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미리캔버스, 1코노미뉴스/디자인=안지호 기자
사진=미리캔버스, 1코노미뉴스/디자인=안지호 기자
경제불황 여파로 청년 1인 가구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취업난에 고물가, 고금리, 주택시장 불안까지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다. 피할 곳 없는 청년 1인 가구의 선택은 '절약', 그것도 극단적 절약이 됐다. [1코노미뉴스]는 '거지방'에 열광하는 청년층의 현실을 다루고자 한다. -편집자 주 

#.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었던 20대 진유현 씨. 그는 아르바이트를 한 돈과 그동안 모은 돈을 쏟아부어 매일 맛집을 찾고, 사진과 영상을 찍어 SNS에 올렸다. 인지도가 높은 비싼 식당에 다니고, SNS 활동을 위해 아르바이트 시간을 줄이다 보니 진씨의 통장 잔고는 빠르게 줄어갔다. 하지만, 그의 SNS 팔로워 수는 어느 시점부터 늘지 않았다. 결국 팔로워를 늘리기 위해 신용카드와 대출을 이용, 고가의 오마카세까지 다녔다. 그리고 1년여 만에 그는 자칭 '거지'가 됐다. 진씨는 "솔직히 취업도 안 되고, 직장생활도 나에게 맞지 않을 거 같았다. 무엇보다 빨리 돈을 벌고 싶었다"며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돈도 벌고. 좀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그야말로 거지다. 하루 한 끼도 사치라 생각하며 고시원에서 살고 있다"고 토로했다. 

#. 서울의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이은비(29) 씨는 무지출 챌린지에 도전 중이다. 목표는 한 달 생활비 50만원이다. 월세를 제외하고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 달에 200만원 이상 지출해 왔던 이 씨는 '거지방'에도 들어가는 등 절약을 위해 몸부림쳤다. 그리고 올 1월에 90만원, 2월에 60만원, 3월에 50만원, 4월 60만원을 썼다. 이 씨가 도전을 시작한 이유는 '돈' 때문이다. 그는 "당장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면 됐지란 생각이었다. 그래서 3년쯤 일했는데 모아둔 돈이 하나도 없었다"며 "그런데 금리가 치솟으면서 마이너스통장이 부담되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연초 월세 재계약을 앞두고 집중인이 세를 올렸다. 겨울에 난방비 폭탄도 맞았다. 이러다 거지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착같이 모아서 당장 대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결심에 무지출 챌린지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힐링, 디지털 노마드, 파이어족의 삶을 꿈꾸던 청년 1인 가구의 삶이 180도 바뀌었다. 장기화한 취업난 속에 고물가, 고금리가 덮쳐오면서 경제적 빈곤과 빈부격차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심리적인 압박감과 자괴감이 청년 삶을 흔들고 있다. 돈에 매달리게 된 청년 1인 가구의 삶의 단편적 모습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대유행 중인 이른바 '거지방'에 잘 나타난다. 

거지방은 극단적 절약을 위해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다. 이들은 소비를 줄일 수 있는 노하우를 공유하고, 자신의 소비를 인증한다. 그 과정에서 박수와 꾸중이 오간다. 이를 통해 공감과 소통의 재미를 느끼는 이들이 생기면서 청년층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일각에서는 청년세대의 놀이터라고 표현한 곳도 있지만, 놀이공간보다는 타인에게 스스로의 삶을 공개하는 데 익숙한 청년층이 경제적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찾은 대피공간에 가깝다. 

전문가들도 무지출 챌린지나 거지방에 참여하는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절약 습관을 기르기 위해 행동에 나선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제적 압박감과 빈부격차가 청년들을 내몰면서 그에 따라 나타난 하나의 현상으로 볼 수 있어서다. 

지난 25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올 1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505만4000원으로 나타났다.그러나 소득에서 물가 상승 영향을 뺀 실질 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보합 수준에 그쳤다. 

늘어난 소득만큼 물가가 올랐다는 의미다. 지난해 물가상승률은 그야말로 치솟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1998년 IMF 이후 24년 만에 최고치인 5.1%를 기록했다. 

여기에 금리 역시 치솟았다. 비소비지출 중 이자비용은 전년 동기 대비 42.8%나 늘었다. 

빈부격차는 더 심해졌다. 올 1분기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6.45배로 0.25배포인트 증가했다. 소득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3.2% 증가한 반면 소득 5분위 가구는 6.0% 늘어난 것이다.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낮은 청년 1인 가구는 물리적, 정서적으로 압박감이 커진 셈이다. 

청년층의 가계 상황도 악화하고 있다. 서민금융진흥원이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9세 이상 34세 이하를 대상으로 하는 햇살론유스의 대위변제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대위변제는 햇살론 대출을 받은 차주가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서민금융진흥원이 금융사에 우선 차주 대신 갚아준 후 차주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것을 말한다. 

햇살론유스 대위변제율은 0.2%에서 2021년 2.9%, 2022년 4.8%, 올 1분 5.5%로 급증했다. 누적 대위변제금액은 527억원이다. 

또 윤 의원이 신용회복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올 1분기 채무조정 현황에서도 20·30대 신청자가 늘었다. 29세 이하 비중이 13%, 30대는 23%로 증가했는데 2020년과 비교하면 각각 2%포인트씩 늘어난 수치다.

윤영덕 의원은 "20대, 30대 청년들이 대출 금액이 크지 않은 정책금융 대출조차 변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거지방을 비롯한 무지출 챌린지, 짠테크, 냉파, 탕파, 금융치료, 극단적 절약, 체리피킹 등의 유행은 청년층의 현실을 비추는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우려되는 부분은 경제적 압박감이 심리적으로 악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우울증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면 경제적 상황이 정서적 불안감에 영향을 준다는 글이 많다. "정서적 불안이 있지만 돈이 있으면 숨이 좀 트인다" "돈 때문에 급격한 불안감을 겪고 있다" "돈이 많아야 행복하다는 건 아니지만, 부족하면 불행한 건 맞는 듯" "돈 문제만 해결되도 절반은 해소되지 않을까" 등의 내용이다. 

김영재 평택대학교 겸임교수는 "정부가 금융 자산관리 교육을 제공하고 목돈 형성을 지원하는 등 안정적 사회진출을 지원하고는 있지만, 청년 1인 가구가 처한 현실이 녹록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청년층 사이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겉모습뿐 아니라 그 이면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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