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민 SNS작가, 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실무위원회 위원.
이창민 SNS작가, 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실무위원회 위원.

청년이라 부르지 못하는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고하다

최근 대한민국이 청년기본법 나이 상향 개정 및 지자체 청년 기본 조례 나이 상향 개정에 대한 이슈들이 정말 뜨거울 정도라 말할 수 있다. 지자체는 경기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전국구가 39세 이상 나이 상향을 진행해 거의 90% 이상 완료되어 가는 상황이다.

그런데 의회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청년활동가를 비롯한 청년을 표방한 단체들의 목소리들로 인해 '청년'이라는 용어의 권리와 가치 그리고 의미를 왜곡하거나 논란을 초래하는 경우가 있다.

'홍길동전'이라는 우리가 잘 아는 소설에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호형호제를 기억할 것인데, 대한민국 청년을 청년이라 부르는 것에 대한 가치를 폄하하는 내용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에 청년이라 불리는 가치가 얼마나 큰 가치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첫 번째, 언제까지 청년일 수 있을까

"대체 청년이, 그깟 나이"라는 이야기는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에게 '청년'이라는 용어의 가치와 나이가 중요한 이슈가 되고, 사회적 쟁점과 문제가 되고 있는지, '뭣이 중한지'를 모르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청년기본법과 지자체 청년 기본 조례가 생기고 나서부터 청년이라는 용어와 나이는 더욱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이 됐다. 경기도를 제외한 전국의 거의 다수 지역들이 청년 기본 조례 나이 상향을 했다.

즉  "대체 청년이, 그깟 나이"라는 건 의회 민주주의와 청년들의 목소리 그리고 민심을 외면하고 깎아내리는 동시에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목소리이자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청년'이라는 용어는 이야기대로 영원하지 않을 수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게 되어 있지만 젊게 살아가고 싶은 꿈과 소원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특히 여성들이 안티에이징에 관심이 높고 젊음에 대해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것처럼, '청년'이라는 가치를 법과 제도로 정해놓은 기준에 함께하고 싶은 꿈과 가치는 매우 중하다고 말할 수 있다.

두 번째, 청년 호명이 중요한 이유 '홍길동전 호형호제'를 보면 보인다

청년기본법과 지자체 청년 기본 조례가 생기기 전에는 '청년'이라는 용어는 젊음을 표현하는 명사라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청년들의 목소리와 미래를 위한 법인 청년기본법과 지자체 청년 기본 조례가 생기면서부터는 '청년'이라는 용어와 가치 그리고 의미가 급격하게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다.

청년에 대한 나이와 정의 자체로 인해 살아가는 인생에 대한 불평등과 형평성 그리고 차별을 받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도 일부 진보 성향의 청년 활동가 및 단체들, 청년 나이와 용어에 대한 가치와 중요성을 제일 외치던 사람들이 오히려 나이 상향에 대해 반대하며 본연의 가치를 모순하는 자가당착에 빠졌다.

청년 나이와 용어가 그렇게 이슈가 되고 문제 되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청년 나이 기준 상향 개정 목소리뿐 아니라 의회 민주주의가 활성화되었으며 이제 중앙정부의 청년기본법 나이 상향 개정까지 이어져가고 있는 것을 보면 청년 민심은 정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홍길동전이라는 소설을 보면,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해 생긴 호형호제처럼 지자체에서는 청년이라 해당되는데 중앙에선 그렇지 못해 청년이라 부르지 못하는 정말 아이러니한 상황이 대한민국에 펼쳐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오히려 청년기본법 나이 상향 개정으로 지자체 청년 조례와 맞추고 청년들이 청년이라 불리고 정당한 가치와 권리를 함께할 수 있도록 조선시대도 아니고 '청년 호형호제'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두 경우를 보면서 최종적으로 목소리 내고 싶은 것은 이러한 부분의 종지부와 올바른 마무리를 위해서라도 경기도 청년 기본 조례 나이 상향 개정과 중앙정부 청년기본법 나이 상향 개정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실과 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그리고 국회 정무위원회 비롯한 청년 관련 기관들이 대한민국 청년 호형호제와 같은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청년을 청년이라 부를 수 있고, 정당한 권리와 가치를 함께할 수 있길 촉구하며, 대한민국 청년들이 홍길동전을 소설로만 함께하고 직접 호형호제를 체험하지 않길 바란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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