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chy Head 절벽 아래로 넓게 펼쳐진 수평선./ 사진=신락균 
Beachy Head 절벽 아래로 넓게 펼쳐진 수평선./ 사진=신락균 

 

혼자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삶에 있어 많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 나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1인 가구 수는 급증하지만 아직까지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서비스는 부족하다. 그래서 1인 가구가 1인 가구에 관심을 갖고 공감과 연대감을 이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1코노미뉴스]는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맞춰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에 나가 있는 '1인 가구의 삶'을 날것 그대로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영국 1인 가구 신락균= 유난히 춥고 어두웠던, 마치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영국의 겨울도 서서히 누그러져간다. 영국도 24절기가 적용되는 것일까. 2월 4일 입춘을 기점으로 런던도 날씨가 많이 푸근해졌다.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긴 해도 점심에 구름 사이로 해가 내리쬐면 두꺼운 겉옷은 잠시 벗고 돌아다녀도 크게 춥지 않다. 해가 나는 날도 많아졌다. 공원에는 마치 해가 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햇볕을 즐기고 수다를 떤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런던 시내에도 여행객이 더 많아졌다. 필자도 주말을 맞아 오랜만에 좋은 사람들과 같이 1박 2일로 근교 여행을 다녀왔다. 오늘은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런던 근교의 도시 한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가 주말에 근무하는 한글학교의 교장선생님께서는 입춘과 대보름을 맞아 교사들을 당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주말에 학교가 끝나면 항상 그날 하루가 어땠는지 선생님들끼리 회의를 하는데 선생님들의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 이런 날들이 계속되자 교장선생님께서는 아예 하루 날 잡고 한곳에 모여 다 같이 많은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교사 MT를 예전부터 추진했지만 선생님들 각자 일정이 있고 가정이 있어서 시간을 맞추기 매우 힘들었다. 그런데 이번 정월 대보름을 맞아 교장선생님께서 당신의 집으로 선생님들을 초대하셨고 모두 9명이 모였다. 그렇게 우리의 목적지는 교장선생님댁이 있는 런던에서 약 1시간 40분 정도 떨어진 작은 도시 '이스트본(Eastbourne)'으로 결정됐다. 토요일 저녁에 학교를 마치고 다 같이 이스트본으로 이동했다.

응접실에 놓인 벽난로./ 사진=신락균 
응접실에 놓인 벽난로./ 사진=신락균 

 

영국 동남부에 위치한 해안 도시인 이스트본은 도시 자체가 작기도 하거니와 주로 은퇴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라 한국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도시는 아니다. 그러나 이스트본은 들어보지 못했을지라도 세븐 시스터즈(Seven Sisters)는 들어 봤을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하얀 절벽으로 유명한 영국 남부에 위치한 곳이 바로 이스트본이다. 위치상으로는 해이스팅스(Hastings)와 브라이튼(Brighton)의 중간쯤이다.

이스트본의 교장선생님댁은 19세기에 지어진 오래된 3층짜리 집인데 3층에서는 저 멀리 바닷가가 보이고 응접실에 벽난로가 있는 곳으로 오션뷰와 옛날 빅토리아 시대의 주거양식을 즐길 수 있는 집이다. 20세기 들어 현대식 난방이 도입된 이후 점차 많은 가정의 벽난로 사용이 줄어들고 그 결과 벽난로를 막아 놓은 경우가 많았는데 이 집은 그러지 않는 대신 벽난로를 보존하고 있었다. 벽난로를 보신 체육 선생님께서는 능숙한 솜씨로 벽난로에 불을 피워주셨다. 그리고 필자를 비롯한 동료 선생님은 감자와 고구마를 쿠킹 호일에 싸서 장작 밑에 놓았다. 안줏거리 준비를 마친 우리는 모두 응접실에 모였다. 커다란 응접실이지만 아홉 명이 한 곳에 모이니 꽉 찼다. 우리는 같이 이야기하고 같이 들어주고 같이 노래도 듣고 같이 호일에 구워진 감자와 고구마도 먹었다. 사람들과 일이 아닌 무언가를 같이 하는 경험은 영국에 유학을 온 이후 정말 오랜만이었고 여행을 같이 온 것은 거의 처음이라고 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개인적으로 재밌었던 부분은 이번에 이스트본 여행을 같이 간 선생님 중에 영국인 보조교사도 있었다는 점인데, 다수가 한국인이었지만 보조교사 선생님을 위해 가끔 우리의 언어는 영어와 한국어를 오가곤 했고 심지어는 한국인끼리 어설픈 영어로 소통하는 한국에서는 보기 매우 힘든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는 한국어든 영어든 언어의 종류와 관계없이 새벽이 되도록 마시고 먹으며 다 같이 수다를 떨었다.

다음날 오전 느즈막이 일어난 우리는 바다가 보이는 해안가 레스토랑에 가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소화도 할 겸 해안가를 잠시 걷고 나서 차를 타고 Beachy Head라는 절벽으로 이동했다. 날이 좋을 때 Beachy Head에 올라가면 해안가를 따라 쭉 늘어진 하얀 절벽 해안을 볼 수 있다. 절벽 위라서 바람이 많이 불긴했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초원과 거센 바람에 구부러진 나무, 새하얀 절벽과 그 앞에 펼쳐진 수평선은 렌즈에 담을 수 없이 넓고 아름다웠다. 

아침을 반겨주는 고양이./ 사진=신락균
아침을 반겨주는 고양이./ 사진=신락균

 

마지막 일정으로 대보름 맞이 오곡밥과 정성스레 무쳐 주신 나물을 먹고 런던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토요일 오후 늦게 이동해서 물리적으로 머물렀던 시간이 짧았던 것도 있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해서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간 것 같아서 이번 1박 2일 여행이 너무나도 짧게 느껴진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2박 3일 일정으로 여유롭게 움직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홀로 살이가 익숙해진 시점에서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여행하면서 많이 웃고 많은 힘을 얻게 됐다. 런던에 혼자 살고 있는데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근교로 여행을 갈 생각이 있다면 런던 남쪽에 유명한 관광지인 브라이튼, 본머스, 포츠머스 같은 도시들도 좋지만 작은 마을 이스트본에도 한 번 방문해 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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