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살고 있다” 이 한마디면 많은 사람들이 설레하며 부러운 눈동자로 필자를 쳐다보곤 한다. 영화 속 장면, 여행 중 행복했던 순간, 역사가 만든 모든 이미지들이 파리를 사랑스럽고 로맨틱한 도시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고풍스러운 오스만 양식 건물, 밤마다 파리를 따뜻하게 밝히는 가로등, 항상 같은 시간에 빛나는 에펠탑 등 파리하면 생각나는 것들은 항상 그 자리에서 본분을 다한다. 그러나 파리도 사람 사는 곳이다. 사람들이 얽힌 사회는 항상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특히 홀로 지내는 여성이라면 파리라고 해서 예외적으로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파리에서도 늦은 밤 혼자 길을 걸으면 누군가 따라오기도 하고 캣콜링을 당하기도 한다. 지하철을 타다 가도 범죄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주변 지인 여성들은 대부분 혼자일 때 전동차 내에서 혹은 길거리에서 핸드폰을 도둑 맞은 경험이 있다.

필자는 파리에 사는 몇 년 동안 흔히 당하는 소매치기는 한번도 겪어보지 않았지만 황당한 사건은 종종 맞닥들였다. 그중 최근에 일어난 사건은 특별히 홀로 거주하는 여성들과 공유하고 싶다.

파리에서 그리 길지 않은 기간에 다양한 경험을 마주한 필자는 홀로 사는 만큼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그리 좋아하는 곳은 아니지만 안전만큼은 보장한다는 동네로 이사를 온지 1년이 넘었다. 그리고 며칠 전 그곳을 떠났다.

몇 주 전부터 집에 있으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가 우리집 문을 두드릴 것만 같은 느낌. 파리 대부분의 아파트는 옆집, 윗집이 무엇을 하는지 눈치 챌 수 있을 만큼 소음이 심하다. 그러나 우리 집은 벽이 두꺼워 옆집의 소음은 전혀 들리지 않지만 문밖 너머로 사람들이 아파트 복도를 지나다니는 소리가 잘 들렸다. 새벽 시간에 잠을 청하는 필자는 그 늦은 시간까지 누군가가 자꾸 집앞을 서성이는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어느 날 밤은 아파트 복도에서 피우는 담배 냄새가 집안으로 들어왔다. 여태껏 이정도로 심하게 냄새가 퍼진 적이 없었다. 꼭 누군가 내 옆에서 담배를 태우는 것 같았다. 같은날 코를 찌르는 향수 냄새도 집 안으로 퍼졌다. 방 안 창문을 활짝 열어 두었지만 며칠 동안 밤마다 같은 냄새로 곤욕을 치렀다.

며칠 내내 그 냄새를 맡을 때면 기분이 오싹했다. 지독한 향수 냄새는 앞집 남자가 뿌리는 향수였기 때문이다. 어쩌다 마주치면 인사 정도 하는 사이인데 얼마 전부터 내게 사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 정도로만 짧게 답변하고 자리를 피했다. 앞집 남자와 마주칠 때 마다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그 향수 냄새를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 냄새가 며칠째 밤마다 우리집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집 문에 뚫린 구멍을 발견했다. 밖에서 보니 작은 스튜디오인 우리집이 훤히 다 보였다. 소름이 돋았다. 그 구멍에서 앞집 남자의 향수 냄새가 진하게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사실을 집주인과 건물 관리인에게 알리고 경찰서를 찾아갔다.

경찰은 해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구멍이 뚫린 대문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해 갔지만 앞집 남성이라는 증거가 없고, 도둑 맞은게 아닌 이상 경찰이 출동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뚫린 구멍은 집주인이 직접 시멘트로 막아줬다. 이제껏 이런 일은 없었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비슷한 시기 괜찮은 집을 발견해 그곳으로 이사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구멍을 발견하고 2주가 되어서야 그집을 떠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찝찝하고 나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필자는 홀로 사는 여성으로서 보복이 두려워 그 남성에게 아무 이야기도 하지 못했다.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경찰은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았다. 결국 필자 스스로가 그 상황을 이겨내는 방법이 그곳을 떠나는 것 뿐이라는 사실에 아직도 화가 난다. 결국 스스로 나를 지키는 것이 첫번째라는 교훈을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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