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미리캔버스/디자인=안지호 기자
사진=미리캔버스/디자인=안지호 기자

 

# 혼자 사는 지적장애인 A씨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다. 일찌감치 독립한 A씨 돈 관리는 친누나해온 탓에 제대로 된 통장 조차 없다. 작은 누나는  A씨 이름으로 카드 발급, 휴대전화 개통, 대출까지 받고서 연체금을 내지 않았다. 결국 피해는 A 씨가 떠안았고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다. 

#지적장애인 B씨는 큰아버지 채소농장에서 일한다.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포장 업무를 맡았다. 하루 12시간에 가까운 노동을 하지만 그의 손에 쥐어지는 급여는 한 달에 10만 원 남짓한 돈이 전부다.

#뇌병변장애인 C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배달되는 장애인 시설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났다. 거동조차 힘든 C씨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활 조차 힘든 상황이다. 근처에 있는 이모가 보호자로 등록돼 돌봐주고 있지만 찾아오는 횟수가 갈수록 줄어들었다. 관할 보호시설에서는 유기 및 방임으로 보고 이모를 신고한 상태다. 

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1인 가구 지적 장애인 10명 중 1.4명꼴로 학대를 받은 정황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상남도와 경남도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공동으로 실시한 '2021년도 장애인 인권 침해 예방을 위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경상남도 1인 발달·뇌병변장애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 학대 의심 사례가 71건 확인됐다. 장애인 1인 가구는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리기도 어려워 '인권침해 사각지대'라는 우려가 나온다.

경남도와 경남도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진행한 이번 조사는 인권침해에 대해 자기옹호가 어려울 수 있는 도내 거주 발달·뇌병변장애인 1인 가구 498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조사는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공무원과 실태조사원이 장애인 가구를 방문해 인권 침해 여부를 살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학대 의심 장애인 71명에 대한 학대 유형(중복 포함)을 보면 경제적 학대가 69%(49건)로 가장 높은 비율이었고, 다음으로 유기 및 방임 29.6%(21건), 정서적 학대 26.8%(19건), 신체적 학대 9.9%(7건), 성적 학대 2.8%(2건)였다. 장애인 1명이 정서, 경제, 신체적 학대를 동시에 당한 사례도 있다. 

문제는 대부분 가까운 관계에서 학대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학대를 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해자는 부모·형제·자매 외 친척이 25.9%(14건)로 가장 높은 비율이었다. 다음으로 형제·자매와 이웃이 각각 18.5%(10건), 동거인(연인, 전 연인 포함) 11.1%(6건) 순이었다. 

이번 조사에서 경제적 학대가 다양한 형태로 발달·뇌병변장애인 일상을 위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장을 직접 관리하기 어려운 발달·뇌병변장애인들을 이용해 기초급여 등 각종 지원비를 가로채거나 명의를 도용해 휴대전화 개통, 대출 실행 등 장애인 당사자도 모르게 빚이 생긴 사례도 드러났다. 

1인 가구 특성상 함께 거주하지 않는 가족이나 물리적으로 가까운 지인이 금전을 관리하는 경우가 많아 당사자가 돈이 필요할 때 바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나타났다. 

1인 발달·뇌병변장애인 가구 80.1%(399명)가 기초생활보장수급자임을 미뤄 봤을 때 경제적 학대는 이들에게 더 치명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1인 가구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송정문 경남도장애인권익옹호기관장은 "발달·뇌병변장애인은 장애인 중에도 가장 취약한 이들"이라며 "이들에게 가야 할 장애 급여 등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특히 혼자 사는 장애인들은 마땅한 법적 보호자도 없어서 피해를 인지하기도 어렵다"며 "장애인 급여 관리 실태 주기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남도 관계자는 "장애인권 사각지대와 차별의 선제적 발굴·해소를 위해 권익옹호기관과 공동으로 매년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라며 "일반적인 장애인들의 생활도 결코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지만 1인 가구 지적 장애인은 누군가 돌봐주고 보호하지 않을 경우 독자적·자립적 생활을 하는 게 더 어렵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서 조사가 끝나면 지자체와 협력해 피해 장애인 구제 등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상남도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장애인 학대 등 인권침해 피해 장애인을 지원하고자 2017년 9월부터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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