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아빠가 MZ세대 딸에게 ④폭력적인 사회를 바라보며

강한진 나음연구소 소장.
강한진 나음연구소 소장.

나만 느끼는 것일까, 뉴스가 무서워졌다. 험한 이야기가 갈수록 많아진다. 아이를 학대한 부모, 데이트 폭력, 혐오폭력, 보복 운전, 묻지마 폭행, 가스라이팅, 심지어 일가족을 스토킹해서 살해한 사건까지. 어쩌다 폭력이 이렇게 창궐해졌을까. 

뉴스를 안 보겠다고 결심해 보지만 얼마 안 되어 나도 모르게 리모컨을 누른다. 많은 사람이 나름의 원인과 해석, 대책을 이야기하나 썩 흡족하지 않다. 

나는 잠시 혼자의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올해 58살인 여동생의 손등에는 여섯 살에 생긴 상처 자국 두 개가 있다. 8살 무렵, 부모님이 밭일을 나가시면 백구는 나와 여동생의 친구이자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주었다. 하루는 초등학교 고학년인 형이 쥐꼬리를 모아서 학교에 가져가야 한다면서 푸른색 보리쌀을 여러 곳에 뿌려 놓았다. 저녁 무렵, 여느 때처럼 동네와 텃밭까지 한 바퀴 순찰하고 온 백구가 이상하게 사나워졌다. 이리 뛰고 저리 구르며 으르렁대더니 툇마루 밑으로 숨어 들어가 웅크리고는 끙끙대기 시작했다. 여동생이 아장아장 다가가서 쓰다듬어주려고 백구야~ 부르면서 손을 내밀었는데 백구는 그 손을 사납게 물어 버렸다. 자지러지는 비명에 놀란 부모님이 뛰어오셔서 급히 상처를 싸매었으나 동생의 손에는 이미 선명한 이빨 자국이 찍힌 뒤였다.
 
내게도 깊이 새겨져 있는 미친개의 이빨 자국이 있다. 과거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실의에 빠졌던 아버지. 술 취한 아버지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장대비가 퍼붓던 밤, 만취해 자정 넘어 들어오신 아버지는 소리를 지르면서 다짜고짜 어머니를 때리기 시작했다. 때리고 휘두르고 부수던 힘 센 아버지와 어둠 깊은 장대비 속으로 도망가던 맨발의 어머니 모습은 50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다.

서툴렀으나 의욕은 넘쳤던 새내기의 직장생활시절도 어느 한 미친개에 의해 지옥과 같았다. 숱한 날 그의 휘둘림에 당황하면서 점심을 먹었고 모욕과 비굴함을 반찬 삼아 저녁을 먹었다. 성토로 넘쳤던 술자리에서는 당장 무슨 일을 낼 듯이 흥분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다음 날이면 그 화를 낸 친구는 미친개의 가장 총애받는 심복이 되어 있었고, 그것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나는 눈치 없고 답답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미친개가 갈수록 칭찬받고 주목받고 성장하며 강고해졌다는 것 또한 아직도 내게는 풀리지 않은 불가사의다. 그러는 사이 나도 조금씩 미친개가 되어갔다. 함께 잘 훈련된 리틀 미친개들은 유능한 인재라는 이름표를 달고 사방으로 진출했다.
 
30년가량 지난 어느날도 내게는 이빨 자국이다. 일과를 마치고 퇴근한 어느 피곤한 주말 오후, 쉬고만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유치원생 아들은 내가 반가웠는지 놀아달라면서 매달렸다. 눈치 빠른 아내가 떼어놓으려고 했지만 아이는 다시 매달렸다. 그러다 동생하고 다투기까지 해서 더 소란스러워졌고 딸애는 떼쓰며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참지 못한 나는 ‘오빠가 동생에게 양보도 하지 않느냐’며 화를 냈다. 순간 눈망울이 두 배나 커지고 깊어진 아이는 웅크리고 뒷걸음질 치면서 아내 뒤로 숨었다. 다음날, 아들과 놀이터에 나갔다. 아들이 친구와 같이 놀다가 실랑이가 벌어졌는데,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를 지르며 손에 들고 있던 장난감으로 친구의 머리를 내리쳤다. 우는 아이를 겨우 달랜 다음 급히 아들을 끌고 집으로 왔다. 어디서 이런 난폭한 짓을 배웠을까. 어떻게 그리 난폭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요즘 공원을 감싸는 볕이 좋다. 올봄은 예년보다 일주일이나 일찍 꽃이 피었다고 한다. 공원 구석구석 여러 가족이 보인다. 가까이 있는 젊은 가족은 무슨 일이 있나 보다. 아이가 심통을 부렸을까, 아빠가 혼을 낸다. 그러자 눈이 두 배나 커지고 깊어진 아이는 웅크리고 뒷걸음질 치며 숨으려고 한다. 갑자기 아이와 아빠의 뒤로 30년 전의 장면이 배경처럼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의 실패를 가족들에게 화풀이하던 아버지, 내 젊은 삶을 휘저은 미친개 부서장, 또 다른 미친개가 되어 있는 나까지 모여들어서 아이의 손등에 지워지지 않을 폭력의 문신을 새기고 있었다.

며칠 전 딸 아이가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중이었는데 어떤 사람이 마음에 든다면서 시간 되느냐고 따라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서 호감은 커녕 위협만 느껴지더란다. 왜 그랬을까? 이 또한 우리 모두 부모와 선배, 상사로부터 물려받은 문신의 영향이 아닐까? 그 문신이 나를 피해자나 제3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일부분으로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순간에도 멀리 혼자 있는 딸이 염려된다. 귀가하는 그 골목의 어둠이 불안하다. 그 모퉁이에 가로등 하나라도 더 켜졌으면 좋겠다. 모든 가정에 원망과 분노가 사그라들고 그 자리를 사랑과 배려와 관심이 채워져 웃음으로 흘렀으면 좋겠다. 골목 주변의 창문들이 더 밝게 켜지면 그 거리를 지나는 모두의 발걸음이 행복해질 것 같다. 

▶필자는 마음을 연구하는 곳 나음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통이 필요한 분은 언제든 메일(hjkangmg@hanmail.net)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필자소개]

나음 강한진 소장은 경북대학교 공대에서 전자공학을, 서강대학교 경영대학원과 상지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국내 기업에서 엔지니어와 관리자 경험을 쌓고 지금은 나음연구소를 세워 운영하고 있다. 대인관계와 소통, 특히 갈등을 긍정적인 계기와 에너지로 전환하는 지혜에 관심을 두고 연구와 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의 미래는 가정과 학교, 청년에게 있다고 믿으며, 가족의 평화와 학교(교사-학생-학부모)의 행복, 청년의 활력을 키우기 위한 일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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