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 코미노섬 블루라군./ 사진=정희정
몰타 코미노섬 블루라군./ 사진=정희정

 

이튿날, 낯선 12인실 숙소에서 첫날밤을 보낸 것치고는 아주 곤히 잘 잤다. 비행의 피곤함도 사라졌다.

오전 11시, 다른 여행자들은 하나같이 바쁘게 숙소를 빠져나간 시각에 난 쭈뼛쭈뼛 숙소 테라스로 나갔다. 내가 몰타에 있는 사실을 증명해 주듯 한여름처럼 태양이 쨍쨍 타오르고 있었다.

아무 계획이 없었다. 마음이 가는 데로 발걸음이 닿는 데로 시간이 흐르는 것에 조급해하지 않고 여유를 갖고 둘러보고 싶었다.

사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다. ‘음, 검색을 해볼까? 일단 씻자’ 하던 찰나에 한 남성이 숙소로 들어왔다. 내가 머무르는 방은 남녀 구분 없는 곳이었다. ‘Hi’ 인사말이 오고 갔다. 나의 ‘Hi’는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그의 ‘Hi’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독일에서 온 세르칸(Serkan)은 바로 오늘 계획을 물었다. ‘nothing’이라고 답하자 본인의 목적지를 보여주며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뽀빠이 빌리지’(Popeye village).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만화 속 주인공 뽀빠이가 주인공인 테마파크다. 1980년 뮤지컬 ‘뽀빠이’를 위해 지은 세트장으로 현재는 테마파크로 운영되고 있다. 몰타섬에서도 북쪽 끝으로 한참 올라가야 하는 꽤 먼 곳이었다. 그러나 구글 속 뽀빠이 빌리지 해변 사진은 너무 아름다웠고 난 마땅히 할 것이 없었다.

‘Why not?’ 세르칸을 따라나섰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약 1시간 30분이 지나서 도착한 그곳에서 난 눈을 뗄 수 없었다. 절벽 아래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닷물과 나무로 지어진 실제 마을 같은 테마파크는 감탄을 자아냈다.

신이 났다. 그 광경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절로 났다. 수영을 못하지만 투명한 바닷물을 보니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얼른 챙겨온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깊이가 낮은 곳에서 첨벙첨벙 물장난을 쳤다.

다들 깊은 바닷속에서 헤엄을 치는데 홀로 물장구만 치니 아쉬웠다. 그런 모습을 지켜본 세르칸은 혹여나 내가 물에 빠지면 구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좀 더 깊은 물에 들어가서 수영을 해보라고 권했다. 수영은 전혀 어렵지 않다면서.

유럽 친구들과 바다에 갈 때마다 가장 부러웠던 것이 수영 잘하는 것이었다. 여름철만 되면 친구들이 헤엄치는 것과 물에 뜨는 것을 가르쳐주곤 했다. 그 결과 땅에 발이 닿지 않고 헤엄칠 수 있는 횟수는 5번으로 늘었지만 여전히 수영은 내게 먼 나라 이야기다. 

뽀빠이 빌리지./ 사진=정희정
뽀빠이 빌리지./ 사진=정희정

 

그런데 수심 3m가 넘는 곳에서 수영을 하라니. 겁이 덜컥 낫지만 정말 너무 간절히 시도해 보고 싶었다. 뽀빠이 빌리지는 테마파크인 만큼 해변 중간에 놀이터가 자리해 바다 위에서 게임을 즐길 수도 쉴 수도 있었다.

‘헤엄을 치다가 힘이 빠지면 중간 놀이터에서 쉴 수 있어!’라는 생각과 물에 빠져도 날 구해줄 사람이 있다는 안도감에 자신감을 얻었다. 파이팅을 외치며 30년 넘게 작은 소망으로만 간직했던 ‘수영’이란 것에 도전했다.

많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냥 열심히 다리를 움직이고 팔을 쭉쭉 뻗어 앞으로 나아갔다. 내가 수영을 하고 있었다. 숨이 차지도 않았고 힘이 들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어떻게 그런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는지 모르겠다. 세르칸이 찍어준 영상을 보면 10m 이상 되는 거리를 한 번도 쉬지 않고 헤엄쳐 건넜다. 그때의 벅찬 감격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몰타 여행이 내게 준 선물이었다. 이후에도 숙소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몰타를 탐방했다. 독일에서 온 또 다른 친구 루카(Luca)는 다이빙장으로 유명한 St. Peter pool 가는 길에 만났다. 물놀이를 실컷 하고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루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몰타 여행 중 만난 친구들./ 사진=정희정
몰타 여행 중 만난 친구들./ 사진=정희정

 

'우리는 행운아야.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니까'

나의 가치관과 정말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처음 만났다. ‘행운아인 우리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베풀고 도움을 줘야 할 책임이 따른다’ 이야기는 멈출 줄 몰랐다. 얼마 전 루카에게 연락이 왔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UN 본부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내 일처럼 기뻤다. 조만간 같은 필드에서 만나길 바란다고 답했다.

무계획으로 떠난 이번 몰타 여행은 인생 여행으로 꼽힌다. 아무 사고 없이 무탈하게 마무리했고 어느 때보다 배부르게 먹었으며 어느 것에도 쫓기지 않고 여유로웠다. 무엇보다 여행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우연한 만남이 내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고, 인연이 되어 지친 외국 생활에 동기부여가 되어주고 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은 다시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의 출현으로 다시 국경을 넘는 것이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다. 언제쯤 다음 여행을 할 수 있을지 기약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 몰타 여행이 내게 큰 위로와 힘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위 글은 시민기자 작성 기사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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