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1코노미뉴스/디자인=안지호 기자
사진=1코노미뉴스/디자인=안지호 기자

"거기 청년, 여기 은행 어디 있는지 알아요? 여기 어디에 돈 뽑는 데가 있었는데, 도저히 못 찾겠네. 좀 찾아줘요."

서울 은평구 신사동 일대에서 마주친 진현옥(71, 여)씨의 말이다. 진씨는 주말에 손주들이 오면 줄 용돈을 뽑기 위해 집을 나섰다. 기억을 더듬어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있던 곳을 찾았지만, 그곳에는 다른 상점이 들어와 있었다. 어디 물어볼 곳도 없는 진씨는 20여분이나 주변을 맴돌며 ATM을 찾고 있었다. 

은행권의 디지털 전환 가속화에 당장 주변에 도움을 받을 곳이 없는 고령 1인 가구의 피해가 확산하고 있다. 은행권은 디지털 소외계층의 금융접근성 단절을 예방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노인층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난이 나온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총 18개 은행의 국내 점포수는 2021년 9월 말 6195개에서 지난해 9월 기준 5855개로 1년 사이에 340개나 감소했다. 

이에 따라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점포 수는 2998개로 줄었다. 

은행권은 온라인 거래를 통한 입출금, 자금 이체 서비스 이용 비중이 74.7%에 달하고 창구, ATM기 이용률은 각각 5.8%, 3.5%에 그치는 만큼 고정비용 감축을 위해 점포폐쇄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고령 1인 가구 등 디지털 약자다. 고령 1인 가구는 인터넷뱅킹은 고사하고 아직도 ATM기 사용조차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많다. 그런데 은행들이 점포에 이어 ATM기까지 급속도로 감축하면서 당장 현금을 뽑을 곳을 찾지 못해 낭패를 보는 일이 늘고 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4대 시중은행 ATM기 수는 1만7266개로 전년 말 대비 1191개나 줄었다. KB국민은행은 498개나 폐쇄했고, 신한은행도 330개, 우리은행은 320개 감축했다. 하나은행은 43개 줄였다.

은행권의 오프라인 지점 폐쇄는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일례로 오는 4월 폐점을 앞둔 경기도 김포의 한 은행 지점은 무려 5.8㎞ 떨어진 인근 지점과 통합됐다. 이 은행에서 현금을 찾던 고령층은 사실상 이용이 힘들어졌다. 

진현옥씨는 "어떻게 동네에 은행이 하나도 없냐"며 "우리 같은 노인들은 어디서 돈을 뽑아 쓰란 건지 모르겠다. 집에 둘 수도 없고, 갑갑하다"며 신세를 한탄했다. 

이어 거주지와 가까운 곳으로 거래 은행을 옮기는 것은 어떻겠냐는 말에는 "그런 거 복잡해서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 카드로 돈 찾는 것도 아직 어려워 하는 노인들 투성이다"고 토로했다.

고령 1인 가구 대부분은 진씨와 같은 불편을 겪고 있지만, 은행권은 지점 통폐합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4대 시중은행은 올 1~2월 52개 지점과 출장소 통폐합을 예고한 바 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은행권은 점포폐쇄는 불가피한 조치로 대신 디지털 소외계층의 현금접근성 해소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권 점포 폐쇄 공동절차에 따라 점포 통폐합을 진행하고 있고, 은행별 공동 점포나 ATM운영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우체국 창구에서 수수료 없이 계좌 입출금 업무가 가능한 상품도 늘리고 있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1코노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