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코노미뉴스]는 30일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거지방'을 탐방했다. /사진 = 1코노미뉴스
[1코노미뉴스]는 30일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거지방'을 탐방했다. /사진 = 1코노미뉴스
경제불황 여파로 청년 1인 가구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취업난에 고물가, 고금리, 주택시장 불안까지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다. 피할 곳 없는 청년 1인 가구의 선택은 '절약', 그것도 극단적 절약이 됐다. [1코노미뉴스]는 '거지방'에 열광하는 청년층의 현실을 다루고자 한다. -편집자 주 

너도나도 거지를 자처하는 오픈채팅 '거지방'. 서로 지출내역을 공유하고 냉정한 평가와 극단적 절약팁이 공유되는 거지방이 빠르게 늘고 있다. 

청년 1인 가구가 모이는 핫플레이스라는 말에 [1코노미뉴스]도 거지방 탐방을 다녀왔다. 

30일 카카오톡 오픈채팅에 거지방을 검색하자 백여개의 채팅방이 나왔다. 규모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방마다 100명대 인원이 들어가 있었고, 일부 방은 선착순 선물 이벤트까지 열며 대규모로 운영되고 있었다. 

경제불황이 낳은 씁쓸한 현실이지만, 거지방에 모인 청년들의 입담을 보면 '웃프다(웃기면서 슬프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날 선택한 거지방은 2004년생부터 1995년생까지만 참여할 수 있는 20대 거지방이었다. 수입 지출 규모가 비슷하고 소통이 활발한 곳으로 보이스룸도 켜져 있었다. 룰도 있었다. 닉네임 변경과 사치 조장 사진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방에 들어가자 오픈채팅봇이 환영인사와 룰 안내를 먼저 했다. 이후 누군가가 "안녕하거지~"라며 인사를 건넸다. 

채팅방에서는 "요새 걸어서 돈 주는 어플 중 제일 좋은 게 뭔지 아시는 분?" "그거 걸어도 쥐꼬리만큼 주던데요" "쥐꼬리라도 필요해서 그럽니다" "전 캐시워크, 토스합니다. 걷기 앱 한 번에 켜놓고 걸으면 꿀이에요" "씨제이 포인트도 해요 캐시워크는 금방 모여서 치킨도 사 먹고 토스 포인트는 오천원 이상 모이면 인출도 돼요. 어제 만원 인출했어요" 등 짠테크 팁이 공유되고 있었다. 

이어 한 명이 "집에 물 없는데 어떻게 하냐?"고 질문하자, "수돗물 드셔야죠" "오늘 비 왔잖아요. 빗물 먹으세요" "도서관을 이용해라" "물 끓여서 먹어라" 등의 답변이 붙었다. 

생수 사 먹지 말고 빗물을 마시라는 답변을 보면서 거지방의 진면목을 보는 듯했다. 

또 한 참여자가 모임에서 식사비를 계산했다는 글을 올리자 "저녁은 굶어라", "물까지는 허용한다. 정 배고프면 소금까지는 봐주겠다"는 답글이 달리는가 하면, 점심에 6600원짜리 와플을 구매했다는 내역에는 "라면보다 6배 비싸다" "이럴 거면 당장 사치방으로 떠나라" 등 웃음을 주는 질책이 이어졌다.

기자도 대화방에 소비 내역을 올려봤다. 담배 지출 내역을 본 참여자들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졌다. "흡연구역에 꽁초가 많으니 그걸 주워 펴라" "담배는 사치 정도가 아니라 육치 칠치 팔치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과도한 절약에는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조언이 붙기도 했다. 

자신을 학생이라 밝힌 한 참여자가 점심으로 삼각김밥을 먹었다는 내역을 올리자 "건강을 잃으면 미래도 없다. 학생이라면 다른 건 몰라도 먹는 데에는 신경을 써도 좋다", "A도시락이 가장 구성이 좋다. 추가 할인을 받는 방법도 소개해 주겠다" 등 조언이 잇따랐다.

보이스룸도 있었는데 적게는 5명부터 많게는 10명까지 참여했다. 다만 소비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친목을 다지는 공간에 가까웠다. 

또 다른 거지방에 들어가 봤다. 1000명 규모의 거지방으로 오픈채팅봇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봇을 통해 인사말이나 미션을 설정할 수 있고 참여자들은 봇이 시키는대로 방의 규칙을 따라야 했다. 선물하기 기능을 이용해 선착순 게임을 진행하거나 소소한 먹을거리 나눔이 이뤄지기도 했다. 

반대로 입장 조건이 까다로운 곳도 있었다. 20~30대 여성만 입장이 가능한 식이다. 이런 곳은 이른바 '분탕(주제와 상관없는 대화나 이미지로 물을 흐리는 행위)'을 막기 위해 이같은 조치를 해놨다. 실제로 거지방에서 집 또는 차량을 자랑하거나, 정치적 이슈·성차별·남녀갈등을 불러일으키려는 목적의 이용자도 많았다.

이처럼 거지방은 극단적 절약을 목적으로 수많은 청년이 모인 소통 공간으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유쾌하게 포장된 '나만 거지인가' '나만 도태되고 있나'라는 청년층의 불안감이 있었다. 실제로 '나는 거지다'를 외치는 수천명의 모습과 상반되게 SNS에는 여전히 20·30대의 화려한 일상이 올라온다. 해외여행을 다니고, 오마카세를 먹고 골프·승마·테니스를 즐기는 모습이다. 거지방에서는 절대 금지하는 행동이다. 

씁쓸한 현실에 대한 MZ세대 특유의 공유, 공감, 소통능력이 만들어 낸 거지방은 '새로운 놀이터'라고만 보긴 어려웠다. 오히려 청년층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빈부격차, 빈곤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사회적 현상에 가까웠다. [1코노미뉴스 = 신민호, 조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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