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화 청년 1인 가구 칼럼니스트 
한유화 청년 1인 가구 칼럼니스트 

◇기대했던 하루, 기대했던 미래를 잃는 '상실감'

소문난 동네 맛집에 갈 생각으로 일부러 하루 종일 쫄쫄 굶다가 가게 문 여는 시간에 맞춰서 신나게 달려 나갔다. 근데 웬걸, 사장님보다 손님인 내가 먼저 온 것인가? 캄캄한 가게 안을 들여다보며 닫힌 문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일단 차분히 옆 카페에서 기다리며 무슨 메뉴를 먹을지 신나게 고르기 시작했다. 

지도 앱에서 그 가게 이름을 검색하고 메뉴판을 훑어보다가 새로운 공지글을 발견하고 클릭. 이윽고 세상이 무너졌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갑자기 가게 문을 열 수 없게 되었다는 내용의 임시 휴무 공지글이었다. 실컷 모아두었던 내 식욕이 무색해지고, 혼자 신나서 유난을 떨었던 방금 전의 나 자신 때문에 머쓱해졌다. 냉장고에 남겨둔 아이스크림을 떠올리며 숨이 달뜨도록 뛰어서 집에 온 초등학생이 예상과는 다르게 텅 비어있는 냉동실을 발견하고 느끼는 배신감이 이런 걸까. 

맛집이 문을 열지 않는다고 눈물이 날 지경까지 되다니. 그저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아쉬운 그런 단순한 마음이 아니다. 맥이 탁 풀리면서 힘이 쭉 빠지다가 서러워지기까지 하는 이 감정의 실체는, 기대하던 미래를 잃어버린 '상실감'이다.

◇나도 ‘1인 가구’가 될 수 있다

"너도 나중에 아들딸 생기면 이렇게 해 줘, 알았지?"

"너도 네 자식이 생기면 알게 될 거야."

다인(多人)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하는 말들. 부모님,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게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세대가 1인 가구로서의 삶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살게 되는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충분히 생각해 보고 대비할 시간을 미처 갖지 못한 채로 갑작스럽게 1인 가구의 일상이 찾아오기도 한다. 새로운 한 해가 되고 어느덧 학생들의 졸업 시즌이 다가왔다. 새 학기와 함께 청년들의 삶이 '자취'라는 이름으로 변화할 때, 그 청년들의 보호자들도 가족의 분리를 경험하게 된다. 우리의 직업, 경제 상황, 배우자나 자녀의 상황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그러다 보면 가족끼리 흩어져서 지내는 일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원이 이탈'하는 상황이 마냥 달갑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아직도 다인 가족이 해체되어 1인 가구가 되는 것이 곧, '부정적인 변화'인 것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많다. 말 그대로 가족 구성원을 '잃는'것에 대한 상실감이 찾아온다.

자취생 당사자 역시도 자신의 삶을 ‘1인 가구로서의 인생’으로 인지하게 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필요하다. 간혹 자취 경험 없이 타인과 동거하게 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1인 가구로서 집안일을 하고, 혼자인 여가 시간을 보내고, 혼자 잠들고 깨어나는 모든 과정에서 어색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단체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이 공동체 안에서 높게 평가받곤 했다. 그것이 당시의 사회 시스템 상 생존에 유리한 이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얼마나 자신만의 ‘개인 생활’을 잘 꾸려가면서 공동체와의 연결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빈 둥지'에서 사는 법을 모른다

가족이 주는 안정감 때문일까, 우리는 한번 선택한 삶의 형태를 영원히 지속하는 것이 생각처럼 당연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살면 자연히 1인 가구와는 멀어지는 것 아닌가? 그렇게 그냥 다인 가구로 쭉 사는 거 아닌가? 예상하고 기대했던 미래와는 전혀 다른 일상이 시작될 때, 우리가 그 변화를 마냥 달갑게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빈 둥지 증후군'은 새끼 새들이 스스로 날 수 있게 되어 둥지를 벗어난 뒤, 텅 빈 둥지 안에 홀로 남겨진 어미새가 느끼는 허전함과 공허함에 빗대어 만들어진 심리학 용어다. 자녀를 양육하는 역할을 중시하며 살다가 자녀가 독립하면서 느끼는 정서적인 위기 상황. 이 때 부모는 '가족 구성원의 상실'에 슬퍼하며 그 물리적인 존재 자체를 그리워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목표의 상실'측면에서 더 큰 우울을 경험하기도 한다. 

하지만 '빈 둥지'는 실제로 비어있지 않다. 자녀, 배우자와 모두 분리된 상황이라고 해도 언제나 '나'라는 한 사람이 있다. 내 가족을 위해서 착실하게 둥지를 지었던 사람일수록, 그 둥지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기 쉽다. 빈 둥지는 넓다. 둥지가 비어있을 때야말로, 둥지를 보수하고 리모델링하기 적절한 타이밍이다. 가족을 위해 살아왔던 삶의 초점을 조금씩 자신에게로 옮겨와서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고민해야 할 시기이다. 가족을 위한 무거운 책임감에서 벗어나서 홀가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삶의 무게, 그 책임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제 나를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한다.

실제로는 배우자나 다른 자녀와 여전히 함께 살고 있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집 안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조금씩 줄어들고 각자 독립적인 일상을 꾸려가게 된다. 나 혼자만의 외출, 나의 개인일정, 집에 나 혼자만 남아있는 시간들이 어색하거나 외로워지지 않도록 조금씩 훈련해 나갈 필요가 있다.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은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럴 때 가까운 사람들과 자신의 상실감, 공허함에 대해 대화하고 교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시기에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우리가 성인이 되어 본격적으로 사회에 나오기 전에 선생님, 직장 상사를 비롯한 주변 어른이나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던 것과 같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한 새로운 목표로 더욱 성장한 삶을 꾸려가기 위한 과정에서 정서적, 심리적으로 삐걱거리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가족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해 도움을 받고, 도전하고, 배워나가는 게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빈 둥지’의 상실감은, 그동안 상실했던 자기 자신을 되찾으면서 채울 수 있다.

[저자 소개] 네이버 블로그 <직장인 띄엄띄엄 세계여행> 운영, 34개국 250여 회 #혼행 전문 여행블로거 

'남의집' 소셜링 모임 <여행블로거의 혼삶가이드>의 호스트

혼삶이 두렵지 않은 합기도 4단, 23년 경력의 '무술인'

현) 비욘드바운더리 글로벌 커머스 본부장

전) 이랜드차이나 상해 주재원, 중국 리테일 런칭 전략기획 

후) 독립출판 레이블 리더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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