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진의 리더십 읽기 -삼국지편⑭

세상이 복잡하다고 느낄 때 다시 꺼내어 보는 것이 역사다. 그것을 들여다보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보이고 앞으로 어찌 되어갈지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극이 인기를 끈다. 춘추전국시대와 삼국지 이야기는 그중 으뜸이다. 삼국지는 망해가는 한나라가 배경이다. 난세에는 망하게 하는 인물과 세상을 구하는 스타가 함께 등장한다. 조조 유비 손권은 최후의 승자이고, 초기에 두각을 나타낸 대권주자들은 따로 있다. 그들은 모두 대권 경쟁에서 실패하고 사라졌다. 원소, 원술, 공손찬, 유표, 여포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배경이나 세력 능력 어느 것 하나 뒤지지 않고 도리어 더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왜 승자가 되지 못하고 무너졌을까? 역사의 패자들을 살펴보면 엄격한 경쟁 속에서 실패의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역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완벽한 교과서다. 배울 것이 차고 넘친다. 삼국지도 그렇다. 젊을 때는 수호지를 읽지 말고 나이 들어서는 삼국지를 읽지 말라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삼국지에는 권력을 향한 갖가지 권모와 술수를 휘두르는 비정한 사람의 모습이 있다. 그런 권모술수를 휘두르는 비정한 사람들을 영웅이라고 보고 그런 것을 짜내는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이라 보는 시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스케일이 크다. 넓은 지역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사건의 규모가 거대하다. 영화 적벽대전만 봐도 전투 장면이 엄청나다. 병사가 개미처럼 몰려나오며 엉키고 화면을 메우다가 충돌하고 폭발하다 시체가 넘치는 벌판을 남기고 마무리된다. 희생된 생명 모두 우주만큼 소중한 사람일 텐데 화면에는 단지 걸출한 영웅의 위대(?)한 욕망을 위한 소모품에 불과하게 보인다니 전율이 흐른다. 중국의 고대 전쟁뿐인가. 알렉산더와 나폴레옹, 히틀러, 스탈린, 모택동 등 거창한 명분을 걸고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 모두 인류를 야망의 제단에 제물로 바친 사람들 아니겠는가.

권력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본능이다. 두 아들을 예수님의 보좌 양옆에 앉혀 달라고 부탁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도 더 높은 지위를 갈구하는 인간의 권력 욕망을 보여준다. 

삼국지에서 권력을 쟁취하는 방법과 과정은 너무나 다양하다. 십상시는 왕을 등에 업고 중간에서 권력을 독점한다. 유포의 부인 채 씨는 남편을 독살해서, 승냥이 여포는 양아버지를 죽여서 권력의 실마리를 잡으려 했다. 조조만 봐도 권력 추구가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 생각하게 하며, 그러면서도 정당한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한다. 출세나 성공을 위한 전략 전술로 배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타인을 희생시켜 쟁취한 부나 명예, 지배권력이라면 과연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일까 한 번쯤 깊이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삼국지의 인물들 모두 한 권의 책이다. 그들의 능력과 노력, 태도, 영웅이 되는 과정과 상황, 결과를 보며 여러 가지 교훈을 얻는다. 카타르시스도 있다. 무협 소설을 읽을 때 처럼 말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아마도 슈퍼스타 ‘관우’일 것이다. 2m가 넘는 키와 강한 느낌을 주는 붉은 얼굴, 미염공이라는 칭호를 얻게 한 긴 수염과 힘센 장수들도 들기 힘든 청룡도, 평생 전승 무패 1무(황충과의 대결)의 무예 실력, 십만 대군을 대적하는 용맹, 도원결의를 지키기 위해 조조의 극진한 대우와 유혹을 물리치는 충의와 강직함, 책을 가까이하고 역사에 밝고 서당 훈장을 했을 만큼의 학식 등 관우의 면면은 누구보다 뛰어나고 매력적이다.

그는 매우 자부심이 큰 사람이었던 것 같다. 촉한의 5호 대장군 중 수석인 전장군으로 임명되었을 때 노장인 황충이 후장군(서열 5위)으로 임명되자 “내가 그렇게 늙어빠진 노인과 같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니 용납하지 못하겠다”라고 반응하고, 귀순해 온 마초가 5호 장군으로 임명되자 그에게 결투를 신청한 것에서 엿볼 수 있다. 자신은 격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또한 그는 유비를 중심으로 추구하는 ‘한 제국 부흥’이라는 대의명분에 대해 높은 긍지를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두 살 아래인 유비에게 한 왕실의 후예라는 이유로 선뜻 형의 자리를 양보하고 끝까지 충성하는 모습에서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강한 자부심과 자신이 최고임을 자부하는 자신감은 때로 오만하고 배타적이며 다른 사람을 낮춰 보고 무시하게 만들기도 한다. 자식들을 결혼시키자고 제안하는 손권에게 ‘호랑이 딸을 개에게 보낼 수 없다’라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물론 손권의 제안에 전략적인 속셈이 있었겠으나 외국의 왕의 제안에 일국의 최고 장군이 그리 반응하는 것은 잘못이다. 외교적인 사안에 대해 자신의 관념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라 부적절하고 촉나라 최고 장군의 행동에 맞지 않은 것이다. 관우의 독화살을 제거하는 수술을 했던 명의 화타가 “장군의 화살에 의한 상처는 치료했으나 마음의 오만함은 치료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던 것은 관우의 마음이 자부심을 넘어 오만과 교만의 경지에 있음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느껴진다.

실제로 관우의 자만과 오만은 오나라의 여몽과 육손에 대한 과소평가와 상황에 대한 잘못된 판단으로 이어진다. 그들의 후방 침략 가능성을 작게 보고 무명인 육손을 무시해 파악하려고 하지 않는다. 결국 전투의 이면에서 진행된 위-오 두 나라의 전략적 연합 움직임을 감도 잡지 못하고 패배했으며 자신도 죽음을 맞는다. 경적필패. 자신에 대한 자만과 위험 과소평가, 상대방 평가절하가 동시에 작용한 결과였다. 삼국지 정사의 편저자인 진수는 “강직하나 자존심이 강하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 패를 부른 것은 당연하다”고 관우를 평했다.

관우는 뛰어난 능력과 강점을 가진 촉한의 최고의 측근이다. 제갈공명도 그를 경쟁자로 여기고 신경 쓰는듯한 장면이 곳곳에 보인다. 그런 그가 촉한의 가장 중요한 전략 요충지요 삼국통일을 위한 교두보요 베이스캠프인 형주 지역을 잃으며 죽는다. 뒤를 이은 것은 촉한이 하락하는 현상들이었다. 관우에서 촉한의 멸망이 시작된 셈이다. 감탄과 부러움을 자아내는 영웅의 인간적인 약점으로 시작된 일이라 아쉬움이 더 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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