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를 선택한 것은 항공편이 저렴한 이유도 있었지만 바닷가가 있는 휴양지에서 생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가로운 해변에서 철썩철썩 파도치는 소리를 들으며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등 인생에 대한 복잡한 고민 말이다.

파리에 살지 않았다면 이런 고민을 늘어놓는 장소가 파리가 되었을 테지만 현재 현실 세계가 된 이곳은 사고의 장소로 적당하지 않았다.

몰타 정박한 요트들./ 사진=정희정
몰타 정박한 요트들./ 사진=정희정

 

늦은 밤 도착한 몰타는 한적하고 아름다웠다. 좁은 골목길은 작은 집들이 늘어선 유럽 시골 분위기를 풍겼다. 예약한 게스트 하우스가 위치한 시내로 나오자 불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요트들이 정박한 작은 항구 주변에는 멋진 전구들이 불을 밝히는 레스토랑과 바들이 즐비했다.

체크인 하기 위해 게스트 하우스 리셉션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어디선가 ‘붐붐붐’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들렸다. 리셉션 옆문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테라스와 루프탑이 있는 숙소 내 바였다. 알고 보니 내가 예약한 숙소는 클럽 영업 종료 뒤 모이는 애프터 파티 장소로 유명한 곳이었다.

‘이러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닌데...’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섬인 줄 알았던 몰타는 사실 영어를 배우려고 가장한 유럽인들의 파티 장소였다. 밤 문화로 유명한 스페인 이빗자(Ibiza) 섬에 버금가는 곳이라고 여행 중 만난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내게 말했다.

도착 당일, 룸 전자키가 작동이 되지 않아 숙소 관계자가 두 시간 동안 애를 썼다. 독일 출신 게스트 하우스 사장 아저씨는 그 친구에게는 고맙고, 내게는 미안하다며 칵테일 한 잔을 대접했다. 덕분에 내 키를 고쳐준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온 지 약 10년이 된 싸미(Sammy)에게 몰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프리랜서로 프로그래밍을 하는 싸미는 내가 머무는 숙소 주인아저씨와의 친분으로 숙소 키 고장 등 전자기기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숙소를 찾아 일을 돕는다고 했다.  싸미의 고객들을 대부분 몰타 현지인인데 이들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몰타는 최근 몇 년 사이 유럽 부자들이 대거 현지 부동산에 투자하면서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고 한다. 요즘에는 중국 부자들도 몰타 아파트에 관심을 많이 갖는다고 한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몰타 수도 발레타(Valletta)를 제외하고 그 주변 도시들의 아파트를 사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머물렀던 곳은 발레타에서 버스로 약 20~30분 걸리는 슬리마(Slima)라는 동네이다. 몰타에서는 밤 문화 즐기기에 가장 좋은 장소로 꼽힌다. 물론 숙소에 도착하기 전까지 나는 전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몰타 숙소 루프탑./ 사진=정희정
몰타 숙소 루프탑./ 사진=정희정

 

숙소 루프탑에 올라가면 슬리마 시내가 꽤 넓게 보이는데 사방이 공사 중이었다. 건물을 새로 짓거나 기존 건물에 층수를 더하거나 하는 식이었다. 몰타 시내를 가르는 자동차도 굉장히 많았다. 정말 시내만 놓고 보면 휴양지라기보단 유럽 대도시 느낌에 더 가까웠다.

몰타도 몰타지만 집 떠나 먼 길을 온 싸미가 궁금했다. 그에게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냐고 행복하냐고 물었다. 30대 초반인 싸미는 10년 전 20대 초반의 나이에 고국을 떠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싸미는 원래 영국을 꿈꿨지만 비자 문제로 인해 갈 수 없었다고. 이후 고민 끝에 영국식 영어를 사용하는 몰타로 왔다고 한다. 그는 “원래의 목적지는 아니지만 몰타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프리랜서로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면서 “10년 전 고국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칵테일 한 잔을 손에 들고 웃고 있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우스갯소리를 했다. 또한 “당시 가족과 친구들을 떠난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는데 더 나은 삶을 위해 큰 용기를 냈다”라고 회상했다.

싸미의 웃음 속에 ‘행복’을 위해 가족을 떠나 오랜 시간 타국에서 고군분투했을 그의 지난날들이 다 들어있는 것만 같았다. 그의 결정과 지금의 그가 있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대견스러우면서 대단해 보이기까지 했다.

본국보다 아무리 부자 나라이고, 삶의 질이 높은 나라라고 할지라도 가족과 친구 등 소중한 사람들 곁을 떠나 낯선 곳에서 홀로 선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고단한 길이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싸미와 만난 지 몇 시간이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마음의 친구가 된 느낌이었다.

조용한 사색을 즐기기에 빵점인 곳을 온 것인가 하고 잠시 반문했던 나는 ‘여행은 사람’이었던 지난날의 솔로 여행을 되짚어 보았다. 항상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인생을 배웠고 내게 삶의 영감을 줬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렇게 몰타에서의 첫날밤이 흘러갔다.

<위 글은 시민기자 작성 기사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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