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나라나 도시에 여행을 가면 배탈이 난다거나 피부 질환을 앓는 등의 물갈이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독일에 처음 유학을 오거나 거주를 시작한 사람들도 이러한 물갈이를 경험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원인은 석회수에 있다.

독일 물은 센 물(경수, hartes Wasser)로 석회(칼크, Kalk)로 마그네슘, 칼슘 등 미네랄 함량이 높은 물이다. 물의 경도는 세 단계로 나뉘어지는데, 미네랄 함량 농도에 따라 8.4°dH 미만은 연수, 8.4-14°dH는 중간,  14°dH 이상은 경수로 구분된다. 독일 평균이 16.599°dH인 점을 감안하면 독일은 경수, 즉 센 물이다.

또 이 세기(경도)는 지역에 따라 다른데, 예를 들어 작센 안할트 지역의 경우 평균 24°dH, 프랑크푸르트가 있는 헤센 지역과 베를린은 17°dH, 브레멘은 8°dH로 차이가 있다. 

이 석회수를 가장 잘 체험할 수 있는 순간은 설거지를 한 이후이다. 평소 우리나라에서 하듯이 설거지를 하고 그릇을 건조대에 올려두면 그릇이 마른 후 하얀 물방울 무늬를 또렷하게 볼 수 있다. 특히 유리잔이나 어두운 색의 그릇에서 가장 또렷하게 눈에 띄기 때문에, 레스토랑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설거지 후 곧바로 수건으로 물기를 닦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물론 물을 가장 많이 쓰는 화장실에서도 석회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세면대, 수도꼭지, 거울에 튄 물방울 자국은 물론이며, 샤워기 헤드의 물이 분출되는 곳 주변에도 하얗게 석회가 끼어있다.

그래서 독일 마트에는 석회 제거 용 청소 제품도 다양하고, 또 커피 머신이나 전기 포트처럼 물을 항상 사용하는 주방 기계류 전용 석회 제거제, 세탁기용 석회 제거제도 볼 수 있다. 그 밖에 심각하지 않은 일상 속 석회 제거를 위해 식초 또는 레몬을 이용한 세척 방법도 있다. 특히 독일은 이사를 나가기 전에 집을 깨끗이 청소해서 입주했을 때의 상태로 만들어 놓아야 하기 때문에 화장실 청소의 50%는 석회 제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미관상 좋지 않은 것만이 석회수의 단점은 아니다. 사람의 체질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석회수로 인한 피부 질환으로 고생을 한다. 독일 교민 사이트 또는 유학생 네트워크에도 석회수로 인한 피부 질환 문제에 대한 대처법을 묻는 질문들이 왕왕 등장한다.

꽤나 건강한 피부를 자랑하던 필자도 지난 6년간 없던 피부 질환이 이사 이후 발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봄철의 건조한 피부로 인한 가려움증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루 이틀이 지나자 붉은 반점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독일 유학생 네트워크에 올라왔던 질문 글들이 생각이 났다.

독일 생활 6년 차에 내 피부도 꽤 적응했으리라 믿었건만, 이사 이후 새로운 도시의 물에 적응하지 못한 모양이다. 그렇지 않아도 건성이던 피부가 극건성이 되고, 붉은 반점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그 후 그 범위가 넓어져 갔다. 심지어는 머리카락이 빠지는 양도 부쩍 늘어서 샤워 후 배수구를 보며 놀란 가슴을 부여잡곤 한다.

그제야 찾아보니 이전에 살던 도시는 경도 9°dH 정도의 상대적으로 연수에 가까운 물이었던 반면, 지금 살고 있는 도시는 19°dH로 매우 센 물이었고, 그 덕에 뒤늦게야 독일에 온 신고식을 치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독일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필수품은 정수기이며, 심각한 경우에는 샤워기 헤드를 연수기로 교체하기도 한다. 세수 이후에는 스킨을 화장 솜에 충분히 적셔서 얼굴의 석회 잔여물을 닦아낸다. 심지어는 세수 이후에 클렌징 워터로 얼굴을 한 번 더 닦아내기도 한다.

타지에 살면서 낯설고 불편한 일은 언제든 생기지만 그것이 건강과 직결될 때에는 더욱 예민해지게 된다. 혹시 이미 이러한 피부 질환의 전조 증상을 겪고 있는 이들이라면 독일의 지역별 물의 경도를 안내해주는 사이트에서 자신의 도시 상황을 파악한 후 그에 따라 미리 대비를 해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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