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나눔과나눔./디자인=안지호 기자
사진=나눔과나눔./디자인=안지호 기자

'혈연'관계로 이어진 가족이 함께 모여 살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두 집 걸러 한 집은 '혼자' 살고,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산다. 전통적인 가족구조에 대한 개념이 급속도로 해체되고 있지만, 제도는 그대로다. 이렇다 보니 각종 사회문제가 발생한다. 

그중 하나가 '죽음'이다. 혼자 살던 사람이 죽음을 맞이 했을 때, 현재 우리 사회는 개인(연고자)에게 책임을 미룬다. 또 혈연을 중시하는 전통적 장례제도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해, 실질적인 삶의 동반자 역할을 했던 이들을 후순위로 둔다. 

이에 1인 가구로서 삶을 영위하며 자신의 가치를 위해 살았던 이들은 죽음에 이르러 그 뜻이 꺾이는 불안감을 갖고 산다. 또 무연고 사망자로 초라하게 잊혀질 자신의 죽음에 대한 불안감을 품기도 한다. 실질적으로 함께 살아온 사실혼 배우자 또는 동거인에게도 깊은 슬픔을 남긴다. 

이러한 부분은 1인 가구 수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사회적 숙제가 됐다. 인간이기에 가지는 기본적인 존엄한 가치를 존중하기 위해, 최소한의 장례도 없이 고인을 보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사회적 공감대 역시 형성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무연고 사망자는 병원에서 별도의 장례절차 없이 주검을 화장장으로 옮겨 화장한 뒤 일정기간 봉안 후 처리한다. 

1인 가구 시대, 존엄한 죽음을 보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공영장례지원, 우리나라는 어디까지 왔을까. 

우리 정부는 공영장례지원을 제도화하고 있다. 지자체 등 공공기관이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의식을 지원해 고인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유가족과 지인 등이 애도할 수 있도록 돕는 형태다. 

공영장례지원은 장사 등에 관한 법령(법률 제12조, 시행령 제9조, 시행규칙 제4조 참조)에 근거한다. 보건복지부 '2021 장사업무안내'에서 무연고 시신 등의 처리에 대한 내용을 상세히 확인할 수 있다. 

법적으로 무연고 시신은 연고자가 없는 ▲국내·외 사망자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국내·외 사망자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기피한 국내·외 사망자다. 

여기서 연고자는 배우자, 자녀, 부모, 자녀 외의 직계비속, 부모 외의 직계비속, 형제·자매, 치료·보호 또는 관리 행정기관 또는 치료·보호기관의 장,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다. 

관련 법에 따르면 시장 등은 무연고 시신 등 처리 시 최소한의 존엄이 보장되도록 장례서비스(추모의식)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 시장 등은 무연고 사망자의 품격 있는 장례처리 등을 위해 무연고 시신 처리에 드는 비용을 적정하게 산정해야 한다. 시신 처리는 장례지도사가 진행하며 담당공무원이 현장에서 이를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장사법 제12조는 무연고 사망자의 시신 '처리'에 대한 규정이다. 장례지원에 대해서는 의무가 아닌 시장 등 각 지방자치단체의 판단에 맡겼다. 전국적인 공영장례 지원 확산이 더딘 이유다.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장례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나눔과 나눔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장례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나눔과 나눔

다행인 점은 정부가 가족개념 및 가족관계의 변화 등 사회적 변화를 조금씩이지만 반영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장사법 제2조제16호 아목 등 장례지원에서는 사망자 의사를 존중하고 사망 후 장례절차·방법 등에 대한 생전 자기결정권을 보장한다. 또 개인적 친분이나 사회적 연대에 따라 장례주관을 희망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있는 경우 장례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고, 지자체는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사실혼 관계 ▲실질적 돌봄자 ▲고인이 생전 지정한 장례주관자 ▲고인이 친구·이웃·종교 등이 장례주관을 희망한 경우 ▲장사법 제2조제16호 가목 내지 사목에 해당하지 않는 친족 ▲가족관계등록부 등 공부상 친자관계 확인이 되지 않지만 장사법 제2조제16호 가목 내지 바목의 관계로 확인된 경우다.

이러한 기준이 있다고 해도 장사법 자체가 혈연 중심의 가족제도에 근거하면서 사실혼 또는 동거인이었던 삶의 동반자나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지원하는 특정 단체가 시신을 인수해 장례를 치르는 것은 쉽지 않다. 시신 인수의 우선권에서 밀려나 있어서다. 

따라서 무연고 사망자의 존엄성을 지켜주기 위해서는 가족 개념 확대 방안이 담긴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 통과가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건가법 개정안은 동성혼 관련 내용이 함께 담기면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또 정부는 지난해 12월 장사법 일부 개정으로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의 행정책임을 국가 차원까지 확대하고 이를 위해 무연고사망자 장례지원을 장사지원센터 업무 내용으로 명시했다. 

올 6월 22일부터 시행 예정인 이번 법 개정으로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공영장례 지원은 한층 확산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장사지원센터의 기능을 위탁받은 (재)한국장례문화진흥원에 배정된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사실상 지자체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공영장례 지원을 조례화한 지자체는 2021년 기준 서울, 인천, 울산, 세종, 경기도, 전라남도, 충청남도, 제주도 등 9개 광역지자체와 49개 기초지자체가 있다. 여기에 올 들어 대구, 하남시 등이 조례를 통과시켰다. 

공영장례 조례 확산은 긍정적이지만, 시가 주도적으로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곳은 서울시, 인천시 정도다. 대부분은 민간 장례서비스업체에 무연고 사망자 시신 처리를 위탁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서울시립승화원에 공영장례 전용 빈소를 운영하고 장례 인력, 물품, 운구차 등을 지원한다. 

1인 가구 증가세를 고려하면 공영장례시설을 전국적으로 확대·구축할 필요가 있다. 결국 공영장례 확산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법 개정이 필요하다. 무연고 시신 처리에 근거를 둔 장사법 자체를 무연고 사망자 장례 지원을 중심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또 무연고 사망자와 공영장례를 담당할 전담부서가 조성돼야 한다. 현재는 고독사는 지역복지과가 장례의례는 여성가족부가 따로 관리한다. 무연고 사망자에 대해서는 특정 부서 없이 상황에 따라 담당이 다르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이 컨트롤타워를 맡을 것으로 보이지만, 예산 배정을 보면 역할 수행이 제대로 이뤄질지 의구심이 든다.

무연고 공영장례./ 사진=나눔과나눔
무연고 공영장례./ 사진=나눔과나눔

이에 전문가들은 공영장례에 대한 근거를 법률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의힘 홍석준 의원은 지난달 30일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법률 근거를 신설한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령 또는 조례로 정하는 바에 따라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지원할 수 있도록 명시적인 규정을 담은 개정안이다. 무연고 사망자가 사망 전 장례를 주관하는 사람이나 단체를 지정한 경우 지자체장 또는 단체가 장례를 주관할 수 있도록 한 점도 이목을 끈다.

홍석준 의원은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공영장례를 지원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없다"며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제로 조례를 제정해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지원하는 경우가 일부에 불과해 개정안을 발의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배지숙 대구시의회 의원도"한 사람의 존엄성을 우리 지역공동체가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지켜주자는 취지로 조례를 만들게 됐다"며 "대구시는 공영장례 지원에 대한 행정적·재정적 기반 조성을 위한 시장의 책무를 규정해 시행에 대한 책임을 부여했다. 1인 가구 사망자의 경우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가 있더라도 시신 인수가 거부·기피된 경우 공영장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박진옥 나눔과나눔 사무국장은 "장사법 자체가 장례를 지원하는 법이 아닌 시신 처리를 위한 법으로 한계가 명확하다"며 "공영장례제도 활성화를 위해서는 법 개정이 선행되어야 하고 국가 차원에서 전담부서를 만들어야 한다. 1인 가구 증가세 등을 감안하면 지금처럼 조금씩 법 제도를 고쳐 나가는 형태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사회보장 차원에서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보편적인 법률 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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