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도

스스로를 위해 선택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한유화 청년 1인 가구 칼럼니스트 
한유화 청년 1인 가구 칼럼니스트 

써니 작가의 탈가정 에세이인 <뭔가 잘못됐어>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새삼스럽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몇 세대 이전에 비해 현재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 세상에서 사는 것 같은 실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불과 조부모님 세대로만 거슬러 올라가도 배우자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정략결혼, 중매결혼이 일반적이었는데 이제는 결혼 여부를 선택하기도 하고, 내가 새로 꾸리는 가정이 아니라 이미 속해있던 '주어진 가정'에서의 요소들까지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다행으로 느껴진다.

이렇게 많은 선택과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기쁨이기도 하지만 어려움과 혼란을 가져오기도 한다. 무언가를 선택하기 이전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내고 결정하는'단계일 테지만 우리는 때때로 아주 사소한 것에 대해서조차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그런 우리에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원하고 나와 잘 맞는 가족은 어떤 형태인가?'라는 문제는 우주처럼 큰 질문이자 과제가 된다. 무수히 많은 선택 사이에서 나 자신의 내면을 듣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발견해야 하는 숙제이자 숙명.

 

의외로 종종 원치 않았던 것들을 선택하며 산다.

나는 카페라떼를 즐겨 마신다. 그 특유의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을 좋아한다. 속이 든든해지는 기분, 손이 스르르 녹는 기분, 고소하고 부드러운 기분. 벽난로 앞에 앉아 스위스 할머니가 담요를 덮은 채 흔들의자에 앉아 뜨개질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은 그런 기분.

문제는 라떼를 마시고 싶지 않은 순간에도 나도 모르게 주문하곤 한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라떼의 맛이 아니라 그 기분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만 탁 꼬집어 선택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소소한 영역에서조차 나는 사실 원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꽤 종종.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카페에서는 더더욱 그곳의 대표 메뉴를 경험해 봐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구수하고 개운한 아메리카노의 풍미가 그리워서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조차도 왠지 시그니처(signature) 메뉴를 마시지 않으면 손해 보는 것 같은 마음에 선택을 달리 하기도 한다. 물론 시그니처 커피는 대부분 달달하게 크림이 올라가서 아주 맛있지만, 그 순간의 내 진짜 취향은 너무도 간단하게 묵살되어 버린다.

처음으로 이탈리아 로마를 여행하며 그럴싸한 곳에서 식사하던 날이었다. 이탈리아어만 가득한 메뉴판은 물론이거니와 자릿세며 팁 문화도 뭐가 뭔지 익숙하지가 않았다. 잔뜩 신경이 곤두섰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유지하며 어찌어찌 주문할 음식을 골라놓은 참이었다. 발걸음조차 열정적인 이탈리안 웨이터가 상체를 가까이 들이밀며 내게 물어본 첫마디는 "Sparkling or still?"이었다. 탄산수와 생수 중에 어떤 것을 주문하겠느냐는 질문이었다. 나중에야 이게 유럽권에서는 일반적인 주문의 첫 단계라는 것을 알았지만, 당시의 수줍었던 나는 익숙하지도 않았던 탄산수를 달라고 대답했다. 푸른빛의 크고 예쁜 병에 담긴 탄산수는 톡 쏘는 맹물 같아서 입에 맞지 않았다. 아쉽게도 몇 모금밖에 마시지 못하고 남긴 탄산수가 얼마나 아깝던지. 여러 차례 여행을 다닌 후에야 물을 주문하지 않거나 자연스럽게 와인 등의 주류를 시키고자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는 걸 터득하게 됐다. 

의외로 이런 식의 질문은 잦다. '하지 않는 것'이 선택지에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질문. 제시되지 않은 답안을 찾아내는 과정에는 지식과 경험과 창의성도 필요하고, 그런 답을 선택하기 위한 나름의 용기나 스킬이 필요할 때도 있다. 아무리 고심해서 답을 고르더라도 결국 원치 않는 커피를 시키고 탄산수를 마시는 것과 같은 선택은 종종 일어난다. 단순히 더 기분 좋은 이미지가 연상된다거나 왠지 이럴 때는 이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또는 놓치거나 손해 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는 하고 싶어도 못 할 것 같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겐 결혼도 그렇다.

내가 원하는 삶의 형태를 찾기 위한 탐색과 결정의 과정은 늘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끊임없이 진정성과 자기 신뢰를 발전시키면서 내면의 욕구와 목표를 발견해 나간다면, 우리는 그 선택의 결과를 조금이라도 더 기꺼이 감당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저자 소개] 네이버 블로그 <직장인 띄엄띄엄 세계여행> 운영, 34개국 250여 회 #혼행 전문 여행블로거 

'남의집' 소셜링 모임 <여행블로거의 혼삶가이드>의 호스트

혼삶이 두렵지 않은 합기도 4단, 23년 경력의 '무술인'

현) 비욘드바운더리 글로벌 커머스 본부장

전) 이랜드차이나 상해 주재원, 중국 리테일 런칭 전략기획 

후) 독립출판 레이블 리더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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