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선 일본 전문 칼럼니스트
정희선 일본 전문 칼럼니스트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잡지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패션 잡지를 예상할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고령 여성 대상의 잡지가 일본에서 가장 잘 팔리고 있다. 게다가 그 잡지는 서점에서는 판매하지 않으며 정기구독으로만 받아 볼 수 있다. 

일본의 하루메쿠 (halmek)는 50세 이상의 고령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잡지이다. 평균 독자 연령은 65세, 매월 발행되는 하루메쿠의 연간 구독료는 6,960엔이다. 일본 ABC 협회에 의하면 하루메쿠는 2022년 상반기 (1월~6월) 44.2만 부를 판매, 코믹지를 제외한 잡지 전체 중 판매 부수 1위를 차지하였다. 2022년 12월호의 정기구독자수는 무려 50만 명을 넘어서는 저력을 보이고 있다. 

고령층을 타깃으로 하였고 서점에서 팔지 않는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렇게 잘 팔리는 잡지가 된 것일까. 게다가 잡지 시장이 축소하며 잡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 고령자를 타깃으로 한 잡지는 대체 어떻게 독자들을 사로잡은 것일까. 하루메쿠의 편집장이 전하는 비결을 들어보자. 

'시니어 잡지'가 아니라 '여성 잡지'

많은 사람이 '시니어 잡지'라고 하면 당연히 고령자를 타깃으로 콘텐츠 기획을 시작할 것이라 예상한다. 하지만 의외로 하루메쿠는 시니어 잡지가 아닌 여성 잡지로 포지셔닝을 하고 거기에서 50대 이상으로 타깃을 좁혀 가는 방식으로 콘텐츠를 기획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우선 편집위원 중에 시니어가 없다는 점, 그리고 시니어 잡지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한정하는 순간 기획의 폭이 좁아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시니어 잡지라면 '연금', '건강' 등과 같은 주제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여성 잡지라는 포지션에서 기획을 시작하면 헤어, 패션, 여행 등 다양한 테마를 떠올릴 수가 있고 그중에서 60대~70대 여성으로 타깃을 좁히는 것이다. 

하루메쿠에서 다룬 '포켓몬 고 (Pokémon GO)' 특집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시니어'를 타깃으로 기획을 시작하면 고령층 여성은  포켓몬 고에 관심이 없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포켓몬 고라는 키워드를 떠올리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지'라는 포지션에서 기획을 시작하면 포켓몬 고를 떠올릴 수 있게 되고 거기서 고령층의 니즈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자 포켓몬 고가 고령자들의 운동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아이디어로 발전하여 '고령 여성을 위한 포켓몬 고'라는 콘텐츠가 탄생하게 됐다.

데이터에 근거한 콘텐츠 기획

하루메쿠의 인기 비결 즉, 독자들이 읽고 싶은 콘텐츠를 만드는 비법은 바로 데이터에 근거한 콘텐츠 기획이다. 철저하게 독자의 니즈에 분석해 콘텐츠를 만드는데 이는 하루메쿠가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잡지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루메쿠의 독자들은 모두 정기 구독으로만 잡지를 보기 때문에 독자들의 거주지, 연령, 특성 등 고객 관련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일반적인 잡지는 콘텐츠 기획부터 잡지 발행까지 약 3개월이 걸리지만 하루메쿠는 무려 6개월 전부터 잡지의 기획을 시작한다. 우선 하루메쿠는 '이러한 기획 기사를 독자들은 궁금해할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우고 6개월간 조사를 한다. 20~50대로 구성된 하루메쿠의 편집단 12명은 매달 독자가 적어 보내는 월 2,000~3,000매의 엽서를 1매도 남기지 않고 다 읽는다고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불특정 다수의 시니어 여성이 아니라 '60세의 A씨', '65세의 B씨'라는 특정한 인물이 그려지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고객을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게 되면 이들에게 적합한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60~70대 여성들은 여행에 관심이 많을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웠다. 하지만 독자의 목소리를 꼼꼼히 읽다 보니 이런 의문이 든다. 

"과연 우리 잡지에서도 여행 특집 기사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 여행 관련 콘텐츠라면 구체적인 여행 플랜, 여행지 정보가 중요할 것인데 이 정보를 꼭 우리 잡지에서 얻어야 하나? 65세의 B씨는 이러한 콘텐츠를 하루메쿠에 기대하고 있을까" 

하루메쿠는 콘텐츠를 기획할 때 고객들이 '어떻게 내가 알고 싶은 것을 이렇게 꼭 짚었을까', '정말 하루메쿠를 읽어서 좋았다'라는 생각이 드는 기사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기준에 의해 여행 관련 기획 기사는 진행하지 않았다고. 

직접 만나 독자의 목소리를 듣다 

하루메쿠는 실제로 독자와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데 힘을 쏟는다. 연 200회 정도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실시하는데 이렇게 독자와의 만남을 중시하는 이유는 2가지이다. 

첫째, 모든 구독자가 잡지를 읽은 후 감상을 적은 엽서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엽서를 보내지 않는 독자와 만나 의견을 듣고 반영하여 다음 기획에 참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는 독자들의 니즈를 깊게 이해하기 위함이다. 독자들에게 '최근 관심사는 무엇인지, 무엇이 고민이지'라고 물으면 자기 머릿속에 있는 것밖에 대답을 못한다. 이에 하루메쿠는 고객들과 만나 심층적으로 질문하는 시간을 통해 독자들의 숨겨진 니즈를 발견한다. 

예를 들어 잡지들이 자주 다루는 콘텐츠 중 하나는 '정리 기술', '물건을 잘 버리는 법' 등과 같은 기획 기사이다. 하지만 정리 관련 콘텐츠가 수없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정리를 잘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루메쿠는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독자들을 실제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고객들이 '필요 없다고 느끼는 것','물건을 버리는 것' 이 두 단계 사이에 실제로 하나의 스텝이 더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버리는 결심을 하는 것'이다. 하루메쿠는 '버리는 결심'을 도와주는 기획 기사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고 '내게 필요 없는 물건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다루는 기사를 만들었다. 

하루메쿠의 데이터 조사는 판매 후에도 이어진다. 기사별로 독자들의 만족도, 관심도 등의 데이터를 연령별로 분류하여 수집한다. 특정 기사는 60대에게는 인기가 있었지만 70대에게는 만족도가 낮았다와 같은 이해가 가능한데 이는 하루메쿠는 정기 구독자 50만 명의 이름, 연령, 주소 등의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하루메쿠의 야마오카 편집장의 말을 전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에 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철저하게 독자들의 일상생활 속에 머무는 것이 우리의 경쟁력이다. 고령층이 원하는 정보를 정확히 짚어 보여줘야 그들의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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