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 전체 노인의 17.7% 불과

사진은 기사와 무관./사진=미리캔버스/디자인=안지호 기자
사진은 기사와 무관./사진=미리캔버스/디자인=안지호 기자
한국 사회는 웰다잉 수요 증가에 반해 관련 문화 정착이 더딘 편이다. 웰다잉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이를 준비하는 것인데, 제도적 미비와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삶의 질은 높아지고 노인 인구 비율도 증가하는데, 생의 마지막 순간을 의미 있게 맞을 수 있는 '존엄사' 사각지대는 여전하다. 이에 [1코노미뉴스]는 1인 가구 시대, 존엄사 사각지대를 만드는 '연명의료결정제도' 현주소와 나아갈 방향을 다루고자 한다. -편집자 주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1코노미뉴스]는 현재 홀로 거주하는 만 65세 이상 어르신에게 이 같은 질문을 던져봤다. 10명 중 9명은 '전혀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해 설명한 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전혀 몰랐다'는 9명 모두 연명치료 거부 의사를 밝혔다. 

고령 1인 가구 정순임(71, 가명)씨는 "건강하게 살다가, 조용히 떠나고 싶다. 병원에서 말고 지금 사는 집에서 갔으면 한다"며 "병원에서 멀리 있는 자식들 힘들게 하면서 있다가 가는 게 제일 안 좋은 거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고령 1인 가구 최철복(73, 가명)씨도 "복잡한 건 모르겠고, 나는 병원비도 없고 오래 누워 있고 싶지 않다. 내 죽는 것도 마음대로 못 하냐"고 반문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는 김동준(69, 가명)씨는 "암 검진 갔다가, 출구에 광고판이 있어서 작성했다. 호스피스 선택도 물어보고 해서 난감하긴 했는데 그냥 넘어가도 되더라"며 "지갑에 등록카드 넣고 다닌다. 자식들 짐 되기 싫어서 했는데 잘한 것 같다"고 전했다.

앞서 서울시가 발표한 '2022년 서울시 노인실태조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응답자의 약 70%는 '고령이고 질병 기간이 오래됐다면 연명치료는 불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처럼 연명의료결정제도에 대한 국민적 수요는 확실하다. 그런데 지난 5년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는 168만명에 불과하다. 국내 노인인구만 950만명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낮은 수치다. 

연명의료결정제도에 대한 국민 인식 개선과 홍보부족이 여실히 드러난다. 

정부 역시 이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사를 노인일자리사업과 연계해 일자리 창출과 상담인력 확충 '두 마리 토끼'를 노린다는 계획이다. 다만 즉각적인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 올해 계획 인력은 단 297명이다. 이와 별도로 거동이 불편하거나 단체교육을 통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에 대응할 수 있도록, '찾아가는 상담소'도 적극 육성하기로 했다.

현행 연명의료결정제도가 갖는 한계도 분명하다. 1인 가구와 무연고자를 품지 못해서다. 의료현장에서조차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 이행 시점을 판단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일례로 응급실에 실려 온 무연고자가 패혈성 쇼크, 급성신부전 등으로 치료를 받다가 증상이 악화됐다. 담당의사는 환자가 의식이 명료하고 충분히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해 본인에게 직접 설명한 후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했다. 이후 환자 의식이 악화됐고, 여전히 중환자실에서 혈액투석치료를 받고 있다.임종과정의 기간만 연장하며 가족을 찾고 있지만, 무연고자라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의료진은 연명의료계획서에 따라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을 이행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지만, 쉽게 결단하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사례로는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입원한 노인을 검사한 결과 세균성 뇌수막염, 다발성 뇌경색이 확인됐다. 환자는 동거 중인 보호자는 있었지만, 가족관계증명서에 혈연관계자가 없었다. 환자는 사전연명의향서를 작성하지 않은 상태이며 혼수상태다. 보호자는 의료진에게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연명의료결정법상 가족관계를 증명할 수 없는 관계인은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사진=미리캔버스/디자인=안지호 기자
사진은 기사와 무관./사진=미리캔버스/디자인=안지호 기자

우리나라는 성년후견인제도조차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어, 연명치료 중단에 있어 대리인의 역할을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정치권에서도 연명의료제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제도적 개선 노력을 이어가고는 있다. 지난해 6월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일명 '조력존엄사법안'(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대표적이다. 

올해에는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리인도 연명치료 중단이 가능하도록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기 힘들어 보인다.

지정대리인 제도 확대에 대해 관계 부처 및 단체 의견이 대체로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무연고자에 대한 대리인 제도 도입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반응이다. 대한병원협회도 법리적 혼란과 의사결정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대한의사협회만 가족은 있으나 관계가 단절된 환자, 연락은 되지만 가족으로서 대리의사결정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제도적 보완을 위한 검토는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 의견도 엇갈린다. 

복지부 관계자는 "1인 가구 증가, 고령화 등 인구 변화에 따라 연명의료제도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질 것"이라면서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및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통해 제도 참여율을 넓히는 것이 실효성이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지아 경희대학교 간호과학대학 교수는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 것이냐'가 중요한 부분이다. 해외에서는 의사한테 일임하는 경향이 크다. 우리나라는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며 "해외 사례를 보면 대리인제도 악영향이 분명히 있다. 우려되는 부분이 있는 만큼 안전장치가 추가되지 않는다면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김상희 의원은 "현행 제도는 무연고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는 사실상 연명의료를 중단할 길은 없다"며 "연명의료결정제도의 사각지대 해소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광환 건양대학교 웰다잉융합연구소 교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미리 작성해두지 않은 사람은 연명의료에 대해 가족이 결정할 수 있는데 1인 가구, 무연고자 등은 가족이나 연고가 없어서 연명의료를 할 수밖에 없다"며 "윤리위원회를 통해 연명의료를 하지 않을 수 있게 결정할수 있도록 양식을 만드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1코노미뉴스 = 지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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