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장년층의 고용 불안정성이 세계에서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전문가들은 정년을 높여 노동 구조개혁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사진=1코노미뉴스, 미리캔버스
국내 중장년층의 고용 불안정성이 세계에서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전문가들은 정년을 높여 노동 구조개혁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사진=1코노미뉴스, 미리캔버스

우리나라 중장년층 고용 불안정성이 세계에서도 높은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과도한 임금 연공체계 개선과 제도적 힘보다는 시장의 힘에 의한 안정성을 확대해 정년까지 재직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제언이다.

20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중장년층 고용 불안정성 극복을 위한 노동시장 기능 회복 방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우리나라 55~64세 임금근로자 중 임시고용 근로자의 비중은 남자 33.2%, 여자 35.9%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는 2위인 일본과도 10% 포인트 이상 격차가 났다. OECD 평균인 남자 8.2%, 여자 9.0%를 훌쩍 넘어섰다.

특히 중년 이후 나타나는 고용불안감의 근본적인 원인인 정규직 노동수요 자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정규직 일자리에서 퇴사 후 정규직으로 재취업하기가 어려워 비정규직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사진=KDI '중장년층 고용 불안정성 극복을 위한 노동시장 기능 회복 방안' 보고서 사진 캡쳐
사진=KDI '중장년층 고용 불안정성 극복을 위한 노동시장 기능 회복 방안' 보고서 사진 캡쳐

실제로 해고가 자유롭다고 알려진 미국 노동시장과 비교해 보더라도 큰 차이를 보였다. 남녀 임금근로자의 중위 근속연수가 연령과 함께 안정적으로 증가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는 중년 이후로 고용 안정성이 급격히 하락한다. 남성의 경우 40대 중반 이후 중위 근속연수의 증가가 멈추고 50대부터 급락했다. 여성의 경우 30대 중반 이후 중위 근속연수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

이러한 차이는 남녀 모두 현재 제도적 최소정년인 60세 이후 더 분명하게 나타났다. 이는 중년 이후 같은 직장에서 재직하기가 미국에 비해 훨씬 더 어려운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1년 이하 근속자 비중'이 성별과 상관없이 나이가 많을수록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고임금·고숙련 일자리를 보더라도 2019년 기준 55~64세 남자 32.2%, 25~54세 여자 43.1%에 불과했다. 같은 시기 OECD 평균이 각각 47.2%, 50.3%를 크게 하회하는 수치다.

이는 정규직 '임금의 경직성', 과도한 '연공서열형 임금구조'가 요인인 것으로 꼽혔다.

표=KDI '중장년층 고용 불안정성 극복을 위한 노동시장 기능 회복 방안' 보고서 사진 캡쳐
표=KDI '중장년층 고용 불안정성 극복을 위한 노동시장 기능 회복 방안' 보고서 사진 캡쳐

우리나라의 경우 대기업 및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근속연수에 따른 임금 증가가 매우 가파르다. 근속연수가 10년에서 20년으로 증가할 때 평균적인 우리나라 임금상승률은 15.1%를 기록해 OECD 국가 중 가장 높았다. 이는 일본(11.1%), 독일(10.3%), 미국(9.6%) 대비 웃도는 수치다.

이처럼 연공서열에 따른 임금상승이 가파를 경우 기업들이 중장년 근로자의 조기퇴직을 유도하려는 경향이 증가한다고 파악했다.

생산성이 높은 시기까지는 임금이 높게 상승하지만, 생산성이 낮아지기 시작하는 중장년층부터 합법적인 계약 해지의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높은 임금 연공성과 결합된 강한 고용보호와 이른 정년은 비록 개별 기업 차원에서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노동시장 차원에서는 중장년 정규직 노동수요를 전반적으로 낮추는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낮은 중장년 정규직 노동수요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파악했다. 정규직으로 한 직장에 오래 머무르는 근로자는 높은 임금과 정년까지 안정성을 누릴 수 있지만, 기존 직장을 이탈한 중장년층 근로자는 재취업 시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아울러 여성의 경우 출산과 맞물리면서 조기퇴직과 여성 경력단절을 초래하고 있어 여성 경제활동 참여 증가 등 거시적 변화 대응에 심각한 제약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는 최근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저출산 완화와 더불어 인구 고령화에 따른 정년 연장을 고려해 노동시장 구조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실제로 인구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빈곤 문제, 노후 준비 부족 등 고령층 고용불안 역시 대책 마련이 꾸준히 요구되오고 있다. 고령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계속 근로를 희망하는 응답률도 높게 나타나고 있다. 정년연장 도입 논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실이 되고 있다.

앞서 지난해 말 한국고용정보원의 고용동향 브리프를 보면 65세 이상 고령자 중 '구직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18.6%로 10년 전(11.7%)보다 6.9%포인트 증가했다. 또한 고령자 중 계속 근로를 희망한다는 응답이 55.7%로 절반을 넘었다. 남성이 여성보다 계속 근로를 희망했고, 학력이 낮을수록 경제적인 이유를 1순위로 선택했다.

보고서는 이에 따라 대기업 및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정규직 임금의 연공성을 완화해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요셉 KDI 연구위원은 "현재 노동시장 구조하에서 법적 강제에 의해 정년을 연장할 경우 인력 활용 효율성 제고 측면의 효과성은 미미하고 여성 고령인력 조기퇴직, 청년 고용 감소 등 여러 차원의 부작용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제도적 힘보다는 시장의 힘에 의한 안정성을 확대하여 정년까지의 재직 비중을 높이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시급하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를 토대로 정년의 추가적 연장도 한층 수월하게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공공부문에서 생산성이 빠르게 증가하는 일정 기간 이후 연공서열에 의한 임금상승을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직무와 성과에 따른 임금상승이 이루어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공공부문 직무급 확대 정책을 개별 기업 단위의 형식적 변화에 그치게 하지 말고, 유사한 산업에 속한 공기업들 및 산업 단위의 노사정 협의를 통한 직무 분석·평가·설계·보상의 인프라 구축과 민간 기업으로서의 확산 등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 내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또 우리나라는 고령화와 더불어 중장년층에서도 1인 가구가 늘고 있어 이러한 노동환경 개선이 시급하다. 중장년 1인 가구의 경우 고령 1인 가구로 이어질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은데, 이들이 노후 대비에 소홀한 상태에서 소득절벽을 맞게 되면 심각한 빈곤 현상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실제로 생애주기상 주 직장에서 퇴직하는 연령대가 40대 말부터 시작되고 있어, 정년 연장 또는 계속근로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에 힘이 실린다. 여기에 노후에도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야 국가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우리나라 노년부양비는 올해 27.4명에서 2070년 100.6명까지 치솟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노년부양비는 생산가능인구(15~64세) 100명에 대한 고령(65세 이상) 인구의 비를 말한다. [1코노미뉴스 = 안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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