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노인실태조사, 69.4% 연명의료 '거부'
"고령화 시대, 누구나 죽음 선택할 권리 필요"

 

사진=미리캔버스/디자인=안지호 기자
사진=미리캔버스/디자인=안지호 기자
한국 사회는 웰다잉 수요 증가에 반해 관련 문화 정착이 더딘 편이다. 웰다잉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이를 준비하는 것인데, 제도적 미비와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삶의 질은 높아지고 노인 인구 비율도 증가하는데, 생의 마지막 순간을 의미 있게 맞을 수 있는 '존엄사' 사각지대는 여전하다. 이에 [1코노미뉴스]는 1인 가구 시대, 존엄사 사각지대를 만드는 '연명의료결정제도' 현주소와 나아갈 방향을 다루고자 한다. -편집자 주

우리나라는 2018년 2월 4일, 연명의료결정제도를 시행했다. 시행 첫해에만 8만여명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했고, 5년이 지난 지금 168만6841명(28일 누적)이 연명의료에 참여했다. 그리고 이 중 27만3103명에 대한 연명의료중단등 결정이 이행됐다. 

연명의료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의학적 시술로서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을 말한다. 연명의료중단등 결정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 대해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기로 하는 결정이다.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이처럼 연명의료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홀로 거주하는 독거노인, 가족이 없거나 연락이 되지 않는 무연고자 등은 사각지대에 있다. 이들은 의학적으로 회생 가능성이 전혀 없는데도, 가족의 동의를 받지 못해 고통 속에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으며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다. 

전문가들도 이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1인 가구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홀로 거주하는 노인 단독가구 비중이 늘고 있어서다. 

표 = 국가연명의료관리기관
표 = 국가연명의료관리기관

통계청이 발표한 '2020~2050년 장래가구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 가구 수는 2021년 기준 716만5788가구로 전체 가구의 33.4%를 차지한다.  수는 계속 증가해 2050년에는 905만가구에 달할 전망이다. 전체 가구 대비 비중도 39.6%로 늘어, 10집 중 4집은 1인 가구인 시대가 온다. 

여기에 더해 고령화 속도도 가파르다. 우리나라는 2년 후 초고령사회(65세 이상 비율 20% 이상)에 진입한다. 올해 노인인구는 950만명, 비율은 18.4%다. 

가구 기준으로는 지난해 가구주 연령이 65세 이상인 고령자 가구는 519만5000가구로, 이 중 36.1%가 1인 가구로 집계됐다. 고령 1인 가구 비중은 2050년 49.8%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더불어 의료기술의 발달과 삶의 질 향상으로 기대수명은 물론 건강수명도 높아진 만큼, 웰다잉은 필수 불가결한 흐름이 됐다. 

이미 생의 마지막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요구는 크다. 

최근 서울시가 발표한 '2022년 서울시 노인실태조사'를 보면 생명 연장을 위한 의료행위 지속에 대해 응답자의 69.4%가 불필요한 행위라고 답했다. 이같은 의견은 고령 1인 가구가 일반가구보다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연령대로는 65~69세(71.4%)에서 연명의료에 부정적이었다.

표 = 서울시

앞서 통계청이 조사한 '2020년 노인실태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5.6%가 연명의료에 반대했다. 

스위스 안락사 지원 전문병원이 발표한 회원 통계도 충격적이다. 매년 200여명 환자가 찾는 이 병원 회원가입자 중 한국인이 117명이나 된다. 아시아 국가 중 최대다.

고령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현재의 연명의료결정제도를 유지할 경우 사각지대는 깊어지고, 법제도의 효용성은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배우자, 직계존비속이 없거나 연락이 끊긴 지 오래인 경우, 연명의료 관련 결정을 내릴 사람이 없어 그 피해만 누적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현행법은 상당히 제한적인 경우에만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서다. 현재는 사전의향서를 작성하지 않은 경우에는 이미 스스로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는 상태이므로 가족 전원의 합의가 있어야만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 가족의 합의가 이뤄지기 힘든 독거노인, 무연고자 등은 연명의료 중단이 불가능하다. 

이에 소극적인 안락사 수준인 연명의료결정제도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의사가 직접 개입하는 적극적인 안락사(조력존업사)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6월 조력존엄사법이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에도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연명의료 중단 결정의 사각지대를 줄이고자 환자가 의사표현을 할 수 없을 때 가족뿐만 아니라 대리인도 가능하도록 하는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 의원은 "현행법을 보면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결정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판단에 따르고 있다. 환자가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의학적 상태일 때에는 환자 가족의 진술을 통해 환자가 연명의료 중단 등을 원한다는 것이 확인된 경우 연명의료 중단 등에 대한 결정을 이행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적극적인 안락사 도입과 관련해 정부는 소극적이다. 지난 22일 복지부가 확정한 '제1차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2021~2023)'은 입원형 호스피스 전문기관 확대, 찾아가는 상담소 확대를 골자로 한다. 기존 제도 틀 안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을 넓히는 데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김형숙 순천향대 교수는 "중환자실에서 자신의 죽음이 다가왔는지도 모른 채 연명의료를 받다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며 "고령화 시대를 생각하면 죽음에 대해, 죽어가는 과정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누구나 연명의료에 대해 선택할 수 있도록 환경과 제도가 갖춰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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