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선 일본 전문 칼럼니스트
정희선 일본 전문 칼럼니스트

일본에서 꽤 인기를 끌었으며 한국에서도 리메이크된 <파견의 품격>이라는 제목의 일본 드라마가 있다. 능력이 뛰어난 파견사원의 활약상에 관한 스토리로 드라마를 보다보면 파견사원 제도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게 된다. 파견사원이란 파견회사에 소속된 직원이 일정 기간 다른 회사로 파견되어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제도이다. 1992년 거품 경제가 붕괴되며 일본 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지게 되자 많은 기업이 비용 절감의 일환으로 비정규직인 파견근무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드라마에서는 정직원과 차별된 대우를 받는 파견직의 모습 등 파견사원제도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파견제도를 잘 활용하면 고령화와 일손 부족이라는 일본 사회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최근 기업이나 지자체가 고령자들을 파견사원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정년 퇴직을 한 시니어 세대는 지식과 경험이 풍부해 현역 세대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노동력을 보충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퇴직 후에도 파견사원으로서 활발하게 일하는 고령자의 사례를 먼저 살펴보자. 일본경제신문에 소개된 아오모리현 출신, 66세의 기무라씨는 금융업계를 퇴직한 후 근무처였던 도쿄에서 고향인 아오모리로 돌아와 인재파견 대기업인 ‘스태프 서비스 홀딩스’의 파견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기무라씨는 창고, 양계장, 백신 접종장 등 다양한 업종으로 파견되어 일을 했다. 기무라씨는 "건강한 동안 사회와 연결되며 계속 일하고 싶다. 70세까지 일하고 싶다"며 일을 지속하는 것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인다. 비록 정규직은 아니며 파견 업무가 몇 개월 단위로 바뀌는 경우도 흔하지만 도리어 자신의 건강 상태나 일정에 맞추어 일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는다. 

백신 접종장에서 일할 때는 낯선 방문객을 정확하게 안내할 필요가 있었는데 기무라씨가 현역에서 길러온 스킬을 살릴 수 있었다. 현역 시절 채권회수를 담당하였던 기무라씨는 다양한 입장의 사람과 접촉하며 일을 해 왔기 때문에 대인 관계 스킬을 기를 수 있었고 이를 퇴직 후 파견으로 일할 때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기무라씨가 소속된 '스태프 서비스 홀딩스'의 60~70대 파견 취업자수는 2022년 5월 기준, 324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40% 증가했으며 코로나 확산 전인 2019년 5월과 비교하면 60% 늘어났다.  시간이나 장소 등 본인이 희망하는 방식에 맞추어 일할 수 있으므로 파견업무에 응모하는 시니어들도 늘고 있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사무직이나 IT업무 등의 증가가 눈에 띈다. 최근에는 공장이 자동화되고 업무 보조 시스템이 갖추어지면서 육체적으로 힘들 것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제조업이나 간병 현장에서 활약하는 시니어들도 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저출산 및 고령화, 인구감소로 인해 만성적인 일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따라서 대학 졸업자나 경력직 중에서 인재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아지면서 정규직으로 채용이 힘든 직군을 고령자 파견사원으로 대체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인재채용기업인 파소나 그룹은 2019년부터 65세 신입사원을 고용하는 '엘더 샤인 제도 (엘더elder는 고령자를 의미하며 샤인Shine은 빛난다는 의미. '사원'(社員)’을 뜻하는 일본어와 같은 발음이기도 함)'를 시작, 지금까지 약 100명을 채용하여 파견했다. 파소나 그룹은 코로나 19 확산 후 중단하였던 60대 고령자의 고용을 2022년도부터 재개하였다. 특히 이번에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DX) 관련 분야에도 고령자를 모집할 계획이다. DX 업무를 경험해 본 관리자 혹은 데이터 분석을 담당한 시스템 엔지니어 등 IT업계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고령 사원을 모집하여 파견할 계획이다.  

하지만 고령자를 파견직으로 활용함에는 과제도 있다. 정년 퇴직 후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일하고 싶어하는 고령자는 많지만 파견사원은 임금이 오르지 않는다. 파솔 종합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고령자가 재고용된 경우 연수입이 평균 44.3% 감소한다. 본래 정규직으로 고용할 정도의 업무 역량을 가진 고령자를 파견이라는 형식으로 받아들이면 맡길 수 있는 업무도 제한되는 등 기업에도 단점이 있다. 

고령자에게는 건강 관리도 중요한 숙제이다. 이 곳에서 비즈니스 찬스를 찾는 기업도 있다. 일본의 채용 에이전시인 '리쿠르트'는 2017년부터 시니어의 사고력이나 체력을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고령자의 건강 상태나 업무 관련 능력을 데이터로 수치화해 고용주 기업과 고령자 양측에 제공하여 적절한 일에 배치되도록 돕는다. 기억력 판정이나 성격 진단도 가능해 2021년까지 약 60개 기업과 지자체를 대상으로 측정회를 열었다. 기업 측에서도 고령 인재와의 업무 매칭이 쉬워졌다는 긍정적인 의견을 밝힌다. 

총무성의 노동력 조사에 의하면 2022년 5월 기준, 65세 이상의 파견 사원수는 14만명으로 5년전에 비해 40% 증가했다. 내각부가 발간한 <고령사회백서 (2021년판)>에서는 2020년 노동력 인구 중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13.4%로 10년전보다 4.6% 포인트 증가하였다. 2021년 4월 시행된 '고연령자 고용안정법'에서는 기업은 종업원이 원할 경우 70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듯 일본에서는 고령자들이 퇴직 후에도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금씩 정비되고 있다. 일손 부족으로 고민 중인 기업들의 숨통을 트이게해줄 뿐만 아니라 고령자들은 은퇴 후에도 사회와 연결되어 일함으로써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된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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