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든마켓 앞 사람들./ 사진=신락균 
캠든마켓 앞 사람들./ 사진=신락균 

혼자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삶에 있어 많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 나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1인 가구 수는 급증하지만 아직까지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서비스는 부족하다. 그래서 1인 가구가 1인 가구에 관심을 갖고 공감과 연대감을 이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1코노미뉴스]는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맞춰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에 나가 있는 '1인 가구의 삶'을 날것 그대로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오래전부터 필자는 영어 공부를 위해 언어 교환 플랫폼을 이용해 영어권 국가의 친구들과 영상 통화를 하곤 했다. 약 3년 전에 언어 교환 플랫폼을 통해 영국 런던에 사는 Priscillia(한국 이름 지선)라는 친구를 알게 됐다. 어렸을 때부터 일본, 한국, 중국 등 동아시아 문화에 관심을 갖고 2000년대 중반부터 애니메이션, 드라마, 노래 등을 접해온 친구였는데 한국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면 필자보다 아는 게 더 많을 정도로 찐팬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1-2주에 한 번씩 영상통화를 통해 영어와 한국어를 서로 가르쳐 주고 그 과정에서 이야기도 많이 하면서 우정도 쌓았다.

필자가 햇수로는 2년 전에 런던에 유학을 오면서 런던에 사는 그와 몇 번 만나서 런던 시내로 나들이를 가거나 동네에서 만나 수다를 떨곤 했다. 이번에 시간이 맞아서 지선과 그녀의 친구 다니엘과 런던 북쪽의 캠든 타운에 놀러 가기로 했다. 지선의 경우 런던 남쪽에 살기도 하고 대학교를 잉글랜드 북부에서 나와서 런던에 살기는 하나 정작 런던 시내는 별로 갈 일이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캠든 타운을 방문했던 게 거의 20년 전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 오랜만에 방문해 동네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보고 싶다고 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캠든은 1980년대 영국 펑크 문화의 중심지이자 패션을 선도하는 곳이라고 했다. 물론 지금은 패션의 중심이 소호(Soho)로 옮겨 오긴 했지만. 또한 지금은 런던 중심 레스터 스퀘어(Leicester Square)에 위치한 차이나타운이 원래는 캠든 타운에 있었다고도 알려줬다.

90년대 당시 매우 작았던 차이나타운이 원래는 캠든에 있었는데 중국인이 많이 유입되고 상권이 이동하는 등 이런저런 이유로 현재의 위치로 이동한 모양이었다. 지금 레스터 스퀘어에 있는 차이나타운은 대부분 음식점 위주이지만 90년대 당시 캠든에 있었던 차이나타운은 규모도 작고 다양한 매장이 있었다고 지선은 회상했다.

일요일 오전 11시에 캠든 타운 역 출구에서 만난 지선과 나 그리고 다니엘은 인사를 나누고 캠든 마켓이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장소만 다르지 사람의 숫자만 봤을 때 거의 서울 강남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캠든의 분위기는 강남과는 매우 달랐다. 펑크의 타운답게 펑크 느낌이 강렬했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그렇고 머리 스타일도 펑크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모호크 스타일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신기해서 사진을 찍으려고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었으나 그의 손에는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내야한다는 문구가 적혀있어서 조용히 폰을 내려놓고 눈으로만 감상을 하고 지나쳤다. 모호크 머리와 같이 개성 있는 머리를 한 사람들 말고도 캠든 타운은 다양하고 개성이 뚜렷한 상점들이 입점한 마켓이 많았다.

벽에 그려진 그래피티./ 사진=신락균 
벽에 그려진 그래피티./ 사진=신락균 

 

역에서 나와 북쪽으로 약 5분 정도만 걸으면 운하가 있는 좁은 강가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는데 그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꺾으면 커다란 마켓이 하나 있고, 오른쪽으로 꺾어도 마켓이 하나 있다. 마치 홍대나 동대문에 수많은 상점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처럼 캠든 마켓 역시 작은 상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빈티지 숍은 기본이고 터키, 이집트, 일본 등 다양한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운영하는 액세사리 숍,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작은 갤러리 등 셀 수 없는 상점들의 연속이었다. 아울러 길거리에는 그래피티라고 칭하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수준 높고 아름다운 작품들이 벽에 그려져 있었고 고개를 들면 상점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간판이 입체로 되어 있었으며, 아래를 내려다보면 횡단보도가 무지개 색깔로 칠해져 있어 성소수자들에게도 열려있는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공간임을 나타냈다.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런던은 참 좋은 곳 같다고 하니 지선의 친구인 다니엘은 한국은 어떤지 물었다. 필자는 짧게나마 서울과 런던의 차이 그리고 사람들의 차이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말해주었다. 간단히 말해 서울은 당연히 서양과는 다른 한국적인 요소가 많지만 다양성의 측면에서 봤을 때는 런던에 비해서 단조로운 면이 있고 런던만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니엘은 나아가 성소수자 문화가 어떠냐고 물었다. 다니엘은 여성이지만 여성 파트너가 있는 사람으로 한국의 게이 문화가 궁금해했다. 필자도 잘은 모르지만 런던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성소수자 문화는 아직까지는 수면 위로 잘 올라오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며 비록 서울을 중심으로 페스티벌과 퍼레이드가 있지만 그들이 온전한 존재로서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해줬다.

캠든타운 역 앞 거리./ 사진=신락균 
캠든타운 역 앞 거리./ 사진=신락균 

 

강가 건너에 자리 잡은 캠든 마켓은 마치 개미굴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상에도 지하에도 마켓이 있었고 사방으로 좁은 길이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새로운 공간이 나와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

그렇게 약 2시간 정도를 미로와도 같은 마켓을 돌아다니고 난 우리는 출출해져 점심을 먹기로 했다. 마켓이 넓고 사람들도 많이 오는 공간이라 음식점의 선택지도 너무나도 많았다. 구글 맵을 통해 찾아보던 중 Korean Cowgirl이라는 음식점이 있고 때마침 가깝기도 해서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니 일본 애니메이션이 나오고 있었으며 소주와 치킨을 팔긴 했지만 그 외 제대로 된 한식 메뉴는 딱히 없었다. 전체적인 인테리어와 벽에 걸린 그림, 메뉴에 그려진 여성 캐릭터 역시 일본인 느낌이 강했다. 무엇보다도 그 여성의 귀걸이에는 욱일기가 그려져 있었고 눈썹 위에 새겨진 장조림이라는 글자는 거울에 비친 것처럼 뒤집혀 있는 것을 본 순간 우리는 식당에서 나와 옆에 있는 Lan Kwai Fong에 가서 홍콩식 딤섬과 볶음면을 먹었다.

나중에 일본 디저트 카페에서 맛차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야기했는데 지선은 Korean이라는 단어를 식당에서 쓰고 싶으면 한국에 대해 제대로 알고 문화를 가져와야지 대충 이름만 가져오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필자보다 더 성을 냈다. 그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나 개인적으로는 한국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여기저기서 한국 식당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으니 무지한 사람으로서는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서 그런지 그렇게 화가 나지는 않았다. 우리나라도 전후에 본격적으로 서양 문화를 들여오면서 이런저런 실수가 많았을 테니 말이다. 필자는 오히려 소주 한 병에 4만 원이나 하는 것을 보고 더 화가 났다.

다니엘, 지선과 찍은 사진./ 사진=신락균 
다니엘, 지선과 찍은 사진./ 사진=신락균 

 

해외에 살면서 한국과 한국 문화를 알리는 최전선에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바로 오늘처럼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그 친구의 질문을 받고 답을 하거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일을 마주했을 때다.

한국에서는 한국 문화 속에서 살기에 우리 예상을 벗어나는 사례가 거의 없다. 딱히 우리 문화를 공부해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해외에서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우리 문화를 스스로가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외부에서 질문이 들어왔을 때 제대로 설명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한국이 어디냐며 한국에 대해 관심조차 없었던 윗세대가 겪었던 상황보다는 확실히 행복한 상황이다. 그러나 오늘 친구들과의 나들이를 통해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우리 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갈수록 그 문화의 구성원인 우리의 책임도 늘어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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