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진의 리더십 읽기 -삼국지편⑫

세상이 복잡하다고 느낄 때 다시 꺼내어 보는 것이 역사다. 그것을 들여다보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보이고 앞으로 어찌 되어갈지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극이 인기를 끈다. 춘추전국시대와 삼국지 이야기는 그중 으뜸이다. 삼국지는 망해가는 한나라가 배경이다. 난세에는 망하게 하는 인물과 세상을 구하는 스타가 함께 등장한다. 조조 유비 손권은 최후의 승자이고, 초기에 두각을 나타낸 대권주자들은 따로 있다. 그들은 모두 대권 경쟁에서 실패하고 사라졌다. 원소, 원술, 공손찬, 유표, 여포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배경이나 세력 능력 어느 것 하나 뒤지지 않고 도리어 더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왜 승자가 되지 못하고 무너졌을까? 역사의 패자들을 살펴보면 엄격한 경쟁 속에서 실패의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삼국지에서 가장 뛰어난 책사는 누구일까? 제갈공명?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런데 제갈공명의 촉나라는 가장 먼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에 비해 위나라는 삼국을 통일해 역사의 승자가 되었다. 그 승리의 기틀을 형성하는데 공헌한 순욱을 최고의 참모요 보조자라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그는 활동하기 훨씬 전부터 왕좌지재(王佐至材)라고 소문난 인재였다. 외척과 내시의 세력에 밀려난 호족 세력들은 자신을 청류파, 외척과 내시들을 탁류파라 불렀다. 그리고 천하 제패를 할 만한 인물의 참모가 되려고 찾아다녔다. 

원소도 호족 세력의 배경을 가지고 있었고, 젊은 시절 사회적 이슈가 될 물의도 일으켰던 청류파의 일원이었다. 반면 조조는 할아버지가 뇌물로 태감 벼슬을 사서 지위를 획득한 탁류의 배경을 가지면서도 청류파와 비슷하게 생각하며 어울린 면모가 있다.

순욱은 청류파적 유사성 때문인지 주군 후보로 원소를 생각한 것 같다. 동탁 제거를 명분으로 세력을 형성하는 원소에 대해 긍정적이던 세평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순욱의 방문에 원소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당시 영웅들 간의 다툼은 인재와 병력과 물자의 경쟁이다. 순욱의 영입으로 더 많은 청류파 인재 영입이 가능해지니 더할 나위 없었다. 

그러나 순욱은 오래 걸리지 않아 원소의 한계를 파악하고 발길을 돌려 조조를 향한다. 조조는 순욱을 맞으며 ‘나의 장자방’이라며 좋아했다고 한다. 조조가 장자방이라고 부른 인재는 순욱이 거의 유일하다.

순욱은 전쟁에 대해서는 전략 제시, 후방에 있어서는 내정 관리와 군수 지원 모두를 해낸다.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공헌한 장량과 소하 둘 몫을 한 셈이다. 조조도 중요한 일은 모두 순욱과 의논했다. 순욱의 핵심적인 공헌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인재가 모여드는 구심점이 되었다. 당시 유교적 소양을 갖춘 엘리트 집단은 대부분 지방 명문가 출신이었다. 그들을 모으면 지지기반이 자연히 전국으로 넓어진다. 황제를 모셔서 천하의 중심이 된 이점도 컸다. 

참모 중 순유, 곽가, 사마의 등이 순욱을 통해서 영입되었다. 순욱을 구심점으로 청류파 인재들이 모임으로써 조조의 위나라는 성장 발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을 더 넓힐 수 있었다. 

조조의 위나라 인재풀은 유비의 촉나라나 손권의 오나라에 비해 수와 양 모두 월등했다. 삼국 쟁패의 경쟁에서 선두를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핵심 전략을 제시하고 정신적으로 뒷받침했다. 조조의 초기 순욱은 허창을 세력의 근거지로 삼고 기초를 튼튼히 하여 세력을 키우라고 제안한다. 그리고 모든 영웅이 무시하던 황제(천자)를 받아들이도록 제안해서 제후들보다 한 단계 높은 대의명분과 위치를 확보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다섯 배가량 큰 원소의 세력에 맞서 싸운 관도대전에서 끝까지 버티라고 조조를 격려한다. 이때 제시한 원소가 패배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조조가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조조에게 커다란 정신적인 자신감을 주었다(드라마에 따라 양수, 곽가, 정욱 등이라고도 한다). 결국 조조는 관도대전에서 이기고 원소를 제거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원톱의 위치를 굳힌다.

셋째는, 최고의 보좌를 했다. 순욱은 조조의 심중을 가장 정확히 파악했다. 신하들이 조조의 심중을 아리송해할 때 순욱이 깨우쳐주는 장면이 여러 곳에서 보인다. 

특히 관도대전에서 상당히 불리한 조건이라 자신감을 잃고 후퇴할 뜻을 보일 때 조조의 심중을 정확히 읽고 마음의 불안감을 일소해서 자신감을 회복하도록 보좌한다. 

또 순욱은 조조와 신하 간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도 했다. 관도대전 당시 원소의 참모였던 허유가 조조에 귀순하면서 결정적 약점을 알려준다. 이를 공략한 조조는 관도대전을 역전승으로 이끈다. 그런데 그 후 허유는 오만방자한 행태를 벌였다. 결국 이를 참지 못한 허저는 그를 죽이고 만다. 그 일로 허저는 처벌받고 크게 서운해했다. 그러자 순욱은 조조의 진심을 알려주며 허저를 다독이는 역할을 했다. 

이처럼 순욱은 조조와 신하 간 거중 균형 역할을 하고 적절한 행동을 이끌며 보좌한다. 그러한 순욱에 대해 조조는 ‘내게 이런 부하가 있는데 무엇이 두렵겠는가’라며 심기일전한다. 좋은 보좌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다.

환상적인 호흡으로 큰 성공을 만든 조조와 순욱의 관계는 한순간 삐거덕거리기 시작한다. 관도대전에서 최강자 원소를 꺾고 지방 제후들이 거의 다 제압되자 조정 신하들은 조조의 작호를 국공(國公)으로 높이고 구석(九錫)을 수여하자는 상소를 준비한다. 그러면서 순욱에게 의견을 물었다.

순욱은 반대하지는 않았으나 구석에 대해서는 생각이 조금 달랐던 것 같다. 구석이란 공이 많은 신하에게 내리는 아홉 가지 물건을 말하는 데 이것은 실질적으로 황제가 자리를 위양할 뜻이 있다는 뜻을 나타낸다. 조정의 신하들이 조조에게 아부하려고 황제를 압박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순욱은 ‘승상(조조)은 천자를 위한 충성심으로 지금까지 일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군자의 태도다. 지나친 일은 삼가는 게 좋겠다’라고 조언했다. 

그런데 그 말을 전해 들은 조조는 ‘마음이 평온치 않다’라고 반응한다. 참모의 말에 마음이 평온치 않다? 지금까지 순욱은 없어서는 안 될 참모였다. 그런데 이제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된 것일까. 그 후 순욱은 점차 정권의 중심부에서 밀려나게 된다. (계속)

저작권자 © 1코노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