참가한 1인 가구의 체험담을 <1인 가구 스토리> 코너를 통해 장기 연재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성인이 됨과 동시에 상경하여 1인 가구로 살아 온 지 8년째.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며 서울에서의 삶이 제법 익숙해질 즈음, 문득 혼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의 효능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주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었으나, 편안한 적막 속에 도사리고 있는 무료함과 외로움을 마주할 때면 나에게 '너는 혼자 사는 사람이야'라는 낙인이 찍힌 느낌이었다. 마음속에서는 이미 새로운 인간관계와 자극에 대한 갈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던 것 같다. 비슷한 상황 속에서 같은 생각을 하며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과 만나 공감을 얻고 고민을 나누고 싶었다.

서초구 월간 소식지에서 알게 된 1인 가구 지원센터는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창구였다. 센터 홈페이지를 살펴보다가, 다양한 프로그램 목록 중 총 3회기에 걸쳐 진행되는 '나를 위한 for me 테이블-베트남 편'신청 화면에 유독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단기 일회성이 아닌 나름 중기 프로그램이었고, 무엇보다 3번의 만남을 통해 동네 친구 1명만 사귈 수 있어도 값진 선물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부푼 마음을 안고 참석한 1회기는 베트남 음식을 직접 만드는 쿠킹 클래스였다. 요리에 앞서 강사님께서 한국인과 결혼하여 15년째 한국에서 상담 및 복지 관련 업무를 하고 계시는 베트남인 선생님을 소개해주셨다. 본국인 베트남에서는 교사로 일하셨다고 했는데, 존경받는 직업과 안정적인 생활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오셨다고 했다. 선생님은 낯선 타국에서 새로운 삶에 도전하고 이제는 2개 국어까지 자유롭게 구사하며 당신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하고 계셨다. 살아온 나날들을 짚어내는 선생님의 당찬 목소리가 좁지 않은 조리실을 꽉 채웠다. 그녀의 작은 체구에서 내 굳어버린 사고를 자극하는 큰 용기가 흘러나왔다. 

이후 2인 1조로 베트남 음식인 분짜와 반미 샌드위치를 만들고 함께 먹으면서 같은 조였던 친구와 가볍지만 흥미로운 대화들을 나눴다. 선을 지키며 신상 정보를 묻다가도, 서둘러 고기를 볶고 샌드위치를 베어 물었다. 오랜만에 누군가와 함께 요리를 하고 밥을 먹고, 뒷정리까지 하니 기분 좋은 포만감이 느껴졌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지만,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과의 신선한 대화들이 오고 갔다. 혼자 살기에 가장 증폭될 수밖에 없던 사람에 대한 갈증이 조금은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2회기에는 더 많은 분들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베트남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고 베트남인 선생님과 함께 전통 공예품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오뚜기'와 비슷한 장난감으로 어디에 올려놓아도 저절로 중심이 잡히는 나무 공예품이었다. 오랜만에 사부작대며 직접 장난감을 조립하다 보니 마치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실은 4인 1조로 둘러앉아 장난감을 요리조리 뜯어보며 고요한 대화를 하는 직장인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센터를 찾아왔다. 지자체에서 청년 1인 가구들을 위해 정성스레 기획한 프로그램에 책임감을 가지고, 새로운 만남과 경험을 기대하며 나온 사람들이었다. 각자 직장에서의 희로애락을 나누다 보니 1회기 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로 대화가 흘러갔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업계와 직무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르는 새에 2시간을 앗아갔다. 이렇게 소소한 네트워킹이 이렇게나 재밌다니. '신청하길 잘했다, 힘들어도 나오길 잘했다'며 과거의 나를 칭찬했다. 

3회기는 말 그대로 '마지막 만찬'이었다. 베트남 음식 맛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으며 2회기가 끝날 무렵 강사님께서 내주신 과제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과제는 코로나가 종식되면 가장 방문하고 싶은 해외 여행지를 소개하는 자료를 만드는 것이었는데,이번에는 대학생 시절 발표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과제에 임했다. 몇 주 전까지 초점 없는 동태눈을 하고 출퇴근만 반복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점점 이 프로그램에 진심이 되어가는 내 모습에 실소가 나왔다. 업무 시간 중에 짬이 날 때마다 정보를 찾고 열정을 담아 ppt를 제작했다. 내가 소개한 국가는 베트남이었는데, 1회기 때 찡한 감동을 안겨주었던 베트남 선생님의 영향이기도 했고, 이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주제가 베트남이었기에 선택했다. 물론 근 2년간 인간적 교류와 삶의 다양한 경험 들을 포기하고 지냈을 분들이 설레는 여행을 꿈꾸게 된다면, 내가 열심히 수집한 여행 팁과 정보가 작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조금은 투영됐다. 

식사 전, 가장 도움이 될 것 같은 자료를 놓고 투표를 진행했는데 감사하게도 내 자료가 가장 많은 득표를 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분들과 주문할 메뉴에 대해 누구보다 열띤 토론을 하던 중에 예상치 못한 상장을 받았다. 어색하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기념 촬영을 했다. 

수상명은 '기대 이상' 이었다. 담당자분의 위트있는 작명에 한 번 더 작게 웃으며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식당에서 대중적이지 않은 베트남 요리도 시도해 보고, 그동안 대화할 기회가 없었던 분들과 음식을 공유하며 한층 더 열린 마음으로 마지막 시간을 즐겼다. 식사 말미에는 베트남인 선생님과 사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한국에서 살아가는 외국인들의 애로를 듣기도 했다. 한국인이 눈감고도 하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높은 산과 깊은 강을 건너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는 것 같다. 베트남 선생님과의 만남을 통해,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의 삶에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해 봤다.  '분명 외국인 1인 가구도 많을 텐데 그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면, 한국 적응을 도와주며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지 않을까?'스치듯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했다.

이미 시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일 수도 있지만 하나의 사회 현상에 대해 정책적인 시각으로 생각해 본지가 오랜만이라 괜한 뿌듯함을 느꼈다.그렇게 마지막 3회기 만찬이 끝나고, 모든 참여자분들과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서초구 소재 맛집에서의 다음 약속을 기약했다. 1회기 때 함께 요리를 했던 친구와는 개인 번호를 교환하고 함께 수강할 클라이밍 수업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1회기 때 신선한 대화를 통해 조금이나마 해소되었던 갈증은 3회기 때 다 같이 베트남 맥주를 마시며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3회기에 걸친 프로그램은 이름 그대로 나를 위한(for me) 시간을 선물해주었다. 내향적인 1인 가구로서, 혼자 사는 삶을 그저 게으르고 무료한 시간 들로 보내 버렸던 내게 나 자신과의 관계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의미를 일깨워주는 시간들이었다. 동네 친구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내가 가져야 할 태도, 그리고 그들로부터 오는 자극을 건강하게 소화해내는 방법도 배워갈 수 있었다. 거기에 덤으로 상장과 부상까지.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풍요로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이번 기회를 통해 내가 깨닫게 된 두 가지 명제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1인 가구는 혼자 산다. 그렇기에 나를 탐구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넉넉히 가질 수 있고, 편하고 여유롭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내게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은 나의 중심을 단단하고 올곧게 빚어낸다. 

그러나 1인 가구는 혼자 살지 않는다.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과 살아갈 수 있다. 그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기회를 활용하며 경험치를 획득해나가는 과정에서, 주변의 수많은 1인 가구들과 연결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다. 내가 만드는 누군가와의 시간은 나의 중심을 무너지지 않게 감싸며 한 겹씩 쌓여간다. 그렇게 나라는 존재를 든든하고 성숙하게 채워준다.

혼자라는 생각에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고 망설이는 1인 가구 친구들이 있다면, 어떤 프로그램이든 좋으니 한번 두드려보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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